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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시장성과 우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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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장적 1992년 08월 126호
이윤과 가치 창출을 속성으로 하는 자본주의에서 시장 경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시장 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생산된 모든 물건들이 시장을 통해 유통되는데, 이 물건들은 수요와 공급의 적절한 조화에 의해 일반 소비자들에게 전달된다. 하나의 상품이 개발되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품의 가치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 상품을 일반 소비자에게 알리는 홍보와 광고, 그리고 상품이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유통 구조이다.
오늘날 시장에서 새로운 상품이 기존 상품의 기득권을 누르고 자리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비록 상품의 가치가 뛰어나더라도 홍보와 광고, 그리고 유통 과정이 원활하지 못하면 시장성이 없어 도태되고 만다. 비록 상품의 질이 조금 낮더라도 홍보와 광고를 잘하고 유통 과정이 원활하다면, 그 상품은 시장성을 가져서 곧 상품의 질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상품들 사이에서 더 많은 시장성을 확보하려고 서로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이젠 물질화된 상품뿐만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정신이나 사상까지도 시장성에 의하여 팔려 나간다는 점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손으로 대강 주물러서 모양을 낸 떡 보다 정성스럽게 반죽해서 갖가지 모양의 떡판으로 모양을 내고 예쁘게 잘라서 상에 놓은 떡이 훨씬 구미를 당긴다는 말이다. 세상사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달리 특별한 고집이나 철학이 있어서 거지 형상을 하고 몸을 헐게 하는 경우가 아니면, 사람들은 보기 좋게 꾸미는 것에 게으른 적이 결코 없었다.
동서독의 장벽이 무너지고 세계가 통일 독일의 숨가쁜 진행을 지켜보는 동안 우리나라의 유수한 신문기자 한 사람이 통일 열기가 가득한 베를린의 거리에서 송고한 작은 가십기사가 눈에 띈 적이 있다. 막강한 서독의 자본주의 경제가 동독의 사회주의 경제를 흡수 통합한 형태로 진행된 독일 통일의 의미를 얘기하면서 동독과 서독의 요구르트라는 작은 상품이 갖는 시장성을 분석하는 기사였다.
베를린의 동쪽과 서쪽을 오가면서 요구르트를 사 먹고 나서 이것의 맛과 양과 질을 비교하고 기술과 생산 시설 또는 원료 등에 차이가 있는지 알아본 결과, 기술과 생산 시설은 별 차이가 없고 맛에서는 동독의 요구르트가 오히려 더 뛰어나고 포장 용기에 표시된 양도 동독 것이 더 많은 사실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똑같이 시장에 내다 놓고 팔면 사람들도 서독 요구르트를 더 많이 사가더라는 것이다. 기자는 이런 현상을 상품의 포장과 디자인의 차이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구매자가 상품을 고를 때는 여러 가지 정보와 선전, 지역적 애착심, 습관 따위의 다양한 동기로써 선택하지만, 가장 즉흥적인 매입 동기는 상품의 포장과 디자인에 좌우되는데, 서독의 요구르트 용기는 디자인이 매우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동독의 경우는 그저 상품을 담는 그릇의 역할에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자연히 서독의 요구르트를 더 많이 사가더라는 것이다. 이 작은 보기 하나로써 서독 경제와 동독 경제의 비교 우위를 논할 수는 없지만, 이런 동기 하나가 전체에 주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고, 질이 같은 상품이라도 세련된 포장과 지속적 선전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기사는 결론을 맺었다.
우리는 종종 길거리에서 다른 종교인들이 그들 자신의 종교를 위해 판촉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본다. 지하철이나 버스, 그리고 대중이 많이 모이는 장소면 여지없이 그들은 거의 광기어린 모습으로 자신의 종교를 믿도록 선전한다. 개인이나 대중을 상대하여 마치 상품을 판매하듯 열을 올린다. 그러나 종교는 상품처럼 일회적인 소모품이 아니라 우리 삶에 참됨과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하나의 가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성에 의해 좋고 나쁨을 가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오직 인류를 위한 봉사와 헌신, 그리고 인류에게 참사랑의 가치를 심는 보편 타당의 객관적인 진리에 의해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소비자가 시장에서 광고나 홍보가 뛰어나거나 유통 구조가 원활한 상품을 일시적인 기호로 선택하듯 종교를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의 속성을 무시하고 종교의 우월함만을 내세워 제자리에 머무른다면 시장성에 익숙한 대중과의 만남이 순조롭지 못하여 대중에게 멀어질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 불교는 어떠한가. 과연 우월한 사상과 시장성을 갖고 있는가. 아마도 많은 학자들은 불교를 두고 사상은 우월하지만 시장성은 부족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불교가 뛰어난 사상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우월함에 국집되어 오랫동안 대중이 관심을 갖고 있는 시장성에 무관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대중은 이미 자본의 속성에 물들어 있고 홍보와 세일 및 유통 구조가 원활한 시장에 거의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 불교도 시장성을 갖기 위해 홍보와 광고, 유통 구조를 개선할 때가 되었다.
불교는 자본의 속성에 눈을 돌려 사찰의 장을 활짝 개방하고 시장성을 새롭게 개척하여 이성을 가진 눈으로 사상의 우월함에 자부심을 갖고서 당당하고 위세있게 전도와 포교의 깃발을 올려야 하겠다. 그와 더불어 불법 도량과 포교 도량은 프로 정신으로 시장성을 개척하고 포교사는 대중 속에서 불법 홍보에 적극적으로 매진해야겠다. 그래야만 불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립할 수 있을 뿐더러 우월한 사상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자비로 화합하여 인류와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