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죽비 갖기 운동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죽비의 소리 - 관암 1999년 06월 208호
한국 승려! 죽비 3성에 용추골을 바로 세우고, 장군죽비 어깨에 메고 대중을 경책하던 그 신선하고 장부 같은 수행자로 되돌아가자.
한때 생사 해탈의 대장부 기상이 늠름하던 수좌들과, 불자들을 이끌어 나가던 신망 높은 스님들이 조계종 망신살에 끼여들어 용 머리는 없고 뱀 꼬리만 남아 불자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니 함이 없는 부처님법을 수행해도 저렇게 되는가 싶지만 현실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스님들도 차 사고 닙니꺼?”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이면 호법 신장도 돌보지 않는기라.”
깨어 있는 의식으로 부단한 자기 정진 없이는 망신살 마장은 덕 높은 중진 스님이나 큰스님이나 예외없이 찾아오는 것이 부처님의 인연법인 것 같다.
종단에 망신살이 돋아나면 출가정신 운운하면서 윗물은 놓아두고 아랫물 행자교육개선에 방향을 돌리지만 이것과 더불어 윗물 맑히는 일, 구체적으로 기존 스님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는 불 같고 얼음 같은 발심으로 출가한 승려들도 윗물을 마시며 중물이 들고 있으니 인과법의 역연함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심히 두렵고 두렵다. 이젠 산중에 있는 수행자는 조계종 망신살이 돋아나면 물 건너 불 구경하듯 “또 시작하는구먼”하는 정도로 무뎌졌고, 그렇다고 숭려직 매너리즘에 빠진 이들이 그런 일로 분개해서 부처님 전에 소신공양 올릴 스님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 불교를 진정 사랑하는 의식 있는 재가 불자의 분노가 어떤 행동을 낳을지 스님들은 심각하게 생각할 때다. 이제 또 부처님이 오셨다 가셨으니(?) 망신살이 재발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세상은 정말 많이도 변하고 있다. 아이엠에프 뒤 효용 가치와 경쟁 논리는 머리가 어리둥절할 만큼 삶의 기반이 되었다. 사회, 경제, 교육계의 구조 조정과 퇴출도 기능과 효율 극대화라는 경쟁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 인식의 기반으로 신 지식인 운동이 햇빛을 받고 있고, 그래서 인간 지고의 가치인 인간다움과 인문, 사회과학 학문이 음지로 가려지고 있다.
이즈음에서 가장 첫째의 가르침인 “종교宗敎”가 양립된 가치관에 지나침이나 부족함이 없도록 중도적 실천관을 제시할 때이다. 진정한 발전도, 삶의 선진화도 자기 의식 개조와 문화 인프라 없이는 불가능하며, 승가의 시대적 사회적 영향력은 청정한 승가 존재 그 자체가 기반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부처님의 밥만 축내고, 정신 못 차리는 혼미한 수행자에게 장군 죽비가 최고의 영약이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수행으로 죽비소리에 용추골을 곧게 세움이 최고의 보약이다. “사회의 목탁이 되어서…”는 목탁의 사회적 상징성도 있지만 한국 승려에게 목탁보다는 죽비소리가 훨씬 더 신선하면서 자신과 대중을 일깨워 주는 상징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에 죽비 갖기 운동을 제안하는 바이다. 스님의 걸망속에는 죽비가 있습니까?
죽비 3성에 한국불교의 앞날이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