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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범신교종횡고(唯汎神敎縱橫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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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설창수 1988년 11월 81호
꼬마 목불단 앞 향로에다 삼백년 명가의 일본산 호문목(好文木) 선향 두 대를 피워놓았건만 도무지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참고하란 대로 이 난의 먼젓달 글을 읽었지만 그 온축있고 티끌없는 글 맵시에 더 주춤거려질 뿐만 아니라 도저히 그 ‘유마의 방’ 문턱에 발을 걸칠 수가 없다. 언감생신 유마의 방에 앉아 말하랴. 하긴 나 나름대로의 독백쯤이야 왜 없으랴마는 생각다 못해 앞세워 본 제목마저 거창스러워 마치 개발에 놋대갈 격이 아닐까 싶다.


지리산의 한 산등성이, 해발 1,400미터고지에 신라 법계(法溪)스님이 세웠다는 법계탑의 법계사가 빨치산 토벌 때 불타서 그을린 채 탑신만 남아 있는데, 1,500만원을 일차 지원한 관리소가 있고 불상한 분 모셔다놓은 불전(佛錢) 법당이 있다. 그 곳 산청군 덕산의 남명선생의 후손 한 분이 신도 회장으로 있고, 그 조카 J씨가 총무로 있는데 그가 바로 실권자이며 수입자다. 그는 진주에까지 지명된 억센 행동파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절 아닌 절에 법화종 주지 임명장을 지닌 주지 M, 총무 스님 I, 그 도반 셋 해서 모두 다섯 스님이 치고 들어간 사건이 있었은즉, 이들과 속계에서 종종 찾아와 불전(佛錢)을 걷어가는 전임 J총무 측과의 사이에 갈등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기당천인 J 앞에서 그 다섯 스님은 그야말로 순진하고 무력할 뿐이었다. 하는 수 없어 스님들은 진주 명사 두 분에게서 지지 날인서를 받아 J 신도회장에게 이양을 권했으나 그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이 일로 스님들은 소관 군청 주무계장의 간접 협박 전화를 받았고 모 특수기관까지 나서서 스님들을 침입자로 몰아붙였다. 다섯 스님은 이 무인 산상의 법계탑 그늘에서 순교할 각오마저 굳히면서 버티었고, 지지 서명자가 소관 군수에게 “절이 점포냐? 중 없는 절이 있겠느냐?”며 행정수습책을 촉구했으나 군수측은 “불교계의 내분에 간섭할 처지가 못되고 그것은 절이 아니라 법계탑의 관리소일 뿐이다”며 계속 모른 체할 뿐 아니라, 진정하러 온 M주지와 I총무에게 위압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 그야말로 고립무원 지경에서 불탄 초파일 초롱값 150만원은 사주(寺主)가 고스란히 챙기고 스님들에게는 사례조차 없었다니, 일선 종단의 형편이 가이 무인지경이라 측은하기 이를 데 없다.

젊은 구도(求道)의 정열들을 때로는 순교자를 각오하고도 역사있는 절간을 구출하지 못한 채 중앙집권적인 행정 방임상태 속에서 이렇듯 무력할 뿐이니, 본불께서 말씀하신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란 대명제가 어디로 가야 하나? 일제 때 만해 왜 불교유신론을 상기하여 오늘의 시점에 걸맞는 제2의 불교유신론이 제창됨직도 하거니와, 오히려 이 허점을 틈타 소위 빈중불교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민중과 중생이 다르고서야 민중 아닌 중생과 화화중생 아닌 이질투쟁까지 발생할 소지인 것을…내허(內虛)에서 외침(外侵)에 자초됨은 예로부터 승-속 간의 정리(定理)인지고. 하기야 주지 한 자리의 시가설(時價說)을 망설이라고만 묵쇄할 바아님은 종단 실권자들이 자책할 바 아니겠는가.
