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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식과 민중의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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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진철승 1988년 11월 81호
불교의식은 본디 부처님에의 외경과 신앙집단의 일체감을 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 부처님에의 외경은 주로 출가자들이 자신들의 깨달음을 위해 반복하는 수련의 의미까지 더해져서 선정형(禪定型) 의례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그 대표적인 예로 법당에서의 조석예불을 들 수 있다.
한편 처음부터 신앙집단의 일체감을 고양할 목적이었던 불교의식은 민중들의 한과 소망을 받아내야 하는 필요 때문에 복합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이처럼 질적인 변화를 겪게된 불교의식은 기원(祈願) 의례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이는 출가자가 재가의 의뢰에 의해 기도를 하여 선근공덕을 쌓음으로써 재가자의 죽은 조상, 혹은 재가자 자신에게 복락이 돌아가게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죽은 조상은 아미타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되고 산 자는 현세에서의 복락을 누리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이러한 기원의례는 철저하게 기복적이고 이기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떤 불교의식이든 반드시 그 끝부분에 ‘회향(廻向)’이라는 절차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불교의식이 단순히 개인 기복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 준다. 흔히 회향을 형식적인 마무리 절차로 단순하게 인식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 회향은 하화중생의 대승적 지향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는 중요한 절차이다. 이같은 ‘대승적 회향’에는 선근공덕을 모든 중생, 즉 재가자나 그의 선망부모뿐만 아니라 모든 무주고혼까지도 함께 구원한다는 ‘대중구원’의 서원이 깃들어 있다. 물론 불교의식을 진행할 때, 이 회향은 무척 ‘형식적’으로 치뤄지기 때문에 그 의미가 약화된다고 할 수 있으나, 본디 회향절차를 의식에 삽입한 대승적 정신 곧 대중구원의 모티브는 중시되어야 하며, 오늘날의 불교의식에서는 새롭게 그 구원과 해방을 이룰 실천적 방법과 내용으로 채워야 할 것이다.
이 대승적 회향의 정신과 더불어 불교의식의 활력을 담보해 주는 것은 그 진행방식에서의 ‘대중성’ 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식, 특히 야외에 괘불을 모시고 진행하는 괘불재를 보면 대통의 축제나 잔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는 불교의식의 행자들이 부처님 외경의 엄숙함이나 신성성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재에 참여한 대중이 대동으로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제의의 공간을 개방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농경문화에서는 농민이나 머슴들이 억압적인 중노동에서 해방되어 문화를 주체적으로 창조하고 즐길 수 있는 여가가 별로 없었다. 야외에서 마을 주민들이 대동으로 어울려 집단적으로 신명을 올리거나 한을 풀고 소망을 기원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었다. 이같이 문화적인 욕구를 채울 수 없었던 농민의 현실, 그리고 불법의 큰길로 대중을 인도해야 하는 포교의 필요성, 이 양자에 의해서 불교의식의 진행방식이 ‘대중성’을 지니게 되었다.

대중의 한과 소망, 그리고 그것을 표출하려는 문화적 욕구와 만나면서 불교의식은 대중의 문화적인 표현방식을 크게 도입하여 활용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무굿이나 사당굿패 등과의 상호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무굿이나 사당굿패는 노동과 직접 관계가 없으면서도 민중의 삶의 현실을 일정하게 담아낸 민중의례 및 민중연희라 할 수 있다.
무굿은 본디 고대의 제천의례에서 중심이 되는 의식이었으나, 계급문화에 의해 민중의 기복성이 커졌으며,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가 하락하였고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음으로 인하여 주로 여성들만 참여하는 기복적인 의례로 변질되어 왔음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중세기의 여성은 부권제 사회에서의 성차별과 양육과 가사와 생산노동을 동시에 부담해야 하는 최하의 노동계층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한과 소망을 받아내 온 무굿의 생명력은 질길 수밖에 없었으며, 동시에 남성을 포함한 피억압대중 모두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매우 유효한 방향으로 활용될 소지가 많다고 하겠다. 그 단적인 예로 숙종조 미륵반란사건 당시 무당인 용녀부인이 대중을 동원했던 능력을 들 수있다. 또 일제하에서도 황해도 광산 지역에서는 광산노동자들의 한과 소망을 받아내며 죽은 자의 진혼굿을 했다는 큰 무당(박수)의 이야기가 전설 같이 전해져오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은 오늘날 민족자주와 민중주체의 새날을 위해 싸우다 산화해간 민중열사의 진혼굿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당굿패는 직접 생산노동자들의 문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마을공동체 단위에서 공동의 삶과 노동을 중심으로 조직된 두레굿패와는 다르다. 