聞香, 우리들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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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92년 08월 126호
해인사를 다녀오는 길에 잠시 한 정자에 들렀다. 지붕엔 다북쑥이 우거진 정자의 퇴락한 분위기와 휘어진 몇 그루의 노송이 잘 어울렸다.
무심히 들여다본 현판에 쓰인 글은 이조 시대 문장을 날렸던 정철이 쓴 식영정息影亭으로서 ‘그림자가 쉬어 가는 정자’ 라는 뜻이었다.
하늘에 떠도는 구름송이들이 언뜻언뜻 나뭇가지에 걸려서 주춤거리며 쉬어가고, 키 큰 노송이 던지는 그림자들이 쉬어가는 곳, 단 두 자밖에 안되는 글구에서 옛 사람들의 아름다운 여유와 너그러움을 안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시대의 삶의 현장을 헤아려 보면, 백성들은 생존을 위해 비지땀을 흘리며 일할 때 선비들은 모시적삼에 사군자가 그려진 부채를 들고 담담하게 음풍회월吟風膾月 했던 것이야 비판하여 마땅하지만, 한 조각 그림자까지도 쉬라고 하는 옛 사람들의 넉넉한 여유는 부럽기만 하다.
지금 세태는 어떠한가. 허영과 사치만 부리는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어디에 그런 정자를 세우겠는가. 그저 자기 재산 감추고 권속을 호강시키려고 사람들 눈을 피해 숲속 깊이 호화 주택을 짓고 조상 분묘를 산 사람의 집보다 요란하게 만드는 난리는 무엇인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져야만 실체를 인정하는 각박함과 한 푼 여유 없는 건조함이 우리들 생존의 밑바닥을 숨막히게 하고잇다.
필자가 사는 곳은 ‘뱁새는 언제나 한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나무 한 가지에 살아도 편안하다’는 한산의 시에서 유래하여 일지암一枝庵이라고 한다. 나무 뿌리와 열매로 배를 채우고 솔잎과 풀옷으로 몸을 가린다는 뜻으로 스스로 초의라 이름지어 사십 년 세월을 독처지관獨處止觀하며 생을 자유 자재하게 살았던 곳이다. 조그만 연못에 송사리 떼가 놀고, 수련이 태양과 함께 피었다가 노을과 함께 지고, 달맞이꽃이 달빛으로 노랗게 피었다가 태양빛으로 꽃잎을 덮는 한 칸 초옥草屋이 서 있는 암자는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곳이다.
초의스님은 열다섯 살에 출가하여 약관 열아홉 살에 월출산에 오르다가 달을 보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추사, 다산, 신자하, 권돈인 같은 당대의 홍학석유鴻學碩儒들과 두루 교류하면서 당대에서 가장 앞선 문화를 호흡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폭넓은 교류나 새로운 문화의 호흡에만 그치지 않은, 선禪의 오의奧義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간 학승이요 선승이었다. 스님은 여기저기 큰 절의 조실로서 납자를 제접하다가 마흔두 살 때 이 모두를 버리고 이곳에 초옥을 짓고 사십 년 동안 불이선不二禪의 구경究景의 바다에 노닐면서 선차를 마셨다.
추사가 제주도 귀향살이 때 스님에게 써 올린 명선茗禪이라는 대필이 이곳에 있다. (원본은 간송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스님은 그 글에서 문향聞香, 다시 말해서 차의 향기를 듣는다고 하였다. 향기를 맡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아무리 곰곰 헤아려 봐도, 차를 수백 잔 마셔봐도 차의 그 담담하고 맑은 향기를 좀처럼 들을 수가 없다. 그림자가 쉬어 가는 식영정息影亭에서 차를 달여 마시면, 문득 달맞이꽃 피어 속진의 가슴에 물방울처럼 서리듯, 저 이승의 강물에 출렁이는 무명無明의 향기를 한줌 걷어올릴 수나 있는 걸까.
옛 사람들이 뿌려 준 존재의 향기에 겁없이 노니는 우리 삶이 무섭다. 그림자가 쉬어 가는 곳에서 우리 생각을 쉬게 하자. 각박한 생의 물살에 떠도는 속진의 그림자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