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대한 환경운동가들의 원성
불교 내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많은 환경운동단체와 운동가들을 만난다. 그들은 대부분 불교 사상과 부처님의 가르침, 청규나 불교적 전통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원성을 늘어놓곤 한다.
“사찰은 산 속 깊은 곳, 하천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공양 뒤에 함부로 버리는 세제와 겨울이면 얼어터지는 수세식 화장실, 그것도 제대로 청소하지 않은 정화조 때문에 상류부터 오염이 대단히 심각하다. 도대체 스님들은 뭘 하는 거냐? 사찰에 살고 있는 스님들은 워낙 좋은 환경에서 실아서인지, 환경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폼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니냐?”
“불교의 방생도 큰 문제이다. 방생이라는 명분으로 수백 명이 한꺼번에 와서 곳곳에 촛불을 켜 비위를 얼룩지게 하고 여기저기 쓰레기가 나뒹굴게 하는 것도 볼썽 사납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베스와 불루길 같은 외래 어종을 풀어 넣어서 이들이 토착어종을 잡아먹는 바람에 심각한 생태 교란과 오염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 불교는 전혀 비불교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다. 불교의 연기법은 모든 것이 다 연관되어 있고 서로의존하고 있다는 것인데, 다른 곳의 환경 문제에는 아랑곳하지 않다가 사찰환경에 직접적인 피해가 생길때에만 방어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평소에 환경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나누었으면 어려울 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데, 한번도 지역사회나 사회단체의 일에 참여하지 않다가 자기가 받은 피해와 고해 대해서 관심을 가져 달라고 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산중에서 왜 그렇게 크게 불사를 해야 하는가, 불사를 크게 하면 결국 산림을 파괴하고, 사람을 그만큼 많이 불러들이며, 쓰레기며 심각한 오염이 발생한다. 또 스님들이 왜 그렇게 차를 타고 다니는가? 자동차의 배기 가스가 미생물을 죽이니 이는 엄연한 살생 행위이다. 더욱이 사찰 깊숙이까지 차를 타고 들어가다 보니 도로가 넓어지고 그 덕에 신도뿐 아니라 관광객들이 쉽게 사찰에 들어와서 결국수행 도량을 어지럽히지 않는가?”
대강 얘기 들어 이렇게 모아지는데, 이보다 더 많은 불평과 문제 제기를 받곤 한다. 물론 몇 가지는 이미 불교 내부에서 개선되고 있고, 어떤 부분은 그들이 절 집안의 구체적인 사정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는 불자들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소 잃은 외양칸, 이렇게 고치자
지방자치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지역마다 재원 확보, 세금 확대를 꾀하여 리조트나 스키장, 골프장 등 갖가지 위락시설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그 바람에 산중 사찰이 그 직접적인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고, 많은 사찰이 94년 뒤로 수많은 지방자치단체나 개발업체를 상대로 싸움을 벌여 왔다. 그러나 불교의 대응은 체계적이지도 못하고 사후약방문 격이었다. 한때 사찰환경 보전을 위한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지만, 정권에 대해 불교의 위세를 과시하는 정도의 정치적인 효과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지속적이고도 충분한 대책을 마련하려면 대략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
첫째로, 정기적으로 사찰자체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사찰근처의 토양, 대기, 수질오염이나, 소음, 교통 혼잡 및 위락시설의 실태 등을 조사해야 하고, 그것들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 나아가 인근 지역의 서식 어류나 수종 등에 대해서도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환경 친화적인 사찰이 되어야, 지방 정부나 인근의 위락시설 및 국립공원 관리공단 동에 강력한 환경 정책을 요구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더욱 강력한 불사 심의 기구가 필요하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모든 사찰은 불사를 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재정의 파격적인 조달을 위한 불사나 과시용의 무분별한 대형 불사는 신중하게 자제되어야 한다. 꼭 필요한 불사인지 꼼꼼이 따지고, 규모나 예산, 재정 조달 방안의 투명성을 꾀하고, 또 불교 내 환경 지침을 만들어 행정적인 구속력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신도들 중심으로 사찰환경위원회를 만들어서, 스스로 가람을 수호하고 산을 지키는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도 함께 참여하는 기구를 구성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렇게 지역 주민들과 연대하면 주변의 무분별한 위락시설과 환경 오염 시설, 혐오 시설의 건설을 막는 일이 좀더 수월해질 터이다.
그리고, 환경 문제를 위한 전국 단위의 불교 환경운동 기구가 다양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불교내의 문제뿐 아니라 국내의 환경 문제 전반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며, 나아가서는 전세계적인 위기 의식에서 출발한 생명운동에 앞장서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을 도모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펼쳐 나가야 한다.
산이 울창하고 숲이 잘 보존되어 있는 산자수명한 곳이어야 불교에서 깨달은 도인이 나올 수 있다. 제도를 개혁하는 것에 앞서 그러한 깨달은 이들이 많아야 불교가 융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것은 수행환경을 보존하는 것이며, 바람직한 수행환경을 만드는 조건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21세기를 위한 사활의 청사진
사찰은 앞으로 지역사회 및 지역 주민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새삼 말하지 않더라도,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사찰이 되어야 한다. 곧, 사찰은 수행처인 동시에 지역사회를 위하여 일정한 역할을 하는 주민의 의지처가 되어야 할뿐 더러, 한편으로는 환경 문제에 대한 대책처럼 지역사회와 더불어 연대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힘든 문제들도 적잖이 갖고 있다. 따라서 지역 주민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고 잔치나 불사에 초청하는 둥 평소에 서로 긴밀하게 오감으로써 서로 이해와 연대감을 넓히고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사찰의 환경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해인사든 봉암사든 해당 사찰의 문제를 걱정하고 움직이는 신도들이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전통 사찰이라는 자산을 십분 활용하여, 일반인을 상대로 사찰 문화기행이라든지 생태기행 같은 프로그램을 정례화함으로써 그를 통하여 회원을 확대하고 조직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또 사찰 소유의 농장을 주말농장으로 활용하거나 귀농자들에게 임대하여 농사를 짓게 하여서 그것을 통해 사찰의 특산물을 재배하여 도심사찰과 함께 생협 운동을 전개하는 방법도 있다. 현재 실상사에서 재배하는 작물을 도시의 봉은사, 조계사 등에 공급하고 있는 것이 좋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찰의 관람료 수입 중에서, 지금도 일부는 그렇게 쓰고 있지만, 일정한 몫을 환경을 위한 예산으로 별도로 책정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이 중요한 환경불사를 이끌어갈 만한 책임 있는 원력 보살을 발굴하여 양성하고 훈련하는 일이다. 그래서 불교계 안에서 환경을 위하여 앞장서 활동하는 일꾼과 활발하게 움직이는 다양한 환경 단체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