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종회의 지위와 역할
중앙종회는 조계종의 최고의결기관이므로 종단의 화합과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차원에서 집행부(총무원)를 견제하고 비판하며 아울러 종헌과 종법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일을 하는 지위와 역할이 있다.
종헌에 의하면 중앙종회는 ①종헌•종법 개정안, 종법안 ②총무원장 선출, 호계위원 선임 ③예산안, 결산안원유재산 처분안 ④교구확정에 관한 사항 ⑤징계의 사면, 경감 또는 복권에 관한 동의사항 ⑥총무원장 불신임안 ⑦수시로 각급 종무기관에 대한 중앙총회의 감사 ⑧기타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등을 의결한다.
종회는 총무분과위원회, 교화분과위원회, 재정분과위원회, 법제분과위원회, 심사분과위원회 등 다섯 개의 상임분과위원회 제도로 되어 있다. 각 위원회는 소관에 속한 의안청원이나 종회의 수임사행을 심사하여 조사한다. 또한 각 위원회에는 의원외에도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위원을 둘 수 있으며, 전문위원은 위원회에서 발언할 수 있고 종회의 동의를 얻어 종회에서 발언할 수 있다. 그리고 종회는 종무행정을 감사하기 위하여 관계 종무원의 출석을 요구하거나 필요한 서류를 제출케 하며 증인의 출석과 발언,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종회의원의 자격 요건은, 1962년 처음 제정한 종헌에 따르면, 연령 삼십 세 이상이며 승납 십오 년 이상이고 법계 삼 급 이상인 자로 하고 있으며 임기 4년에 50명을 선출했던 것을, 가장 최근인 1988년 3월 제 92회 임시중앙종회에서는 연령 삼십오세 이상이고 육십오세 미만이고 승납 이십 년 이상에 법계 삼급 이상인 자를 자격요건으로 해서 5년 임기에 직선 48명 간선 27명 총 75명을 선출하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회기는 매년 11월에 열흘 동안의 정기 종회를 갖고, 의장 또는 총무원장 그리고 종회 재적의원 삼분의 일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임시회의를 소집한다.
이상과 같이 종헌 •종회법에 규정된 중앙총회는 크게 문제삼을 만한 것은 없는 듯보인다. 다만 종단은 승려(비구, 비구니)와 재가오계 또는 보살계수지 신도(우바새, 우바이) 등 사부대중으로 규정(종헌8조)하면서도, 신도들이 종무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배제된 채 출가승 중심의 배타적인 종단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적지 않다. 그리고 상임분과위원회의 활동이 매우 부진하고 전문위원 제도는 거의 사문화된 실정도 문제가 아닌가 한다.
최근 몇 차례의 중앙총회와 문제점
‘87년 7월 제 89회 임시 중앙종회부터 ‘88년 9월 제 93회 중앙종회까지 다섯 차례 열린 종회안건을 살펴보면 불교회관과 불교방송국과 중앙승가대학과 불교병원 등의 건립, 종헌과 종법의 개정, 동대의 이사 문제, 제도개혁과 징계 동의의 건 등이 계속해서 채택되거나 논의되고 있다. 그리고 종회가 다섯 차례 열리는 동안 9일간의 회기 중 평균 이틀의 회가 고작이다. 게다가 회의는 동대의 이사 선출과 같은 주로 이권과 인사권에 관계된 안을 토의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많은 안건이 주로 위원회나 특별위원회를 새로 구성하여 그 위원회에 위임하거나 다음 회기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일 년에 서너차례나 많으면 대여섯 차례 열리고, 회기는 정기 중앙종회가 삼일이고 임시 종회가 하루나 이틀 열리고 있는 상태에서는 급변하는 사회분위기와 높아지는 불교인의 요구를 충족하기에는 문제가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종회 활동을 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마련하고 있지 못한 것도 그 원인의 하나이긴 하다. 종회의원에게는 일반적으로 보시가 지급되지 않으며 직무 수행에 필요한 경비와 여비 등만이 지급된다고 하니, 이 일에만 몰두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리고 종회의원을 보좌하면서 불교 내외의 제반 문제점들을 늘상 연구하고 분석하여 대안을 마련하는 정책기능을 가진 불교인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각 분과위원회의 전문위원도 거의 전무한 형편을 고려하면 의원 개인에게 이러한 기대를 한다는것은 무리인 것이 현실이지만, 적어도 분과위원회의 전문위원 제도만은 활성화되어야한다. 같은 안건이 진전도 없이 계속해서 되풀이 되는 최근 종회의 현상은 교계지도자들의 무사안일에 그 원인이 있지만, 한편으로 무지와 정책 부재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 아닌지를 묻고 싶다. 심지어는 지난해 l1월 제90회 정기 중앙종회의 감사에서 설립 준비와 건립 추진등이 현저하다는 평가를 받은 불교방송국과 불교회관조차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오늘까지 종단에 의해 진척된 사항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9대 종회의 나아갈 길
