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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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8년 11월 81호
아침에 말한대로 둘은 부지런히 골목길 비탈로 올라갔다. 석탄연기가 시커멓게 나는 땔감은 부자집에서는 사지 않았다.
“석탄 사소오!”
이것은 정해 놓기라도 한 듯 석탄장수들마다 똑같이 외치는 소리였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쉽게 팔렸다.
점례가 좀 늦게 와보니 판순이와 아주머니는 벌써 돌아와 있었다.
“오늘은 이걸로 됐지만, 내일부터는 새벽에 일어나 석탄받으러 나가서 한 사람이 두 부대 이상은 팔아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점례는 스스로 살기위해 석탄부대를 이고 새벽마다 도시의 거리를 다녔다.
“점득이도 그냥 있어선 안 된다. 기만이하고 장사를 해라.”
박씨 아저씨는 앞가슴에 메고 다닐 수 있는 판대기상자를 만들어 껌팔이를 시켜주었다. 이런 때는 그 누구도 놀고 먹어서는 안 되었다.
아저씨는 점례와 판순이가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미군부대에 다니는 경희라는 아가씨를 찾아갔다. 경희 아가씨는 보통 양공주라 부르는 다른 아가씨들과 양품장사 중개노릇을 하고 있었다. 껌과 담배와 치약과 비누가 가장 많았다. 모두가 살아가기 위해 온갖 지혜와 꾀를 짜내었다.
점득이는 장사 나가는 것이 두렵고 어려웠다. 오히려 기만이는 담배상자를 메고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하듯이 스스럼없이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점득아, 나만 따라 와.”
기만이는 점득이 손을 붙잡고 복잡한 거리를 요리 조리뚫고 다녔다.
“담배나 껌이요!”
기만이가 소리 높이 외치는데 점득이는 그냥 말없이 끌려다니기만 했다. 기만이는 손님을 만나면 으례히 제것 한 번 점득이것 한 번, 이렇게 번갈아 물건을 팔았다. 결국 점득이는 기만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앞으로 일어난 제안을 얼른 받아들인 것이다.
정거장 대합실에서 술이 취한 남자가 앞 못 보는 점득이를 한참 동안 째려보듯이 쳐다보았다.
“아저씨, 담배 한 갑 팔아주세요.”
기만이가 술취한 남자에게 다가가서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 노래 한 번 부르겠냐?”
아저씨가 혀꼬부라진 말로 물었다.
“노래를요?”
“그래.”
“나, 노래 못 불러요.”
“니가 아니고 저 얘 말이다. 앞 못보는 애.”
“점득이요?”
기만이가 점득이를 돌아보며 다시 물었다.
“그래, 쟤 이름이 점득이냐?”
“그래요, 얘 노래 잘 불러요. 미국군인이 미국 가서 노래 공부시켜주겠다고 했는 걸요.”
“그럼 됐다. 노래부르면 이 돈 줄게.”
남자는 천 원짜리를 들고 흔들었다.
“점득아 노래불러라. 천 원을 주시겠단다.”
“……”
점득이는 마치 뒤에서 누가 떼밀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기만이한테 미안했던 것을 갚을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저어, 공비 토벌가를 불러도 되어요?”
점득이가 물었다.
“아내 그딴 노래 말고 양산도나 노들강변 불러라.”
점득이는 목을 가다듬고 노들강변을 불렀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시끄러운 대합실에 갑자기 노래소리가 나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가까이 모여들더니 어느새 점득이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섰다.
“……흐르는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손뼉치는 소리가 짝짝거리고 “재창! 재창!” 했다. 술취한 아저씨가 천 원짜리를 건네주었다.
“이봐! 점득아, 천 원이야.”
기만이도 점득이도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한편으로 점득이는 무언가 자신이 생기는 듯해서 기뻤다. 이렇게 노래부르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기쁨이었다.
(점례 누나도 좋아할 거야.)
사람들이 떠들어댔다.
“야, 도라지 한 번 더 불러라!”
“불러라! 불러!”
