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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에 놓여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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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행 - 혜묵 1992년 06월 124호
얼마 전 일본 교오또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시내의 다까시마야라는 백화점에서 중국과 일본의 수교를 기념하는 전시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구경을 갔다. 돈황, 운강, 용문 등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석굴사원들에 견줄 수 있는 맥적산麥積山 석굴사원石窟寺院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곳에 갈 때마다 고물 덩어리들이-고물이란 사실 불상이나 보살님들을 그린 성물들이다.- 물건들을 몽롱하게 일그러뜨리는 조명을 받으며 현실감을 빼앗아 가는 유리막 저편에 던져 있다는 느낌을 갖곤 한다. 그날도 이상한 환상에 덮여 있는 듯한 중국 유물들이 느끼기 어려운 시간과 공간의 공백 뒤에서-맥적산 석굴의 유물들은 운강, 용문 석굴들과 비슷한 북위北魏로부터 명明 이후까지의 긴 세월들을 통해 조성되었다.- ‘당신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 물건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비현실적인 일들이 대개 그렇듯이 쉽게 지루해지기 마련이어서, 그날도 나는 다른 스님들의 찬탄에도 불구하고 건성건성 시간만 때우고 있었다. 문외한이고 방관자인 내 눈에는 그것들은 그냥 돌멩이고 종이 조각이고 나무때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고물들 사이에서 그 경전을 찾아서 자세히 들여다 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동행했던 사람들이 전시물들을 즐기고 있는 동안 나도 나름대로 소일거리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맥적산 석굴 장경 소장이라고 표딱지가 붙어 있는 그 경전에는 ‘맥적산 서응사瑞應寺, 성화成化 십사년 사월 비구 공능恭能 발심 자혈서사刺血書寫’라고 적혀 있었다.-성화는 명나라 헌종때의 연호니 성화 십사년은 서력으로 1478년에 해당하고 조선의 성종 구년에 해당한다- 말로만 들어 보던 혈경血經이라는 물건이었다. 전시되어 있는 경전은 묘법연화경의 한 책이었는데,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냥 손으로 하나하나 쓴 것이 아니라 글자들이 눈에 뜨이게 오목하게 눌려 있는 것으로 보아, 목판이나 활판 따위를 이용한 것 같았다. 경전 끝 부분에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바로 경전에 발려 있는 피의 주인공들이었다. 법화경이 모두 일곱 권으로 되어있으니 한 권당 세 사람의 피가 쓰인 셈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저러한 사실들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몹시 놀랐다는 사실이다. 나는 한동안 경전의 그 바랜 핏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피가 연상시켜주는 인간의 생명력, 치열함, 진지함 따위가 머리를 떠나지 않은 채 맴돌았다. -사실 대장경은 영웅적인 신앙심을 가진, 상상하기 어렵도록 진지한 두타 수행자들의 이야기로 꽉 차 있다.- 어쨌거나 피는 먹물이나 잉크처럼 글씨를 쓰는 데 필요한 물건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기에 사발로 피를 뽑아서 경문을 써 나갔던 것일까? 피비린내를 풍겨 가면서까지 서원해야 할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피와 경전, 나는 새삼스레 그 두 단어 사이에서 생각의 끈을 놓친 채 멀거니 서 있어야 했다. 법화경이라는 경전이야 늘 보던 낯익은 문헌이요, 이제까지 그러한 경문들이 갖는 의미를 제법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나는 내가 읽던 활자판 법화경과 피로 씌어진 맥적산 혈사 법화경 사이에서 어떠한 연결의 끈도 찾아낼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읽던 법화경이나 그들이 사경寫經을 위해 뽑았던 피, 그 어떤 것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단절을 느꼈다. ‘내가 읽고 해석하는 법화경은 누구의 법화경이며 어디서 온 것인가? 법화경의 어느 행간에서 그 의미들을 발견하고 공감의 통로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내가 역사의 흔적에서 그런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면 나는 이제까지 어느 곳에서 가르침의 근거와 이해의 토대를 얻어 왔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밀려들었다. 늙은 일본인 몇 사람이 돋보기를 들이대는 바람에 맥없이 밀려나 나는 다시한번 유리 전시틀 너머에서 국외자가 되어버려야했다. 피, 법화경, 불교, 중국, 일본, 성화 십사년, 오늘... 비구 공능. 게다짝을 끌고 다니는 일본 비구니 한 분이 공손하게 합장을 했다. 일본 절에서도 받아보지 못했던 스님 대접을... 나는 멀끔하니 그 스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사람은 나의 승복과 혈경 사이에서 어떤 동질감을 발견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현대 문명이 갈 데까지 간 자본주의 선진국, 일본. 풍요를 자랑이라도 하듯 극치의 화려함과 세련됨으로 치장한 백화점 전시장. 나는 잠시 현대 도시에 피를 쳐바르는 서양식 공포 영화를 연상했다. 환상적으로 진열되어 있는 많은 상품들 밑으로도 알 수 없는 숱한 사람들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화한 표정에 자비스런 웃음만을 띠고 있는 불상과 보살상들 틈에 핏덩이가 감추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거꾸로 피 냄새를 감추고 곱게 포장되어 있는 상품들이 값어치가 있는 것들이라면, 역시 피 냄새를 머금고 웃고 있는 돌덩어리들도 값어치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역시 이상한 결론이었다.
