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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암 명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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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장채향 1992년 08월 126호
비오는 날이 좋다. 비가 그쳐 운무에 휩싸인 산 모습은 더욱 좋다. 영취산, 영산회상이라도 열리는 양 서둘러 길을 떠나는 날, 후두둑 비가 온다. 창밖엔 나뭇잎이 짓이겨져 흐르듯 녹비綠雨가 내리고, 늦은 밤 비를 머금은 어둠 속의 극락암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가는 도중에 드린 전화선을 타고 흐르던 덤덤한 목소리에 못내 가슴을 태우며 삼소굴三笑屈에 행장을 풀었다. 승사僧事가 날마다 이루어지는 요사지만 한밤중의 정적 속에 시간이 멈추어 있고, 먹구름 사이로 보이는 달이 굽은 기와등 마루 위로 언듯 지나간다.
“극락암은 극락암이제. 극락에 무에 취재할 게 있노. 그제. 맞제” 아침 공양 후 포행길에 끼어 있는 일행에게 툭 던지는 선구禪句 같은 말씀. “지난 밤 두 번이나 잠을 깨웠으나 나 안 할란다” 하시는 스님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얼핏 스침을 본다. ‘이 분이었구나. 명정明正 스님이.’ 말씀을 안 하실 땐 무척이나 엄격해 보이다가도 말끝이 흐린 구수한 사투리에 칼칼한 수좌의 모습보다 정이 더욱 묻어나 이웃을 편하게 하는 고원古園 명정스님. 한눈에도 순숙된 살림살이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물어볼 말을 잊게 하는 분.잡다한 물음이 오히려 세정의 투정 같아 차마 입을 떼지 못하여 한나절 꼬박 스님을 따라다녔다. “공부니 수행이니 그런 말을 난 모른데이. 수행도 올케 못하니 수행자라 하기도 어렵제...” 그냥 차나 마시며 사는 얘길랑 하다가 가라는 스님 말씀엔 기자의 됨됨이가 못내 마뜩잖은 표정이다. 허기사 우인愚人에겐 꿰지도 못할 구슬 서말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무로 깎아 만든 찻상 위에 차때가 묻은 찌그러진 찻잔에 누런 차를 가득 뽑으며 말씀하신다. “마시거라. 한 잔의 차는 입선정入禪定이요, 석 잔의 차는 통대도通大道이고, 한 말의 차는 합자연合自然인기라. 석 잔 마시고 통대도通大道 해 보그라.” 그러시며 중봉스님의 벽암록 경청불미鏡淸不迷조 한 대목을 짚으며 새긴다.
경청 문앞에 무슨 소라냐?
스님 빗소리입니다.
경청 중생이 전도하여 물건에 매달리는구나...
그래. 명정明正이란 이름을 좇아 여기에 온 것을 나무라지만 내 창은 그렇게만 열려 있다.
명정스님은, 오십년대 말쯤 해인사로 출가하여 서른 두 해를 은사 경봉스님의 행장과 더불어 극락암에 머물렀다. 그때만 해도 독특한 가풍을 떨치며 선문의 종장들이 납자들을 제접할 때라 한목숨 툭 던지듯 운수납자가 되어 떠돌며 정진에 몰두했다. 그러던 노화상들은 한분 한분 가셨고 불조의 청백가풍淸百家風도 점점 주역을 잃어 감이 못내 아쉽다. 후학들에게 질정이 되지 않을까 눈푸른 선사들의 주옥 같은 언어를 다듬어 책으로 내놓았다.「경허집」「한암집」「신심명」... 그리고 지금「벽암록」을 집필중이다. 스님은 화엄경 권 수마다 노스님의 친필로 명정시자에게 줌을 사인한 책들을 새삼 살피며 말했다. “노장은 기력도 좋지. 우째 이리 책마다 써놓아 팔아 먹지도 못하게 하누.” 스님의 말끝에 묻어나는 노사에 대한 그리움이 스승을 잃어버린 오늘의 세태에 뜨거운 경책처럼 다가온다.