무학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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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92년 08월 126호
역사에서 종말과 시작은 스러져가는 것에 대한 불안과 새로움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고, 예측할 수 없는 극적 변화와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어우러져 소용돌이 치는 현장일 수밖에 없다. 무너져 가는 고려 왕조의 황혼과 새로운 출발을 잉태하는 조선 왕조의 시작을 겪으며 어지러운 세상을 함께 한 무학스님은 그 시대의 혼란만큼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다 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열여덟 살에 출가의 뜻을 품고 송광사로 입산한 스님은 여러 곳을 행각하며 참구하다 용문사 부도암에서 법장스님에게 능엄경의 대의를 깨닫고 정진의 바른 길을 갔다. 그 뒤 공민왕 이 년(서기 1353년) 원나라에 들어가 지공화상과 나옹스님의 문하에서 정진을 계속하였다.
귀국하여 청성산 원효암에 주석하면서 전국의 여러 곳을 주유하고 특히 태조 이성계와 교분을 두텁게 하였다. 이성계와 친교하는 가운데 유명한 일화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으니 다음과 같다.
대사가 안변 설봉산 토굴에서 정진하고 있을 때 이성계가 찾아와서 묻기를 “끔에 부서진 집에 들어가 서까래 세 개를 가지고 나왔으니 이 무슨 일인가?” 하니 스님이 “서까래 세 개를 졌다는 것은 임금 왕王 자字이다” 하였다. 또 묻기를 “꿈에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떨어졌으니 이것은 무슨 일인가?” 하니 스님은 “꽃이 떨어지면 마침내 열매가 있을 것이요 거울이 떨어지면 어찌 소리가 없겠는가?” 하였다.
또 서산대사의 석왕사기에 이성계가 스님을 희롱하여 “내가 보기에 노승老僧은 멧돼지 같구료” 하였다. 스님이 가로되 “내가 보건대 대왕은 부처와 같습니다.” 하니 그는 “그게 무슨 말인가?” 하였다. 스님은 “멧돼지 눈으로 보면 멧돼지요, 부처 눈으로 보면 곧 부처입니다” 하였다. 함께 크게 웃고 손뼉치면서 말하되 “아름답도다.고기와 물이 한 집에 모였으니 가히 조화를 이루었도다” 하였다.
양주 회암사에 지공 나옹과 함께 그들의 탑이 지금까지 버려진 채 서 있다. 웅대 무비했던 고려 왕조 최대의 사찰답게 폐허의 잔해가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도 아직 많은 그림자를 남기며 버려져 있지만, 이제 그마저 한 개인의 묘소로 치장되어 우리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으니, 후학의 못남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