점득이는 모두가 떼밀어대는 바람에 또 밀려가듯이 노래를 불렀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참말 점득이 노래는 누가 들어도 홀딱 반할 만큼 잘 불렀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고 호주머니에서 백 원 짜리를 꺼내어 기만이에게 쥐어줬다.
“네 형 노래 잘 부르더구나.”
“예, 참 잘 부르지요.”
기만이는 점득이 동생노릇을 금방 해내었다. 모두들 기만이가 점득이 친동생인 줄 알고 있었다.
이날, 점득이가 노래불러서 얻은 돈은 모두 이만 원이 넘었다. 판순이와 점례 누나가 이른 새벽부터 석탄장사를 해서 번 돈보다 더 많았다. 다리 밑 움집으로 돌아와서 함께 모였을 때, 기만이는 낮에 있었던 얘기를 자랑했다.
“사람들이 내가 점득이 동생이라 하던 걸. 그래서 나도 형이라 했어. 술취한 아저씨는 천 원을 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돈을 주었어.”
판순이는 부러운 눈으로 기만이와 점득이를 바라보았다. 기만이가 내놓는 돈은 그야말로 공짜로 얻은 돈이나 같았다. 모두가 대견스러워하며 즐거워하는데 점례는 어쩐지 기쁘지만은 않았다.
“점례야, 왜 시무룩하니?”
판순이가 물었다.
“점득이가 각설이 한 게 뭣이 좋으니?”
점례는 고향 장터에서 장타령을 부르며 동냥하러 다니던 각설이를 떠올리고는, 점득이가 새삼 불쌍한 처지가 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 수 없잖니? 점득이는 다른 건 아무것도 못할텐데…”
기어이 돌아앉아 눈물을 흘리는 점례를 박씨 아저씨가 달래었다.
“점례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점득이도 무언가 노력해서 돈을 벌어야 하잖겠니? 너희들 고아원에서 나와 거지노릇하는 쪽이 더 낫다고 했잖니? 점득이 노래부르는 건 거지노릇이 아니야. 옛날엔 풍각장이도 떳떳하게 살았단다. 전쟁이 끝나 고향에 갈 동안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
석탄가루 아주머니인 혜주댁도 고개를 끄덕였다.
“난 오히려 점득이가 대견스럽구나. 노래를 얼마나 잘 불러서 사람들이 돈올 주겠니? 이 각박한 세상에 …”
정말 이런 세상, 이런 전쟁시에 슬픈 것, 부끄러운 것, 다가린다는 것은 사치한 일이다. 도둑질도 하고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판인데, 살기 위해서는 점득이의 노래부르는 일은 오히려 호강스러운 것이다. 절대 부끄러워하거나 서러워할 까닭이 없다.
“누나, 괜찮어. 난 사람들 앞에서 노래부르니까 기분이 막좋던걸.”
점득이는 정말 그랬다. 사람들이 큰 소리로 재창을 원하고 손뼉을 쳐주는 것이 즐거웠다. 오히려 돈올 얼마 번다는 것보다도 다만 노래부른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해서 점득이는 누나만 의지하지 않고도 밥을 사먹고 신발도 사고 해진 바지도 살 수 있었다. 기만이는 점득이를 데리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전쟁과 피난살이에 시달린 사림들은 점득이의 깨끗한 노래소리가 따뜻한 위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보따리장수도 지게꾼 아저씨도 노인도 떡장수 아주머니도 거지빵 장수도 야바위꾼도 점득이한테 모여들어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점득이가 그렇게 기운을 내고 있는데 반해 판순이는 석탄장사가 힘이 들었다. 돌맹이처럼 딱딱한 석탄을 마대에 담아 이고 다니기엔 판순이로서는 힘에 부치었다. 오르막을 오르다가 몇번이고 넘어졌다. 그럴 때마다 판순이는 몸을 다치는 것보다 석탄자루가 찢어질까봐 더 걱정을 했다.
그날도 판순이는 힘겹게 자루를 이고 점례 뒤를 따라 산비탈 동네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랫쪽 평지 동네는 먼저 장사를 시작한 아주머니들이 단골집을 정해놓고 석탄을 팔고 있어서 높은 산동네까지 가야 했다. 석탄부대도 새카맣고, 얼굴과 입고 있는 옷도 온통 검정투성이가 된 채 둘은 숨을 헐떡거리며 간신히 올라갔다.