지난 6월 7일 선거와 8월 9일 미결교구 재선거를 통해 4년 임기의 새 종회의원이 탄생되었다. 새 종회에는 8대의원 28명이 탈락하고 전체 의원 중 삼분의 일이 넘는 26명의 초선의원이 등원하였다. 이들 초선의원은 10월 7일 정우회(회장증산)를 구성하고 ‘문중과 계파를 초월해 종단에 헌신하는 활동에 임할 것이며 종회가 파행적으로 흐르지 않고 종헌과 종법에 의해 운영되도록 그역할을 다할 것’ 이라고 결성 취지를 밝혔다. 그리고 동회는 분야별로 개혁방안을 연구하면서 참신한 종회상을 구현함에 진력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8대 종회의원의 구성과 큰 차이가 없다는 일반적인 평가 속에서 과연정우회가 얼마나 제 역할을 다하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격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80년대을 마감하고 90년대를 맞이하는 9대종회, 사반세기의 역사를 넘어 이제 어엿한 성년이 된 9대총회가 파행적인 현대 한국불교사를 마감하고 새로운 전기를 가져오는 일대 변혁의 기초를 마련할 것인가.
이번 9대 총회는 일단 형식적인 면에서라도 성실성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일년동안의 살림을 계획할 뿐만아니라 사업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정기 중앙종회는 후회함이 없이 연구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종단 내외에서 중요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는 즉각 회의를 소집하여 따질 것은 정확히 따져서 건설적이며 발전적으로 나아가도록 그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전체회의를 소집하기가 어려울 때는 분과위원회라도 자주 열어서 연구하고 토의하는 자세를 우리 불교인은 기대하고 있다. 지난총회에서는 불교 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봉은사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은채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음으로써 많은 불교인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서 의현 총무원장은 10월 13일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심심치 않게 거론되던 제도개혁의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의 총무원 중심제에서 말사주지를 본사주지가 임명하는 등의 교구본사 중심제로의 전환이라든지, 승려를 수도승과 교화승으로 구분하고 교화승에게는 계율 적용에 융통성을 두자는 안 등은 이미 수년째 자주 거론되어 왔던 것들이다. 서 원장이 지금 이 시기에 이러한 내용과 형식으로 발표한 것이 비록 개인의 정치적인 수세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9대 총회에서는 소홀히 다루고 넘어갈 사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하루 빨리 불교를 정상적인 궤도에 올려 놓아야하는 역사적 책무를 지닌 9대 중앙종회는 제도 개혁을 통해서 이 막중한 대사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정해진 회기를 충실히 활용하고 교계 현안에 대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종회 운영을 정상화하는 시발로 삼아야 하겠다. 그리고 총회는 스스로가 종헌파 종법을 준수하는 데 모범적이어야 한다. 이번 봉은사 사건에서도 임기를 10개월 정도 남겨둔 변밀운 주지를 전격적으로 해임한 것은 종헌과 종법에 의한 절차를 생략한 위법이다. 또 각종 법령이나 제도가 특정인이나 특정 정파를 위해 졸속하게 개정되는 사례도 없어야겠다.
그리고 중앙총회의원은 사부대중의 귀감이 되는 수행자다운 품위와 불교 발전을 위한 전문능력을 배양하여 불교인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도록 했으면 한다. 또 본사와 말사 주지에게만 선거권이 있는 지금의 직선재는 일정한 조건을 갖춘 모든 대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정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외부의 압력과 유혹으로부터 자신과 종단을 올바르게 지켜서 불제자의 예를 다하고, 불교 발전과 사회 발전을 위해 폭넓고도 깊이 있는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종회가 되길 기대한다. 이러할 때 이 땅의 일천만 불교도는 종회와 불교를 위해 음으로 양으로의 기도와 성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