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래루 고승의 숨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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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재범
1988년 11월 81호
누군가가 나에게 우리 민족이 통일되면 제일 하고픈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리라. 새벽이 지나 찬란한 아침 햇살이 찾아들면 만래루에 올라가 여러 훌륭한 스님네 모시고 좋은 설법 실컷 듣고픈 것이 나의 소박한 바람이라고. 일전에 한겨레 신문에 구보타씨 미공개 사진으로 원색화보의 묘향산과 그 묘향산 골골에 자리잡은 웅장한 천년의 가람들이 실리었다.
눈부신 초록의 녹음 속에 세상살이에 찌든 우리의 온갖 무명번뇌도 녹일 듯한 장쾌한 흰 물줄기 폭포수들이 내리쏟는 묘향산 대웅전 앞뜰에 연분홍빛 진달래 꽃잎들이 화사한 보현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우리네 고승들께서 그들의 우렁찬 목소리로 설법을 폈을 만래루의 눈덮인 겨울 모습. 울창한 소나무 숲에 에워싸여 구석구석에 고승의 구국의지가 어려 있는 보현사 경내의 공적비와 사리탑들.
화보로만 보아도 장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으니 실제로 가 본다면 어떠할까. 절로 가고픈 마음이 안개처럼 밀려와 피어오른다.
금강산 못지 않게 웅장한 심산유곡과 기가묘묘한 기암절벽, 희디흰 폭포수를 골짜기마다 끼고 있다는 묘향산 이 같은 절경을 지닌 묘향의 품안에는 오백년쯤 전에 삼백육십여 개의 절과 삼천여 명의 스님이 있었다 하며, 지금은 보현사의 크고 작은 건물 사십여 동이 자리잡고 있다 한다. 보현사는 우리나라 5대 사찰의 하나로 손꼽히며 또한 임란 때 서산대사가 의병을 일으킨 곳으로 유명한 것은 우리가 널리 아는 바다. 보현사 경내의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공적비와 묘역, 사리탑들 그리고 대웅전 맞은 편에 설법장소로 활용되어 고승의 자취를 담고 있는 만래루의 화보를 보고 있자니 그 옛적 고승의 숨결들이 가슴에 와닿는 것만 같아 한없이 그리워진다. 이러한 나의 그리움이 언제나 저 고승의 숨결어린 만래루에 옮겨가 앉아나 볼까.
이번 올림픽 동안 서울을 넘나들었던 여러 나라 선수와 이방인들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한편 한동포이면서도 가고 오지 못하는 우리네 처지가 못내 부끄럽고 한스러웠다. 십이년 만에 동서가 만나 평화와 화해를 내세우며 너와 나의 벽이 없고 구별이 없다면서 ‘손에 손잡고’를 열창하는 동안 줄곧 타오르던 서울올림픽의 성화도 이젠 꺼졌다. 유독 남과 북의 민족만이 올림픽 광장에 어우러져 서로 손에 손을 잡지 못한 아쉬움과 역사의 오점을 남긴 채.
텔레비젼과 신문, 라디오 등 모든 언론매체들이 올림픽 축제의 대성공을 민족의 영광이라며 자화자찬하기에 지면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몇 십년 전만 해도 우리 땅에서 우리가 제대로 주인 노릇을 못하고 지냈던 지나간 역사의 쓰라린 기억을 되새겨 보면, 그러한 시대의 역경을 딛고 지금은 당당히 우리가 주인되어 세계의 손님들을 초청하게 된것은 실로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위대한 국민 드디어 해내다.’
그렇다. 우리는 위대하게 해내었다. 올림픽 사상 최고의 시설을 마련한 가운데 세계의 선수들과 예술인들과 학자들을 민족과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한자리에 초청해서 풍성히 대접도 잘 해주었고, 기대 이상으로 우리 선수들은 금메달을 듬뿍 얻어냈다. 또한 과거엔 생각조차 못했던 공산권의 애국가와 오페라와 발레 등을 직접 듣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올림픽의 겉과 속을 들여다보면, 칠년 동안적지 않은 투자를 들였고 또 보이지 않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땀을 쏟아부은 만큼 과연 얼마나 서울 올림픽에서 진정한 인류의 평화와 화해의 참뜻을 심었는지 하는 점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화려하고 요란했던 올림픽의 겉치레와는 달리 우리는 여러 가지 씁쓰레한 광경들을 서울올림픽의 이면에서 보아야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명예를 얻은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인이 신성한 스포츠 경기를 통해 서로 반목과 대립을 초월하여 화해하고 평화스럽게 지내자는 올림픽 본래의 모습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성해야할 올림픽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몰상식한 선수가 있는가 하면 오로지 명예와 출세에 눈이 멀어 메달을 박탈당하는 선수도 있었다. 하기야 세상엔 별의별 일들이 있기 마련이려니 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고 참을 수 없는 것은 일부 선수들의 우리 민족에 대한 모욕적 언행이다.
