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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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도원
1992년 06월 124호
깨달음은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하나뿐인 법칙이며 길이다. 깨닫는다는 것은 괴로움의 해결을 뜻한다.
괴로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어느 누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 괴로움의 문제이다. 그러나 괴로움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을 유추해 보면 그것이 지나친 욕망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애타게 찾듯이 우리들도 욕망의 갈증을 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을 갈애渴愛라고 하는 것이다.
괴로움이라는 문제는 우리들 자신을 해부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경전에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의 구성요소를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오온五蘊이라고 설한다. 오온의 성립은 근根, 경境, 식識의 화합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근은 눈, 귀, 코, 혀, 몸, 그리고 의식이 의지하는 의근意根 등의 감각기관 곧 색色이고, 경境은 감각 기관의 대상 세계이며, 감각 기관과 그 대상에 의하여 일어나는 식은 마음이다.
이러한 근, 경, 식의 삼자 회합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습을 촉觸이라고 하는데 이는 접촉接觸을 말한다. 이 촉이 이루어지면 오온의 대상세계에 대하여 괴로움과 즐거움,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감수感受작용과 감수되어 온 크거나 작은 모양 또는 크기가 없는 모습으로 의식 위에 나타난 대상의 모습을 취하는 상想의 작용이 일어나고 동시에 그 대상에 대하여 나름대로 조작하고자 하는 의지작용(行)이 일어난다.
물론 이 수와 상과 행은 동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의식이라는 스크린에 나타난 대상을 조작한 것에 근거하여 그를 통하여 대상 세계를 인식하고 분별 판단하는 인식 작용(識)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그런데 이러한 오온의 활동이 근경식根境識 삼화성촉三和成觸에 의하여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온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참모습을 볼 수있다. 보기를 들어서 감각기관이 빨간 장미를 본다고 하자. 비록 감각기관과 장미라는 대상이 접촉하더라도 그 대상이 빨간 장미라는 인식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곧 대상과 감각기관의 접촉이 있더라도 식이 일어나지 않으면, 설령 빨간 장미가 바로 눈앞에 있더라도 그 장미는 우리의대상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감수 작용과 취상取相 작용과 의지 작용과 인식 작용은 일어나지 않는다.
바꾸어서 말하자면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더라도 상대방의 모습이나 소리가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이는 상대방에 대하여 보고 듣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딴 생각을 할 때는 상대방의 모습이나 목소리는 그 순간 자기자신의 시야나 귀의 영역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모습이나 목소리에 마음이 반응하게 되면 감수 작용 이하의 심리가 곧바로 일어나는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오온의 작용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오온으로 구성된 인간은 인간이 호흡하고 의지하며 살고 있는 자연계인 대상세계와 함께 생성과 소멸하는 연기緣起로서 인간의 참모습을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아마도 불교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게송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의 하나로 보이는 것으로 부처님의 최초 다섯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아라한과를 성취한 ‘아싸지(阿說示)’가 ‘우파티사(舍利弗)’에게 설한 ‘법신게法身偈’는 이러한 의미를 말해 주고 있다.
제법종연기 諸法從緣起
여래설시인 如來說是因
피법인연진 彼法因緣盡
시대사문설 是大沙門說
모든 존재는 연緣으로부터 일어난다
여래께서는 이 인因을 설하시노라
그 모든 존재의 인연의 소멸에 관해서도
이것이 대사문의 설이로다
대상세계에 반응하는 우리의 마음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곧 연기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지만, 마음의 작용은 어떤 대상이냐에 따라 반응하고 연쇄적으로 연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각기관에 접촉되는 대상세계는 다양하다. 그러므로 그에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내용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곧 감수 작용과 취상 작용과 의지 작용과 인식 작용이 마치 폭포수처럼 세차게 흐르는 것이다. 그런 한편 폭포수처럼 흐르는 정신 작용이 어떤 실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경전에는 오온을 곧잘 아지랑이, 물거품, 아침 이슬, 파초 줄기에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괴로움은 지나친 욕망, 곧 갈애라고 앞에서 설명한 바가 있지만, 그러면 갈애는 무엇에 근거하는지를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 오온이 아지랑이나 물거품처럼 고정 불멸의 실체성이 없는 무아無我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어떤 고유의 실유하는 무엇을 자기화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자아 형성에는 반드시 소유욕이 따르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자아란 오온을 관찰해 본 바와 같이 본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자아 형성을 위해서는 자양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자양분은 과거 어릴때부터 접촉해 온 환경과 가정 교육, 학교 교육, 대인 관계 등이 그것이고 현재에도 순간순간 끊임없이 그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고 듣고 하는 등 감성적으로 사랑, 우정, 그리고 분석하고 판단하게 하는 모든 지식을 형성하는, 곧 이성적인 것으로 특히 사상, 이념, 철학, 심지어 종교교리까지 자아 형성을 위한 자양분으로 섭취하기에 바쁜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아 형성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유욕은 대상 모든 것, 곧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에 알맞는 영양분을 섭취하는 습관에 의하여 길들여지고 그럼으로써 욕구가 강해져 간다. 그리하여 자기 자아에 걸맞는 물건이나 감성적이든 이성적이든 그 무엇을 소유하지 못할때는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고苦의 종류는 흔히 생노병사生老病死와 원증회고怨憎會苦, 애별리고愛別離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를 말한다. 그러나 그밖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별업別業에 의하여 생기는 고와 사회나 국가 또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공업共業에 의하여 생기는 고 또한 모두 고가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괴로움의 원인인 자아를 만들어내는 주범은 누구인가, 하고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오온의 작용 중에 인식 작용이 그런 작업을 한다. 특히 분별 판단하는 인식 작용은 의식이 그 중심이 된다. 자아의 형성을 유지시키는 작용도 우리의 의식이 담당한다. 물론 의식의 뒷면에 결과적으로 말야식末耶識과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는 심층의식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표면상에 활동하는 마음은 의식이다. 의식의 성격은 고정적이고 정지적이다. 그러므로 의식이 색에 머물러 집착하면 대상을 무변화無變化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마찬가지로 수受, 상想, 행行에 각기 머물러서 밖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왜곡시켜 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대상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뒤틀리게 만들어 버린다.
이 식이 이러한 성격을 가지는 데에는 의식의 대상이 우리 몸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내부에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길을 가는 사람이 혼자서 희죽 웃는 것이나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걸어가는 사람들은 바로 자신의 내부에 대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