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언제, 누구를 향해 방송할까?
이제 우리나라에는 벽지나 낙도 등에 이르기까지 천문학적인 숫자의 TV수상기가 보급되어 있다. 따라서 라디오 청취자는 십년 전에 비해서 현저하게 줄어들있고 라디오 청취시간도 무척 짧아졌다. 그뿐 아니라 라디오 청취자들 가운데에서도 음악방송만을 하는 FM방송의 청취자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대도시의 경우에는 교통정보나 시장정보 등을 필요로하는 특수계층의 사람들이 대상방송을 주로 듣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대상방송을 듣는 경향은 갈수록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공간에는 줄잡아 열 개가 넘는 라디오 전파가 흐르고 있는데, 과연 이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불교방송은 청취자의 몇 퍼센트를 겨냥해서 언제 방송을 내보내야 될 것인지에 대한 기초자료부터 조사하고 연구분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새벽부터 하루에 스무 시간 동안 계속해서 방송을 내보낸다면 몰라도 한정된 시간만을 방송해야 한다면, 과연 언제 방송을 내보내야 가장 많은 사람이 들어줄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아내야 한다. 새벽에 라디오를 가장 많이 듣는지, 아침에 라디오를 가장 많이든는지, 아니면 저녁인지, 대낮인지에 대한 기초자료를 조사해 청취대상을 정해야 한다. 또한 노인층을 향해 방송할 것인지, 젊은층을 향해 방송할 것인지, 아니면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 그 대상층과 시간대를 과학적으로 조사해서 그에 맞는 방송내용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를 더욱 세분해서 태시기사와 오너드라이버를 대상으로 방송할 것인지, 단순 근로자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 자영 사업자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 등 조사 연구해야할 기초자료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이런 광범위한 기초자료를 조사 연구, 분석하는 일은 갑자기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3.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세 가지 기능
방송의 기능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정보전달 수단으로서의 기능이고, 둘째는 오락 수단으로서의 기능이며, 셋째는 교육 수단으로서의 기능이다.
불교방송은 물론 그 마지막 목표가 포교에 있고 불국정토구현에 있으므로 청취자의 교화를 위해 방송을 내보내게 될것이다. 그러나, 포교와 청취자의 교화에 목표가 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스님의 설법만을 방송할 수는 없다. 방송은 무엇보다 청취자가 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청취자가 즐겨 듣도록 그 내용을 꾸미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포교가 목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직선적인 포교문과 설법만을 방송해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우리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주된 목표는 생존에 있지만,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서, 때로는 떡이나 과자를 만들어 먹고때로는 식혜를 담구어 먹고 막걸리를 빚어 먹기도 하듯이, 같은 목표를 놓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여러가지 방법과 수단을 구사할 수 있다. 재미있게 듣다가 새로운 소식도 얻어듣고 귀가 번쩍 뜨이는 지혜를 터득하기도 하고 무릎을 치는 교훈도 접할 수 있는 방송, 불교방송은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방송이어야 한다. 알아듣기 쉽고 재미있는 방송, 신나고 유익한 방송, 게다가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지혜에 눈뜨게 해주는 방송이 된다면, 불교방송은 정보전달 기능과 오락 기능과 교육 기능을 두루 훌륭하게 조화시키는 방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턱없이 부족한 ‘소리’ 자료
라디오방송은 소리를 재료삼아 방송을 엮어낸다. 사람의 말도 글자가 아니라 소리로 전달해야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소리로 전달해야 한다.
간단히 ‘소리’라고 하면 아주 쉽게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이 ‘소리’ 만으로 모든 재미와 정보와 가르침을 전해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자면, 같은 언어라고 하더라도 시각에 호소하는 인쇄물에서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사전이나 옥편을 찾아보고서 알 수 있지만 오직 청각에 호소해야 하는 방송에서는 그 전달방법이 인쇄물에 비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만일 법당에서 하시는 스님의 설법을 그대로 라디오 전파에 실려 내보낸다면 알아듣는 청취자의 숫자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한문 용어로 가득한 불교경전을 그대로 낭독해 준다고 가정하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청취자는 과연 얼마나 될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설법이나 불교경전뿐만 아니라 소리를 들려주어야 할 불교방송이 오늘 당장 방송을 내보낸다고 가정할 때 ‘소리’의 재료와 종류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찬불가 한 종류만 살펴보아도 하루에 다섯곡씩 열흘 정도 방송하고 나면 늘 틀던 곡을 되풀이해서 내보내야 할 정도로 노래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며 더욱이 가요
나 가곡이나 교향곡, 창(唱)에 이르면 그 숫자는 훨씬 더 줄어든다.
방송을 제대로 하자면 불교적인 갖가지 ‘소리’들을 하루 빨리 찾아내거나 만들어내서 확보해야 한다. 불교방송이 전파에 실어보낼 소리는 설법일 수도 있고 가요일 수도 있으며, 연속극이나 염불이나 강연이나 총소리나 목탁소리나 풍경소리 동일 수도 있다. 빠뜨리지 않고 찾아내거나 만들어내서 확보한 수많은 소리들을 불교방송의 전파에 실어서 쉽고 유익하며 재미있고 감동적인 방송을 하려면, 이를 위한 조사와 연구에 지금부터 박차를 가해도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누구를 대상으로, 언제, 어떤 내용의 방송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기획이나 편성이나 제작이나 실무 등을 맡은 부서별로 전문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겠지만 기초자료를 확보하고 조사 연구할 불교 방송인을 발굴하고 교육하는 일은 빨리 서둘러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