“쯧쯧, 아직 어린 처녀들이 이렇게 힘든 고생을 하는구나. 차라리 남의 집 식모가 되는게 나을 텐데 …”
산비탈 어느 판자집 아주머니가 딱한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우린 어서 돈을 모아가지고 고향에 가야만 해요.”
점례가 새카만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어서 전쟁이 끝나야 할 텐데…”
그날 밤, 움막에 돌아와서 판순이가 점례한테 가만히 얘기했다.
“점례야, 난 고향에 가더라도 아무도 없잖니?”
“그래서…?”
“나, 어디 부잣집에 식모로 갈 테야.”
“판순아, 안돼. 고향에 가서 우리하고 같이 살면 되잖니? 외숙부님하고 승숙이 언니하고 승기 오빠하고, 농사지으며 같이 살자.”
“아니야, 나 석탄장사 힘이 들어 못하겠어.”
결국 판순이는 다음날부터 자리에 눕고 말았다. 몸도 마음도 지쳤기 때문이다. 해주댁 아주머니가 판순이를 달래었다.
“판순아, 세상이 이렇게 어려우니 식모로 갈 데도 없단다. 일어나 밥먹고 힘을 내야지.”
“아주머니, 제가 찾아보겠어요. 집집마다 다니면서 물어볼 거예요.”
“그래, 오늘은 우선 밥이나 먹고 나도 같이 찾아볼게.”
정말 고마운 아주머니였다. 남편과 함께 피난을 오다가 아저씨는 모집병으로 싸움터에 나가고 아주머니 혼자서 내려온 것이다. 낯선 타관에서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은 같은 처지끼리 도울 줄 안다.
판순이는 일어나 밥을 먹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판순이는 혼자서 거리로 나갔다. 조금 고집이 센 판순이는 마음으로 정한 것은 꼭 해보는 성미였다.
판순이는 보기에 그럴듯한 집이면 대문을 두드렸다.
“이 집에 식모 구하지 않으세요?”
“필요없다.”
열 집이 넘도록 물었지만 짜증만 내고 고개를 흔들었다. 판순이는 자꾸 걸어다녔다.
(점례는 점득이도 있고 외가집도 있으니 좋겠지)
해가 넘어가고 어두워졌다. 저녁이 되니 거리는 더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판순이는 부ent가로 나갔다. 먼 바다 수평선은 시커멓게 귀신처럼 보였다.
“할머니이…종대 오빠…혹혹…”
판순이는 부둣가 창고 옆에 쭈구리고 앉았다. 새카만 하늘에 별들이 나왔다. 고향 하늘의 별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밤하늘의 별은 누구나 아름답고 서럽게 보인다.
좀처럼 울지 않던 판순이가 오늘은 모아두었던 울음을 한꺼번에 울었다. 실컷 울고 났을 때, 판순이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오히려 울고 있을 때는 다 잊어버려 행복했는데 눈을 뜨고보니 걱정이 찾아왔다. 눈물을 닦고 소매 끝으로 콧물도 닦았다.
판순이가 움막으로 돌아오니, 천막 앞에서 점례가 울고있었다. 울던 점례가 기척을 듣고 바라보니 어둠 속에서 판순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판순아!”
“점례야!”
점례가 판순이를 와락 껴안았다.
둘은 껴안은 채 주저앉아 또 울었다.
“난 판순이가 어디 가서 죽었는 줄 알았다.”
“아니야, 난 죽기는 싫어. 살고 싶어. 살아서 시집도 가고 아기도 낳고 설날엔 떡도 하고 식혜도 해 먹고, 아기 업고 점례네 집에 놀러 갈 테야. 맛있는 것 많이 가지고 갈께…흑…흑…”
“그래, 우리 집에 놀러 와. 같이 윷놀이도 하고 놀자…흑…흑…”
둘은 오래 오래 실컷 울었다.
판순이는 조금 전에는 소리내지 않고 울었지만, 이번에는 점례가 곁에 있으니까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