대중이 가장 잘 판단하고 예민하다는 것은, 올림픽 경기장에서 우방이라 여겨 왔던 미국팀에 대해서는 일제히 야유를 퍼붓는 대신 공산권의 소련팀에게는 열광적으로 환호를 보내면서 미국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자연스레 표출한 관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오만한 미국인이 한국민족은 고양이떼니 들쥐떼니 개미떼니 하는 표현으로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아온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성스러워야 할 올림픽에까지 와서 편파보도는 제쳐 놓고서라도 도둑질을 하고 강도질을 하고 심지어는 이유없이 임산부를 폭행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나, 도대체 이 땅을 무엇으로 아는지 아예 말문이 막혀 버린다.
우리는 올림픽을 통해서 과연 무엇을 성취해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잠실의 올림픽 개막식과 동시에 한•미•일 군사 합동훈련이 우리의 바다에서 벌어졌고, 이 같은 전쟁놀음을 규탄하는 자리에는 최루가스가 흩날렸으며, 평화의 제전이 벌어지는 동안 평화구역이라는 이름 아래 평화로와야 할 것들이 오히려 평화를 잃었다. 또한 평화의 오륜 깃발이 휘날리며 세계인이 소리 높여 평화를 합창할 때, 바로 그들의 발 밑에는 미국의 군사전략에 의해 가공할 막대한 양의 핵무기가 도사리고 있는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핵은 무기이기 이전에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무서운 적이며, 어떠한 방법이나 장치로도 핵으로부터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생명있는 것은 상처와 죽음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생명을 가장 귀중히 여기어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하셨다. 엄청난 생명을 단숨에 삼켜버릴 핵무기가 우리가 결코 원하지 않음에도 이 땅에 있음이 현실인데 무슨 허울 좋은 평화의 제전이란 말인가.
쿠바의 지도자로서 국가혁명 평의회 의장인 피델 카스트로는 사마란치 I.O.C.위원장에게 보낸 서신에서 “건강하고 명예로운 올림픽 환경은 최루가스와 국민탄압 아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도덕적 원리들이 금메달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의 말을 그냥 한쪽 귀로 듣고 흘려 버리려 해도 우리의 현실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현란함에 넋을 잃을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내면의 진실을 통찰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세계인이 함께하는 올림픽 광장에서 우리 민족이 하나되어 얼싸안게 되기를 수많은 젊은이와 국민들이 열망하며 갖은 노력과 땀과 피까지를 바쳤건만, 일부 위정자와 외세의 입김에 의해 반쪽 올림픽이라는 지우지 못할 오욕을 끝내 남겨 놓고 말았다. 공산권을 비롯한 세계의 젊은이들이 서울 거리를 활기차게 다니는데, 정작 와야 할 북녘의 우리 형제자매는 왜 오지 못하는가. 분단의 서러움으로 남녘, 북녘의 젊은 가슴들이 또다시 깊은 상처를 입은 이 현실을 남북의 관계자들은 역사 앞에서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우리가 단독 올림픽으로 얻어낸 것이란 일부 권력층의 기득권 유지와 독재의 연장에 도움을 준 것이고 갈라진 민족의 통일에 찬물을 끼얹은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는 인간의 자주적인 요구와 실천에 의해서 끊임없이 발전해 간다. 사소한 자연의 변화를 통해서도 세상은 결코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용납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고집스럽고 힘있던 옛 습관과 제도의 뿌리도 언젠가는 다 낡아 그 한계에 도달하면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 버리기 마련이다. 새것을 받아들이기 두려워하고 낡은 것을 버리기 아까와 하는 인간의 몽매한 타성도 결국은 시간에 의해 무력해진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젠가는 이 땅이 하나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날을 하루라도 빨리 당겨 분단으로 상처 받은 사람들이 모두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평화스럽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그치지 말아야 하겠다.
민족의 통일에 미온적이거나 무관심한 것은 진정으로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바라지 않는 자의 어리석기 그지없는 행위이다. 불교도 민족 공동체의 일원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음을 이제는 분명히 자각하고, 이 땅의 분단 극복과 통일의 실천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민족된 권리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 동안 불교 일각에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을 하고 있으나, 이제는 그러한 노력들이 좀더 폭 넓게 불교대중 속으로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산적한 문제들을 부처님의 훌륭하고 뛰어난 말씀과 실천에 입각해셔 극복해가고, 대외적으로는 역사의 주인임을 깨달아가는 대중들과 신심을 다해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이제는 불교인 개개인의 차원에서 통일을 논의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전체 불교인이 통일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과 구체적인 통일방안에 대해서 고심해야 할 단계다. 신부나 목사들은 북한의 교회를 방문하여 미사까지 보고 오기도 하는p, 우리는 옛 자취가 보존되어 있는 수많은 절과 스님들이 있는 북녘땅을 왜 못 간단 말인가. 북녘에도 부처님을 귀하게 모신 법당이 엄연히 존재하고 수도하는 스님네도 있다 하니 한번 그들과 만나 법담도 나눠보고 도반도 맺어보자. 우리 불교도 나름대로 실질적인 차원에서 실현 가능한 남북불자간의 교류를 모색하다보면 반드시 길이 열리리라 본다.
부처님께서 최초로 깨달음을 얻고 세상을 둘러보시고 나서 “대지의 만물이 모두가 불성을 지난 평등한 것인데 분별과 차별로 이를 보지 못하는구나” 하신 말씀이 낙엽지는 만추와 더불어 가솜속에 떨어진다.
아, 만래루 고승의 숨결이여! 무엇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