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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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리 일기 - 현진
1992년 06월 124호
늘 하는 일인데도 괜히 짜증이 나고 싫어질 때가 가끔 있다. 우리 방에 군불 지피는 일이 그렇다. 더군다나 똑같은 일을 반복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그래서 어떨 땐 살며시 게으름이 생겨 그냥 넘기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은 꼭 늦은 밤에 장작을 챙기느라 야단을 피우게 된다. 하루라도 거를 수 없는 게 바로 군불 지피는 일. 온돌방은 거짓말을 모른다. 내 노력만큼 따끈따끈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지피면 며칠씩이나 가는 그런 온돌방이면 좋겠지만 이건 그렇지가 않다. 하루를 넘기면 이내 식어버리는 게 탈이다. 추운 한겨울엔 아침 저녁으로 장작을 두 번쯤 넣어 주어야 아랫목, 윗목 안 가리게 된다. 멋도 모르고 나무개비 집어넣는 재미에 아궁이를 자꾸 채우는 날엔 초저녁부터 뜨거워서 혼이 나기도 하지만, 이제는 장작개비로 방의 온기를 정확히 알 만큼 감각이 살았다. 그래서 편리해지고 며칠 분을 한꺼번에 지필 수도 있는 노릇이기도 하다.
한번 군불을 지피면 한 달이나 따뜻했다는 지리산 칠불암 아자방亞字房은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옛스님네가 공부하던 시절엔 군불 때는 일도 커다란 울력의 하나였을 게다. 이곳 부도전 큰방을 한번 훈훈하게 데우려면 장작 서너 짐은 넣어야 한다. 큰 가마솥에 물을 붓고 아궁이 안쪽에서부터 차곡차곡 장작을 쌓아야 불을 지필 수 있을 만큼 큰방이니 그때의 화대火臺소임은 보통일이 아니었지 싶다. 지금도 대중처소에선 화대를 소임으로 방榜에 올리고 있지만 직접 불을 때는 일은 드물다. 큰방은 대부분 기름으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그전처럼 그렇게 어려운 하소임下所任은 아닌 듯하다. 군불 지피는 방과 기름으로 데우는 방의 분위기는 좀 다르다. 그것은 같은 무쇠솥에서 지은 밥이라도 나무를 지펴 지은 것과 석유로 지은 밥맛의 차이쯤이나 될 것이다. 아무튼 온돌방에 지내면서 그 동안 메말라 가던 내 정서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뭐니뭐니해도 온돌방은 절절 끓어야 사는 맛이 난다고나 할까. 며칠 집을 비웠다 돌아온 날은 썰렁한 방이 그렇게 낯설어 보일 수가 없다. 그래서 걸망을 풀기 전에 우선 군불부터 지피게 된다. 그러고는 방이 조금씩 더워올 때 한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무정물無情物도 우리처럼 정을 느낄 줄 알고 숨쉬고 있다는 것.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빨리 상하고 금새 허물어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사는 방 아궁이는 세군데. 한 사람이 앉을 만한 공간이다. 그런데 마루 밑에 있다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다. 무심코 일어났다가는 마룻바닥에 머리를 부딪히기 일쑤다. 그럴 땐 그냥 자리에 앉은 채 아픈 곳을 순간적으로 한참 문지르는 게 버릇이 되었다. 아플 땐 참는 쪽보다 소리를 내지르는 쪽이 감정을 다스리는데 훨씬 빠르다. 그런 꼴을 어쩌다 멀리서 도반이 지켜보고 배꼽을 잡고 웃을 땐 나도 같이 피식피식 웃게 된다. 이렇게 ‘욱’하는 성질만 참고 나면 사실은 별 문제도 아닌데 인욕忍辱하는 일이 생각에만 머문다. 경전에선 인욕하지 못하는 삶의 허물을 다섯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흉하고 악함이 늘어남. 일이 있은 뒤에 후회함.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함. 나쁜 소리를 유포함. 죽어서 악도에 떨어짐. 아궁이 가득 장작을 넣어놓고 화력이 오르길 기다리는 일도 지겹지 않다.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불길이 마치 우리 구도자의 치열한 삶처럼 느껴져 한참을 바라볼 때도 있다. 나무가 잘 타지 않을 때는 눈물까지 질끔질끔 흘리기 예사이지만 장작이 다 탈 때쯤이면 그런 일도 싹 잊고 만다. 그래도 불 때는 일만 끝내고 나면 하루 일을 다한 것처럼 홀가분하다. 군불을 지핀 뒤 방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하는 것도 즐거운 일 가운데 하나.
산중에 사는 일도 몸에 익어야 쉽게 지낼 수 있다. 마음을 쉬지 않으면 힘들다는 얘기가 맞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산空山의 적막이 오히려 마음만 답답하게 할 뿐 내 공부에 별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인지 산거에 얼마쯤 길들여지기까지 마음 병을 조금씩 앓는 게 나의 고질병이랄 수있다. 산중 공부란 결국 내 일상의 여백을 즐길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싶다. 또 이 여백이란 것도 알고보면 외부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내부에서 생겨나는 널따란 여유 같은 것이다. 군불 지피는 이런 일을 통해 한 곳에 순수하게 몰입할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이같은 작은 기쁨은 우리 일상을 늘 새롭게 해주는 힘이 아니던가. 때로는 귀찮게 여겨지는 일상의 일도 마무리하고 나면 기쁨이 몇 배로 돌아온다. 빨래하는 일만 보아도 그렇다. 시작할 때 그심드렁한 기분은, 마치 고난 뒤의 그 개운한 마음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노동은 이처럼 자신이 한 만큼 즐거움이 배어나와야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또 한 가지, 저녁 공양 뒤에 맞이하는 해질녘정경을 빼놓을 수가 없다. 뒤란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댓숲으로 사라지는 아름다움은 송광팔경松廣八景 가운데 첫째로 꼽힐 정도. 이때는 연기냄새도 구수하게 느껴지고 산다는 일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르지 않은 통나무로 군불을 지피면 꽤 늦은 밤까지 소리를 내며 방을 데운다. 장작 타는 소릴 들으며 공부할 수 있는 이런 방이 우리 산중에도 이제 몇 아궁이 없다. 나무 값이 비싸서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터라 자꾸만 기름방으로 바뀌는 처소가 많아진 까닭이다.
무엇이든 투닥거릴 일이 있어야 내 집이라는 애착도 생기고 타성에 젖어 게을러지는 일도 없을 것 같다. 며칠 전 뒤란에다 새로 장작을 들여와 볏더미만하게 쌓았다. 일 년 먹을 양식처럼 든든하다. 비오는 날 장작이 젖을까 우장을 덮어 주는 일도 또 하나 늘어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