수 행인에게 가고 옴이란 땅바닥에 금 긋는 일. 인연의 고리를 풀어야 함이 삼법인三法印 가운데 하나건만 아리다. 경에도 있잖은가. 부모에 버금가는 은혜도 없지만, 사장師長의 은혜를 넘은 것은 없다고 했다. 아직도 스님에겐 한암선사, 용성선사 등 각처의 선사들이 노사에게 보낸 회신과 답신, 선문답한 법거량문이 차곡이 분류되어 보따리에 쌓여 있고, 거르지 않고 쓴 일기가 초서로 남아 있다. 근대 한국 선맥의 박물지로 남을 귀한 자료의 수집으로 보아 노선사의 꼼꼼함이 경외롭다고 되짚으며 시봉하기에 힘드셨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씀한다. “어디, 스님이 힘드셨지. 그땐 내가 젊은 혈기에 따지기 좋아하고 고집이 셌거든...” 본디 드러내기 싫어하는 성품이라 강원도 다니지 않은 스님의 글새김을 노사인들 어찌 알았겠는가. 어느 날 다른 절의 낙성식 글을 쓰더니 스님께 읽어 보라고 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건 이렇게 했으면 좋겠고, 이 대목은 이렇다고 덧붙인 몇 마디가 스님을 놀라게 했고, 몇 번 거듭된 일로 이 모든 것(번역 작업)이 스님 몫이다. 강원만 제대로 다녔어도 대강백이 되었을 것이라는 노스님의 말씀이 오히려 섭하리 만치 열여덟 살에 출가하여 반평생을 운수납자로 선객답게 살아오셨다. “수좌라면 죽을 힘을 다해서 공부를 해봐야지. 뭐 물에 물탄 듯 그럴 게 아니야.” 그랬다. 스님의 성품은 드러나지 않은 듯 끝을 보고마는 점 때문에 많은 일에 다재 다능하다. 이백여 편의 시를 보름만에 번역해 “곰인지 사람인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편집적인 면도 있고, 하루 한 판의 탁구로도 극락선원 최강자의 자리를 지킬 만큼 운동에도 뛰어나다. 그리고 틈틈히 세속의 잡지에 원고를 기고하기도 한다. 그 일들이 꼭 해야 하거나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있어서 하는 일처럼 보인다. 현대인의 삶이 행복해서 웃는지, 웃기 때문에 행복한지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어느 지식인의 말처럼 그 분의 삶은 특별한 의미가 없는 듯도 하다. 파격의 미가 아니라 맛이 없는 가운데 참맛이 있는 삶의 순리라고나 할까. 그 속에서도 소리없는 움직임을 한다. 미래나 과거가 아니라 현재 이 시각을 위해서. 비가 갠 다음날은 포행하기에 적합하다. 삼십 분 가량 걸리는 자장암은 선방 수좌스님네의 좋은 산책 길이다. 그곳은 자장율사가 공부하던 도량으로 금개구리가 나타나 절을 지켰다는 설화 때문에, 아침 공양 후 포행은 금개구리를 만나려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이번 철엔 아직 한 사람도 본 사람이 없으니 하안거는 완전히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금개구리를 기다리며 살게 된다”는 이야기로부터 이 기다림의 길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스님네 공부하던 이야기, 농삿일, 동물 생태학을 비롯해 달맞이 꽃을 기다리는 일까지... 아니 먼 영취산 영봉의 비구름까지 이어진다. 운거산정雲居山頂 바로 이를 두고 이른 말 아니던가? 그냥 산 속에서 산과 더불어 어우러져 사는 것 같지만 눈 밝은 사람이라야 고요 속에 흐르는 놀라운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공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생각조차 망상이니 조그만 알음알이에 끄달리지 말고 힘써 정진하기를 당부하신다.
