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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나 최대에 매달리지 않는 불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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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2년 06월 124호
최고나 최대에 매달리지 않는 불사를...
어떤 일을 추진하면서 그 것이 세계 최고이거나 최초라는 찬사를 듣는 것처럼 신나는 일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최고나 최대라는 말은 단순한 수식어 이상의 뜻이 있으니, 곧 역사적으로 의미있음을 나타내 주는 가장 적절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최초의 인쇄본인 ‘직지심경’이나 최고의 미적가치를 자랑하는 경주 석굴암을 지니고 있는 불교인들로서는 또 다른 최고나 최대를 없을까라는 기대를 가질지도 모를 일이다.
훌륭한 불사로써 역사적 유산을 남기는 일은 모든 이들의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한 불사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그 찬란한 문화 유산들을 보수하고 정비해서 길이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있기를 발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사들을 보면서 그것이 과연 역사 유산으로서 가치있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대구의 한 사찰에서는 세계 최대의 석조 미륵 대불을 조성하고 있는데 올해 연말에 완공될 예정이어서 이미 그 골격이 드러나 있다고 한다. 또 강원도 한 사찰에서도 세계 최대 청동미륵대불을 조성하고 있다. 물론 이들 거개가 불사라는 이름 아래 신도들에게서 성금을 모금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스컴에서도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있다. 그래서 신도들은 매스컴이 전달하는 불사의 그 꾸며진 의미와 당위성에 탄복하며 너도나도 뒤질세라 시주금 내기를 아끼지 않는다.
남북 통일과 국태 민안의 기원을 가시적인 목표로 하고 있는 이들 불사들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외적이 쳐들어와 국가가 어지러울 때 선대 스님들이 사찰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여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던 일들은 불교사에 수없이 많다. 때로 후대 사가들은 그런 불사로써 민심을 규합하여 국난을 극복했던 일들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불사가 천불이나 삼천불이 아닌 만불이어야 하는지, 반드시 세계 최대나 최고이어야 하는지에 있을 것이다. 우리 불교계는 지금 그런 불사를 반드시 해야 하는지를 한번쯤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불사란 말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 중생을 구제하려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중생 구제의 서원이 담겨 있어야 진정한 불사이다. 본디 조불조탑造佛造塔은 인도에서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 분의 드높은 뜻을 후대에 전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살아계실 때는 언제 어디서나 들었던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을 길이 없게 되자, 사원을 가꾸고 조불조탑을 하는 등 새로운 전도 방편의 하나로써 정착되었던 것이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뒤에도 이런 전도 방법은 널리 쓰여서 전국 산하가 사찰과 관련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 땅에 불국토를 세우겠다는 역대 스님들의 서원이야말로 오늘 우리 불교계를 있게 한 뜻있는 일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십일세기를 바라보는 오늘의 불교계에서는 더 이상 조불조탑에 찬사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불교계에는 그보다 더 시급하게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사를 통해 불교를 조명해 보면, 불교는 고대 농경사회부터 수천년 동안 민족 문화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으나 산업사회로 바뀌는 과도기에서는 자체 변혁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역사적 전환과 시대적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교화 기능을 강화하고, 또 이에 따른 전문 인력을 많이 양성하는 일일 것이다.
불교 종단들은 이미 칠십년대 초부터 종단의 삼대 사업으로 도제 양성, 역경, 포교를 정해 놓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도제 양성, 곧 사람 불사가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제대로 되어야 역경이나 포교도 여법하게 추진할 수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제 양성에 대한 교계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다음 보기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현대식 승려 전문 교육 기관인 중앙승가대학이 건물 공사비 삼십오억 원을 마련하지 못해 종회에 예산 지원을 요구했으나 묵묵부답이었으며, 이를 보다못한 학인들이 화주책을 들고 시주를 다녀야 했던 일이 있다. 어렵게 건물이 완공되기는 했지만, 그 때 진 빚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도서관에는 장서가 부족해서 신도들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에서 말한 대구의 한 사찰과 강원도 한 사찰의 불상 조성비 모두를 합하면 일백억 원을 넘는 대형 불사임에 비추어 볼 때 너무도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번에 불자들은 불사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다. 법당을 새로 짓고 불상을 세우고 만불을 조성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로 가치가 있으며 사원 재정에 기여하는 것도 지나칠 수 없다. 그러나 그 가람을 중심으로 해탈법을 펼 인재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농업을 주 로하는 전통 사회에서는 승려들은 대부분 불교 지식을 갖춘 것만으로도 당대 지성계를 선도하는 지식층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정치나 경제,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지적으로 수련과 축적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대중 앞에 설 수가 없게 되었다. 오늘날 불교가 다른 학문에 견주어 어딘지 고루하게 여겨지는 것은 오로지 불법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자질과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불법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불사의 개념을 인간 불사나 인재 불사에 그 초점을 맞추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 시대를 가릴 것 없이 전통 없이는 새로운 질서가 탄생되지 않듯이 뼈를 깎는 고통과 참기 어려운 대가를 치루지 않고는 불교 중흥의 새로운 대역사를 기대할 수가 없다. 국가의 장래도 사람 키우는 일에 있듯이 불교의 장래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조불조탑에는 수십억 원의 자금을 들이면서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해 왔던 이제까지의 불교계 모습은 사라져야 할 때가 되었다. 훌륭한 스님이 있는 곳에 신도들이 모였고, 그래서 그곳에 조불조탑이 있었음을 망각한 채 앞뒤가 뒤바뀌어 행해지는 불사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부처님을 사생의 자부慈父라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온 사회에 부처님 같은 인격을 갖춘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인력을 육성하는 일에 사부대중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 뜻에서 지난 5월 3일 재가 신행단체인 ‘우리는 선우’가 ‘자비의 등 밝히기를 통해서 본 불사의 현대적 조명’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던 것은 무척 바람직한 일이었다.
이 토론회에서 건국대 철학과 성태용 교수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해 참석자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불사는 거기에 참여하는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 깊게 체득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작은 자아에 집착함을 벗어나 모든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개인의 정신 세계를 열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불사에 참여하는 불자들의 의식이 많은 경우에 자신과 가족의 복락을 추구하는 소아적이고 기복적인 성격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불사들이 그러한 불자들의 성향에 호소하거나 이끌려 이루어지고 있다.”
기복만을 추구하는 소아적 행위, 이것이 바로 오늘 불사의 모습이다. 조불조탑만이 불사인 양 인식되는 한국불교의 기형적 모습을 간파한 한 철학자의 신심 깊은 호소이기에 뜻있는 참석자들에게 주는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밖에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진각종이 자기 종단의 백년 대계를 내다보며 대학을 설립하고 있는 일이다. 지금 종단의 다른 불사를 모두 중지한 채 대학 설립에만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해마다 몇 채씩 지었던 법당 건립을 뒤로 미루고 모든 종도가 합심하고 있으며, 내년 초 신입생을 모집하는 데에도 차질이 없다고 한다.
이 불사는 진각종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종단이 함께 기뻐할 불사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할 점을 찾는 불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