한술 더 떠 큰 선거가 있을 때의 편파가담은 경-향 간의 엄연한 사실일진대, 스님들은 유범신앙교(唯汎神仰敎)간이 서로 다를 바 없으니 아장피장으로 교세자위가 불가피하다는 합리화다. 원칙과 현실의 관계가 서로 통하여 넘나들고 서로 섞이어 조화되는 것인양 안이한 생각들이 신앙의 세계에서도 일차적 해석으로 합리화된다면, 종교는 아예 정치 현실 앞에 무릎 꿇어 존재 이유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종교가 강약 득실의 현실 정치에 편파한다면 끝내는 당쟁의 앞잡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그것은 신성(神性)이 수성(獸性)으로 야합되고 불성(佛性)이 속성(俗性)으로 타락됨이니 하화중생은 주객전도로 마침내 자멸을 가져온다.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를 설한 이 종정은 내내 “악인이 곧 선인이고 선인이 곧 악인일 수 있다”고 순환논리로 점잖게 일관하였으되, 이는 김 추기경이 “민주화란 신의 본뜻이다”고 갈파하여 천수왕권론을 부정한 것과 대비가 되는 바화합과 총화, 융화와 타협이 두리뭉실하게 혼란해진 상황을 전생과의 선인선과(善因善果)적인 윤회사상쯤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오히려 기득권자를 합리화하여 헌정된 국가 원리나 법문화된 사회질서를 마비시키는 악순환을 조장했다고 보아 그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긍정적 긍정일 뿐으로서 결국 원리적 대긍정의 반작용으로 전락하여 하화중생의 본사명제(本師命題)를 역행하는 것이기 때
문이다.
세인 앞에 누추하게 추태를 드러냈던 신흥사 살인 사건이며 불국사나 봉은사의 집단공방 폭력 사건에 대해서 종단 지도부는 교리적, 교정적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음을 자인하지 않을 것인가? 교리의 엄정함으로 권력 야합이나 내정 타락을 근치하여야만 이 나라 종단들의 탄근된 총림무성(叢林茂盛)이 비로소 바람 속에서도 의연한 법통(法統)의 공위를 찾을 수 있고 더불어 교세의 신장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당을 짓기 위해 부동산 중개를 가장하여 전주를 유인하고 살상한 개신 기독교 목사의 독직 범죄 사건이 증명하듯이 성직자라서 곧 성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정치가라서 도덕가도 지도자도 아님을 본다.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가짜들과 그들에게 빌붙어 설치는 도당들이 공화국 천하의 단상단하에서 백귀야행 아닌 백주횡행함을 보거니와, 이렇듯 정당 정치가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표리부동으로 국민을 속여먹는 가면놀이를 일삼음을 경계해야 할 바인데도 “악인도 선인, 선인도 악인” 하며 수긍하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용서하고 있다면, 다시 말해 진짜의 준엄한 존귀성을 먼저 일깨우지 않는다면, 하화중생의 본사명제는 연목구어이거나 양두구육일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15세기의 기독교 유신론의 세계를 루터나 칼빈 같은 이들이 들고 일어나 종교개혁을 이룩하였다. 그들은 교리주의나 교권주의를 속박으로 보고 그것에서 벗어나 인간을 되찾으려고 몸부림하였던 바 이를 곧 반항파(프로테스탄트) 또는 개신교라고 일컬으니, 이는 민권사상가 룻소의 선창으로 유럽 천지에서 문예부흥(르네상스) 이 일어나고 자유 인간의 백화요람이 전개된 것과 그 뜻을 같이하였다.