스님의 차맛은 짜다. 짜게 먹는 분으로 유명하다. 비록 시간이 충분치 못해 직접 차를 만들지 않을 뿐 시정인에게 정평 있는 다인茶人으로 남아 있다. 말 많은 다계茶界에 시끄러이 붓 끝에 오를까 염려해 근접도 않지만 아랫녘 교사들의 좋은 다도선생이요, 남부 지방의 포교 사업도 다도 강의 가 시작되고부터다. 일단 여기 오면 다른 종교인도 부처님께 인사를 올려야 하니까. 벌써 십 년째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이 불자가 되어 스님께 배움의 길을 열어 가기도 하고 다인茶人으로서 예법을 배우기도 했다. 산중에 솔바람 소리 들으며 마루에 앉아 앞마당의 푸른 파초잎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일은 여름날 산사를 찾은 이가 가질 수 있는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일 게다. 찻잔을 움켜잡은 손에 전해오는 따스함을 즐기며 잊었던 세상얘기로 돌아간다. 앙드레 지드며, 예이츠며, 도스토예프스키며... 그 가운데서도 경허스님은 가장 보헤미안적인 스님이다. 한때 이런 책들은 밥먹을 줄도 모르게 하고 몇 날을 기둥에 기대어 독서 삼매경에 빠지게도 했다. 그렇게 젊음은 익어 가는 것일까. 지금 찻잔 속에는 과거의 모습이 다향茶香과 더불어 흩어지고 있다. 이래서 속인과 ,더욱이 기자와는 마주하기 싫은지도 모르겠다. 허물이 되어 벗어진 그 껍질을 주워들고 있는 모습이란 별로 아름답지도 않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도 ‘자유의 길을 가는가’ ‘예속의 길을 가는가’에 따라 끝없는 자유를 부활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팔정도로, 삶과 지혜와 통찰력을 이어 놓은 끈을 보여주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생전 처음으로 이렇게 짠 차를 마시며 전환의 가치, 설사 일대사 인연만큼은 아니더라도, 스님과 노사와 같은 인연이 아니더라도, 돼지와 플라톤이 섞여 있어도 어울리는 그런 인연이면 어쩌랴 싶게 하루쯤 생의 긴 여로에서 자유롭고 싶다. 이렇게 차를 독하게 마셨는데 위가 괜찮냐고 물었다. “응, 위가 헐었어. 그래서 사흘에 세 끼만 먹어.” 정말 스님과 저 찌그러진 다관, 널린 찻잔과 얼룩져 벽에 걸린 한 점 족자, 오래된 책에서 나는 책 익는 냄새, 뒷켠에 마구잡이로 키워지고 있는 난초들은 스님의 자연스런 삶과 넉넉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靜坐處
茶半香初
妙用時
水流花開
고요한 곳에 앉아
차는 반쯤 마셨는데 향기는 처음과 같고
이 묘한 때에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
추사 선생이 초의 선사에게 보낸 중국 시인의 글이다. 체와 용이 어우러진 스님의 삶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음은 노사가 베풀어 주신 선다일여禪茶一如의 경지와 허공을 가르는 지혜로운 삶의 영향이 어찌 깊었지 않으리오. “요즘은 참 이상하데. 왜 이리 관심이 없노.” 은사스님께 물려받은 서간문가운데 법거량하던 옛 선사의 글을 보여줘도 별반 관심이 없는 요즈음 풍토를 걱정하신다. “자기 은사스님이 수행 여정 속에서 남긴 유품도 도무지 관심이 없데이.” 귀하고 귀한 것이라 임자를 찾아 주어 수행 지침으로 삼았으면 하나, 이내 갈 곳을 잃고 스님 방에서 잠을 잔다. 말법이라 자꾸 탓해 무엇하랴... 시절 인연이 되어 크게 선풍 일으킬 명안종사가 나타나길 발원하기보다 잃은 자기 자리 돌아가면 그뿐. 그러나 이 산중에서도 선방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한켠에선 재가 불자의 참선 모임인 수선회가 막 수련회를 열고 있다.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신 영취산 극락암에 출가인은 출가인답게, 재가인은 재가인답게 불법의 한둥우리에 어우러져 있다. 좀처럼 말씀이 없던 명정스님도 법좌에 앉아 법문을 하신다. “의단 덩어리, 그게 문제가 아니라 초심자가 망상을 의단으로 삼는 게 문제야” 라며 수선修禪의 길에 장애가 되는 것을 하나씩 풀고 계신다. 삼복 더위를 실은 여름 햇살이 마당 가득 내려 꽂히고 자지러지는 매미 소리가 도량을 꽉 채우는 한낮. 숨소리조차 멎은 법당엔 스님의 고구 정령한 말씀이 정막을 가르며 무명을 벗겨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