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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일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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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남덕 1992년 08월 126호
이번 미국 나들이는 짧은 기간 동안 겉만 슬쩍 보고왔지만 내게는 많은 느낌을 주었다. 처음엔 여러 가지 일로 뒤범벅이 되어 무언가 무겁고 착잡한 느낌마저 들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정리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는 자기가 겪는 일이라도 그냥 그대로를 받아들이지는 않고 자기 나름대로 어떤 생각의 틀 속에 정리해서 챙겨넣지 싶다. 마치 이것저것 시장에서 사들인 물건들을 하나하나 분류해서 서랍 속에 챙겨넣듯이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말도 이번 여행길에서 서적이나 비디오를 통하여 자주 들을 수 있었는데, 본디 이 말은 문법 용어로 품사의 어형변화표를 의미하지만, 요즘은 ‘생각의 틀’ ‘세계관의 변화’라는 뜻으로 확대해서 쓰는 듯 하다.
인류 역사에서 요즘처럼 가치관 혼란이 격심한 때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생각의 틀이라는 것은 한 번 세워지면 일생동안 계속된다든가, 바꾸더라도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안정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정세는 우리에게 생각의 틀이나 세계관을 빠르게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도록 강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물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살펴보자.
동양에서 오랫동안 신봉하던 유교 철학을 보면, 맹자는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無恒産因無恒心)”고 하여 물질을 생산하는 일을 강조하였다. 한국 근세 실학에서도 같은 정신에서 민생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백성들의 안정된 삶 위에 선비들에게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가르침을 준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나 지도자는 물질에 의해서 마음이 동요해서는 안 되므로 맹자도 윗글보다 먼저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다(無恒産而 有恒心者 惟士爲能)”고 했다. 동양의 가르침은 마음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이상적으로는 선비 정신을 교육 신조로 삼아 왔음은 우리가 일찍이 경험한 바이다. 불교는 무아無我와 무소유無所有에서 인간 해방을 찾는 가르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 사회에서 농업이 그 생산 양식이었던 동양은 서양 근대 산업 사회의 발달과는 상관없이 현대를 맞이하였다. 자아 실현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와 유물론을 토대로 하는 공산주의가, 자유와 평등의 이념 대립을 가지고서 이 조그만 땅에서 동족 상잔의 전쟁을 치루게 했고 또 냉전으로 반세기가까운 세월동안 조국 분단의 고통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그런데 이제 공산주의는 한쪽에서 전면적인 실패를 겪고 있다. 그러면 또 한쪽의 자본주의는 온 세계를 지배할 이념이라고 할 것인가? 내가 미국에 첫발을 들여놓고 나서 부딪치는 일에서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이렇게 살아야 옳은 건가?’ 하고 수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것도 이런 의문을 더욱 깊게 하였다.
첫째로 물질의 낭비가 눈에 퍽 거슬렸다.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지나친 냉방 장치 때문에 무릎이 시릴 지경이었다. 지금 밤낮으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수가 얼마나 많을까. 그 열기는 대기권을 얼마나 덥게 만들까. 거기에다 비행기마다 냉방으로 뿜어대는 프레온 가스는 지구 상층권 공기를 녹여 낼 것이 분명하다. 휴지의 낭비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엇다. 식사 때마다 플라스틱 일회용 그릇을 쓰고는 거침없이 통에 버린다. 또 곁들여져 나오는 큼직하고 질 좋은 휴지는 쓰기도 아까울 정도인데 일회용이란다. 나는 그 보자기만큼 크고 깨끗한 휴지가 아까워서 차곡차곡 개켜서 주머니에 넣곤 했더니 돌아오는 짐 속에 휴지 보따리가 따로 생겨서 웃음이 났다. 아마도 물건을 아끼는 우리네 할머니 때부터의 습성 때문이려니 했는데, 그게 옳았다. 얼마 뒤에 오레곤 주의 삼림 벌채 광경을 보면서 종이 낭비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절박하게 느끼게 되었다.
오레곤 주는 미국에서도 자연 보호가 잘 되고 나무 많기로 으뜸이라는 곳이다. 유진Eugine시 근처에는 나무를 재료로 하는 목재, 톱밥, 제지 공장들이 많다는데, 이 고장 산에서는 새벽 여섯 시부터 벌채하느라고 절단기를 사용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칠 월부터 건조기에 들기 때문에 그 전에 다 베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산 자체가 목재 공장 땅이기 때문에 마음놓고 잘도 베어댄다. 공장을 돌리려니 나무를 베어야 하고, 또 물건을 만들었으니 써 제껴야 할 것이 아닌가.