이 사당패는 궁중에서 연행을 담당하다가 이탈된 집단과 농토에서 밀려난 유민 집단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전통적으로 광대(廣小)라 하면 이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무당, 승려와 더불어 이조하에서 최하층 신분으로 멸시받으면서도 탈춤과 판소리 등의 각종 민중연희를 창조해가면서 민중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이조중기 이후 각종 변혁의 흐름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들은 주로 절에 기거하면서 승려들과 더불어 걸립을 나가거나, 재공양이 벌어질 때 그 사이에 여러 재주를 선보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사당패의 민중적 연희와 불교의식은 매우 밀접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무당과 사당패와 승려는 모두 이조의 신분체계에서 최하층의 천민집단이었다. 따라서 그들간의 교류는 매우 밀접한 편이었으며, 신분은 천민이 아니되 천민과 다름없이 억압되어 살던 생산대중들과의 친화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중 무당과 승려는 공식적으로 탄압받던 무속과 불교의 사제로서의 독특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무굿과 불교의식을 통해서 민중의 한과 소망을 받아냄으로써 민중이 고통스런 삶 속에서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은 민중의례의 전문가임과 동시에 민중의 상담자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공식적으로 탄압받는 대상이었던 무속과 불교에 민중의 신앙이 집중됨으로써 두 신앙체계의 상호연관은 더욱 긴밀할 수밖에 없었다. 신앙대상이나 신앙내용은 물론 신앙의 외적 표현인 의례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민중의 습속이 되어 갔다. 불교의식이나 무굿 중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자천도의례(死者薦度儀禮)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천도의례는 11회에서 언급한 대로 상주권공과 시왕각배와 영산과 수륙과 생전예수제 등 재공양을 그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굿에서의 천도의례는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전라도는 씻김굿, 서울과 경기도와 황해도는 지노귀굿, 평안도는 시왕(十王)굿, 함경도는 망묵굿 등으로 부른다. 이 중 불교의 상주권공재와 전라도의 씻김굿을 대비해서 무굿과 불교의식의 관련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상주권공재는 이미 살펴본 대로 시련, 대령, 관욕, 불공(상단), 시식, 봉송의 순서로 진행된다. 씻김굿은 부정거리 및 안당, 살아 있는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비는 굿, 망자의 넋을 씻기고 생전의 한을 풀어 주는 부분, 망자가 갈 저승길을 닦는 부분, 집안의 잡귀를 몰아내고 굿을 마치는 부분등으로 구성된다. 이 상주권공재와 씻김굿을 함께 살펴보면, 전체 구성의 유사성과 의식 내용에 있어서의 상호영향, 그리고 생사관(生死觀)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두 의례는 전체 구조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상주권공재는 나무대성인로왕보살과 신중과 불보살을 봉청(奉請)하는 과정, 망자를 깨끗이 씻기는 과정(관욕), 망자를 보내는(奉送) 과정으로 다시 구분할 수 있다. 씻김굿은 당산과 철륭과 성주와 조왕과 삼신 및 각 굿거리에서 산을 청해드리는 청배(請拜), 망자를 씻기는 과정, 망자를 봉송하는 과정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한 의례를 내용에 따라서 크게 다시 구분하면 봉청(청배)과 씻김과 봉송이라는 삼단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둘째로 의식 진행의 각 부분을 살펴보면 무불습합의 구체적인 증거들이 드러난다. 불교의식의 청사(請詞) 및 설단위목(設壇位目)을 보면 불교본래의 불보살 외에도 칠성과 산신과 조왕과 국사단 등 민간신앙 내지 민족적 신앙 대상이 다수 수용되어 있다. 또 불교의식에는 상단의 개계(開啓)나 신중작법처럼 불보살이나 신중이 오시는 길 또는 좌정할 장소를 깨끗이 치우는 절차가 있는데, 이는 무굿의 부정거리와 유사하다.
세째로 불교나 무속의 천도의례에서 나타나는 생사관은 치열한 현실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죽은 자를 위한 의례임과 동시에 산 자를 위한 의례임을 확인할 수 있다. 불교의례의 각종 축원과 무굿의 제석굿 그리고 성수굿과 칠성굿 등은 모두 산 자를 위한 의례 절차이다. 이는 사성제와 무아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는, 불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관이지만, 불교가 이 땅의 민중들의 한과 소망을 받아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로 보여진다.

지금까지 불교의식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면서 그 대승적 회향의 정신과 대중성을 높이 평가해 보았다. 동시에 무굿 둥의 민중의례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신앙대중이 주체적으로 문화를 건설해온 불교의식의 탄력성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의식은 내용에 의해 규정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형식이다. 따라서 중세기 불교의식의 대중성과 대승정신은 당대 민중들의 삶의 리얼리티를 반영한 역사적인 성과일 뿐, 그것이 오늘날에도 탁월한 형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자본제적으로 사회가 구성되어 있는 오늘날에는 제국주의와 지배권력에 대항하며 민족자주와 민중주체의 새날을 위해 진군하는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담아내는 형식으로 불교의식은 변모되어야 한다. 그러한 의식적이고 헌신적인 대중사업과 자기 변모의 노력이 없이는 불교의식은 불교와 더불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