피로 쓰여진 경전 한 페이지를 보고 나서 나는 갑자기 핏빛 환상으로 사물들을 보기 시작했다. 피 냄새가 잊고 있던 과거와 현재의 가치들 사이를 오고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교묘하게 다리를 걸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고물덩어리들이 갑자기 살아나서 자신의 목소리로 악을 써대는 것 같았다. 긴 시간 속에서 잊혀지고 버려져야 했던 가치가 소리를 지르며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것 같은 환상을 보았다. 확실히 그것은 환상이었다. 그것들도 어느 시절엔가는 분명하고 때로는 치열한 인간들에게 쓸모있는 고물이상의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처음 그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모든 고물들에 대해 야릇한 이질감을 갖고 있었다. 불상이나 보살상들은 특별한 의미가 없는 단순한 전시물에 불과했고, 그러한 전시물들에 익숙해진 나는 벌써 지루해 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왜 불상이나 탱화들, 그 종교적인 의미체들에 대해 친밀감이나 존경심 따위를 갖지 못하는지도 물으려 하지 않았다. 그때 혈경을 보았고 그 혈경에서 나는 피 냄새는 고물들과 나 사이에 없어서는 안 될 끈 같은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같은 불교, 같은 경전, 같은... 그러나, 나는 그 진지함, 그들의 신앙심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그들과 나 사이를 당연히 이어주어야 할 동질감 같은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내가 마침내 돌아온 곳은 시발점, 곧 내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었다. 혈경으로 인하여 자극받은 종교적 동질감은 그 고물들과 나 사이에 놓인 어쩔 수 없는 빈틈만을 분명하게 드러내 놓았을 뿐이다. 쉽게 잊어버리고 있던 불교인의 불교다움, 또는 그 반대의, 말하자면 내가 가지고 있었던 묘한 선입견, 곧 내가 익숙해 있는 불교와 그렇지 않은 불교 사이에 엉성하게 놓인 그릇된 감정들에 대해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중노릇을 하고 있는 처지로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다 보면 이와 비슷한 문제로 난처해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를테면 일본이나 중국의 절들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법당에 들어가서 불상이나 보살상 앞에 서 보아도 도무지 절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중국 낙양의 용문 석굴을 참배했을 때도 그런 난처함을 겪었다. 돌산 전체에 조성된 석굴이나 불상들의 규모 따위야 말로도 듣고 책으로도 보던 것이어서 상상했던 것 이상의 감흥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석굴마다 흥건히 고여 있던 오줌이라든가 불상앞에 버젓이 던져 있던 똥 무더기 따위가 그곳에서 느낀 감흥의 주요 대상이었다. 어림잡아도 구십퍼센트 가까이 파괴된 불상들의 잔재가 오물 속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뿐이었다. 뉴욕의 매트로폴리탄 박물관 구석에 던져있던 불상이, 동경국립박물관에서 보았던 잘 생긴 부처님이 이곳에서 저렇게 징과 망치, 끌 따위의 흉기로 떼어 간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리곤 기껏해야 경전에 나오는 불상을 파괴한 이들의 과보 따위를 연상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낯선 오물과 깨진 불상들 더미 속에서 초라해 보이는 한 여인이 불상을 향해 끝도 없이 절을 해대고 있었다. 남방의 농촌에서 왔다는 그 여인에게서 나는 진한 감동을 느꼈다. 사회주의 중국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그처럼 강한 종교적 동질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한국불교의 원조처럼 숭상받는 달마스님이나 혜능스님의 유적들을 보았을 때에도, 오대산 같은 유명한 성지를 참배했을 때에도 그냥 낡아 빠진 옛날의 쓰레기 더미 같다는 무덤덤한 생각 밖에는 가질 수 없었다.
나중에 나는 절을 하는 중국 여인에게 느꼈던 감동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여인의 신앙심과 진지함, 그 사람이 바라던 수상한 감동들에서 나는 오히려 내가 감동할 수 없던 것들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나와 그 사람이 현재 한국의 불교와 연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것들. 내가, 또는 한국의 불교가 교묘하게 얼버무리고 있던 허구들이 얼기설기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