휴지는 이야기의 발단이지만, 신문지를 비롯하여 그 밖의 여러 인쇄물들, 신문 기사 알맹이보다 수십배나 더 차지 하는 광고 선전지들, 그리고 그 호화판 포장지들. 모두가 상품 소비를 부추키기 위한 것뿐이다. 그렇게 탐스러운 침엽수를 성목으로 키우려면 몇 십, 몇 백년이 걸릴 텐데, 수만 본의 나무가 하루 아침에 잘려나가는 광경을 보면서 지구 표면에 아마존 강 대삼림이 수백 개가 있어도 이 자본주의의 구조 속에서는 남아날 자연이 없을 듯했다.
종이 한 가지가 이렇거니와, 내가 모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과소비와 낭비가 이 지구를 황폐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음을 헤아려 본다. 끝도 한도 없는 인간의 물질적 욕망. 그것을 극도로 부추키는 자본주의의 구조. 공산주의는 소득의 분배 문제로 자본주의에 도전했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곧 모든 인류와 생물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생태계의 파괴자로서 한시 바삐 이 틀에서 벗어나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결국 인간의 독선 때문에 지구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지구에는 인간만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미국에 머물고 있는 동안 로스엔젤레스 폭동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그소에 들른 것은 사건이 일어난지 거의 한 달이 지난 때였으나, 파손된 거리며 불탄 흔적 따위를 직접 보자니 텔레비전에서 본 광경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여기에서도 독선주의와 이기주의가 화근임을 느꼈다. 여러 종교인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미 국사회에 우리 교포들은 마음의 준비 하나 없이 이민 생활에 뛰어든 것이 아닌가. 우리 땅, 우리 사회는 단일민족으로 형성된 ‘한마음’의 사회다. 이 속에서도 온갖 문제가 속출하는 현실인데, 하물며 ‘각 마음’의 이민족으로 구성된 사회, 특히 백인들의 인종 차별의 결과로 해서 멍들 대로 멍든 미국 사회에서는 인간의 성숙성이 더 크게 요망되는 것이다. 그 성숙성이란, 모든 존재는 상의상존相依相存하는 공존 관계에 있음을 투철히 깨닫고 너와 나는 한 생명의 세포라는 느낌을 감각과 감정의 차원에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훈련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침 저녁으로 예불하고 ‘모든 중생이 함께 성불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참선이나 명상을 통해서 우주와 내가 하나인 무아無我를 체험하는 것도 바로 이 공부이다.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는 가르침은 부처는 저만치 따로 있고 우리 중생도 각각 있으면서 마음만 한마음이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주 곧 진리가 큰 생명체인 부처요, 나는 그 안에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 전체가 하나의 생명이란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멸이 없고 증감이 없고 구정垢淨이 없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면 우리 모두가 공업중생共業衆生이라는 것을 절실히 실감한다. 수천 피트의 상공에서 구름 아래야 날씨가 맑든 흐리든 비가 오든 상관없이, 우주 공간 속에 오로지 함께 탄 여러 사람과 하나의 운명 속에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흔히 비행기를 타면 가부좌를 하고 참선에 들어가곤 한다. 다행히 옆자리가 비어서 가부좌로 앉기가 편했고, 그 옆자리에는 백인 부인이 퀴즈 문제 같은 것을 푸느라고 책을 펼쳐 들고 있었다.로스엔젤레스를 떠나 포틀랜드로 가는 길이엇다.
두 시간 뒤에 우리는 목적지에 착륙했다. 착륙하는 순간에 감사한 마음을 이길 수 없어서 참선 자세에서 합장하며 옆자리의 노부인에게 우리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는 뜻으로 웃음을 보냈다. 그랬더니 그 부인이 “절 위해서 기도해 주셨나요?” 하고 물어 왔다.
나의 기원은 물론 그 부인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나 자신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공업중생이다.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기원했고, 무사히 도착한 것에 감사했다. 나는 서투른 영어지만, 얼떨결에 대답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기원했지요.”
이제 새롭게 제창되는 세계관의 전환은 나와 우주 만물이 하나의 생명이라는 일체감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과 동양 정신의 근본인 생명 존중 사상을 전 지구에 걸쳐 우리 삶의 근간으로 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급한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