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자柱丈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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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여연
1992년 06월 124호
지팡이 비켜 잡고 짚새기 신 신어
조롱박 옆에 차고 청산에 오르니
기화요초 만발하여 온 산에 가득하네.
이 골 물이 찰찰, 저 골 물이 우르렁 청청
어이 세상 좋을시고...
옛 사람들이 읊은 시 구절에서 한적한 산길을 맑은 바람 일으키며 산행하는 한 선승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아직은 세상이 움직임보다 머무름이 많았던 시절, 짙은 녹음 속으로 표표히 만행의 발길을 옮기는 노승의 모습은 그 자체로 영원과 무한의 자리였다.
선가에서 법을 설하는 소중한 상징물인 주장자는 애초 노스님의 보행에 필요한 지팡이에서 출발하였을 것이다. 초기 불교 시절엔 육환장이 있어 스님들이 보행할 때 미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지만 그 육환장이 선가의 주장자로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언제인가부터 선가에서는 이 주장자가 생사의 미망에 헤매이는 자의 어둠을 깨뜨리는 법 방망이로 소중하게 쓰여지고 있다.
덕산의 방망이 질과 임제의 고함소리가 난무하던 시절.
얼마나 많은 선승이 이 주장자의 한 방망이에 생사의 어둠에서 견성의 광명을 얻었던가.
총림의 법회가 열리는 날.
대웅전 청마루에 법상이 있고 그 법상 위 황금빛 좌복에 용 모양의 주장자가 놓여 있다.
청법의 염불 소리 그 고요가 흐르고 조실 스님이 문득 이 주장자를 들고 꽝꽝꽝... 법상을 내려치고 대중에게 이른다.
“이 뜻을 알겠느냐. 대중 가운데 이 소식을 아는 이는 일어나 일러 보아라.”
대중은 깊은 정적에 잠기고...
다시 주장자는 허공을 가르고 법상을 울린다. 이로써 주장자는 모든 삼라만상을 삼켜 버리고 좌복에 다시 놓이게 된다.
어디에서 이렇게 무서운 물건을 볼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