그러나 그 해방과 그 자유로 전개된 개신교나 낭만주의 문화가 그대로 인간 수복의 이상적인 나침반이나 에덴동산이 아니었음을 그 뒤의 인류 세계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듯이, 해방종교만으로 영혼은 구출되지 않았고 자유개성만으로 인류 문화는 이념의 실현을 구가할 수 없었다. 그것은 한갓 변증법적인 과정으로서만 이해되어야 했고, 새로운 합(合)의 산마루를 위하여 20세기의 문명세계는 그가 찾았다는 상실된 인간을 다시 되찾기 위해 이번에는 기계문명이란 야수성의 도량 앞에서 구원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일차대전후에 생겨난 ‘다다이즘’보다는 분명히 지양(止揚)되었다고 보아야 하는, 이차대전후의 실존주의 사고방식은 전면 부정이나 방종 만행을 다같이 부정하여 책임있는 인간이란 사회관계성까지 조건으로서 내세웠다지만, 결국 인간이란 신-불(神佛)의 고아일 뿐 전혀 어림없는 불완전한 종촉으로서 호로 같은 실존임을 재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 파괴력이 이 땅덩이를 열몇 번이나 깨뜨리고도 남을 양의 핵을 현재 인류는 보유하고 있고, 불가피하면 다른 별에 옮겨가서라도 전략하고 신천지를 꾸며 살아갈 수 있으리란 생각이 꿈이 아닌 실현가능한 일로서 실험 도상에 있고 보니, 인간이란 객체성 아닌 자체 내면성이 백척간두의 자기 관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외율적인 도덕운동, UN기구, 유일 지구촌운동, 평화운동 등이 제기되고 구상되고 수행되고 있다지만, 그 성과가 가면의, 철면피의 직업자인 정치가들의 화합운동, 외교협정 공작 따위로 어찌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는 소위 허울좋은 인간성이란 괴물이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어떤 처방으로도 치환될 수 없을 만큼 인류 생성 이후로 고질화되어 온 뿌리깊은 본성 존재임을 우리는 익히 아는 바이다.

철학도 또 종교마저 어용학자, 궤변가, 혹세무민한, 위선자, 의식 설교업자들에 의해 모독된 옥석혼교(玉石混교淆)의 20세기는, 그래서, 카리스마들의 경고처럼 자승자박의 세기 말 시기에 임박했단 말인가?
문제의 고는 여기에 있으며, 그 고를 풀어내는 길은, 다름 아니라, 원생에서 지녔던 야성 또는 속성과 문명에서 때묻은 부도덕성이나 잔인성의 고를 풀어 웃통도 바지도 속옷까지도 훨훨 벗어던지고 태양과 비바람과 산하와 일체의 대자연 앞에 자연의 일부인 인간 본연의 모습-진짜 나로서의 모습을 확정하고 재인식하는 데에 있다. 이렇게 진단되고 자각되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이니 성자도 편작도 슈바이처도 온통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검둥이 숯 나무란다”는 속언과, “제 눈의 기둥을 모르고 남의 눈의 가시를 말하느냐”느니 “죄없는 자만이 그 여인을 때리라”며 바리새 율법의 거짓을 꼬집은 예수님 밀씀과, “도불원(道不遠)”이니 “법은 뗏목 같거니 저쪽 언덕까지 건너가거든 그것을 버리라 하였는데 하물며 법 아닌 것도 못 버리느냐” 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을 버리기 훨씬 앞서 제가 물려받을 카필라 왕성을 담넘어 도망침으로써 버렸음을 두루 생각한다.
불교철학이나 기독교신학의 논리의 말미암음이란 학문자의 일일 터이요 인간성의 본바탕은 선(善)이요, 신(神)이요, 불(佛)인즉 그 귀, 그 눈으로 성자의 말을 요약할진대, 그들이 필생으로 가르친 요체는 가짜 아닌 진짜이니 곧 유범신간으로 우주와 생명, 자연과 인생이란 진실에 대한 설법 그것이요, 그것으로만 사회도 나라도 겨례도 인류도 그 빛깔인 광명과 일체감을 도출하고 체험할 수 있으리라고 선언하고 설했음이다. 그것을 지엽적으로 그릇 새겨, 우상을 섬기지 말라 했다고 한겨례의 선조인 건국자 숭배사상까지 우상숭배로 몰아붙이는, 곧, 단군 배격 사상을 교회당에 대서특필하는 따위의 일부 기독교파의 자해성 착각은 가르침을 협의로 해석한 데에서 비롯된, 남과 나의 진실을 착각함이 아니겠는가.
종교든 철학이든 학술이든 사상, 예술, 정치 사회의 일체 현상이 만법일심(萬法一心)의 진짜 마음에 뿌리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섭리(법)의 심판과 자가당착의 결과로서 처결됨은 동서고금의 인류사가 증명하였다. 그러나 하나의 거짓(악, 죄)으로 하여 열의 참(선, 덕)이 부정될 것이 아니라, 대긍정에의 제해(除害) 작업으로서 더욱 깊이 정진하고 박애로 전개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