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定의 三昧는壺中에 日月이요
凉風이 吹來하니 朒中이 無事라.
선정삼매는 단지속에 일월같고
시원한 바람부니 가슴속에 일이 없다.
라고 하셨읍니다.
이로부터 諸方禪院에 禪機를 드날리며 安居精進하시더니, 智異山 花果院에서 白龍城和尙을 親觀하고 擧揚하였으니’
“般若의 空理는 正眼으로 봄이라”는 말씀에 깨침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趙州無字 十種病에 걸리지 않으려면, 但行劍上路라.”(다만 칼날 위에 길을 간다)라고 對答하셨고, “世尊拈花消息은 獅子窟中에 無異獸”라고 答하셨으며, 다시 “六祖스님의 風動幡動 心動意旨는 三拜올리고 天高地厚라.”(하늘운 높고 땅은 두텁다) “家風은拄扨三下” 하시니. 龍城大和尙께서 善哉라. ‘萬古風月’ 이로다.” 하시고, 偈頌을 傳하시되, “萬古에 風月을 知音者誰오 古庵을 獨對하니 風月이 萬古로다.”(만고에 풍월을 듣는 이 누구런가 고암을 홀로 대하니 풍월이 만고로다)하시고, 「古庵堂」이라는 法號를 내리셨읍니다.
一九四四年에는 宗團으로부터 드디어 「大禪師」의 法階를 稟受하였으며 이어서 五二年에는 「大宗師」의 法階를 稟受하셨읍니다. 큰스님이 가시는 곳마다 法會聽衆이 法堂에 넘쳤으며, 憶千衆生이 큰스님의 說法에 感化를 받지 않은 적이 없었읍니다.
一九六七年에 大韓佛敎 曹溪宗 第三代 宗正에 推戴되셨으며, 一九七O年에는 海印叢林方丈을 兼任하시어 天下納子를 提接하기도 하셨읍니다. 一九七二年에는 第四代 宗正에 再任하셨고, 七八年에는 第六代 宗正에 다시 就任하셨으니, 큰스님의 德化는 恒常하시는 法門과 같이 “하늘이 능히 덮지 못하고 땅이 능히 실지 못한다.” 하였읍니다.
有時에는 金剛戒壇에 傳戒大和尙 이 되시어 千佛의 大戒를 滿天下 佛子에게 傳授하시어 法海가 滿天하여 天雨四華하셨으며, 有時에는 梵魚寺 神興寺 直指寺 等 祖室로 住錫하시며 本分事를 擧揚하시니, 큰스님을 뵙는 이나 法門을 듣는 이가 모두 다 詢詢慈悲와 切切之心에 感動하였읍니다.
一九七六年 以後에는 큰스님의 高齡 古稀가 지나고 八旬이 가까우심에도 不抱하고 老益壯하시어 高名이 萬里他國 海外에까지 미치니 美國 各地와 歐羅巴 各國의 招請을 받아 東西世界를 一週하시면서 布敎傳道로 甘露法雨를 뿌려 世界一花의 祥瑞를 示現하셨읍니다.
큰스님께서는 “金屑이 雖貴나 落眼則病이라.) (금가루가 비록 귀한 것이기는 하나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된다)는 法門을 자주 하셨고, “守本眞心이 勝念十方諸佛이라.”(본분을 잃지 않고 참마음을 지키는 것이 제일이다)하시고, 恒常 “心淨國土淨”(마음이 깨끗하면 나라도 깨끗하다)을 말씀하시며, 健康하시고 端正하시고, 언제나 깨끗하게 精進하는 姿勢를 보이셨읍니다.
一九八八年 十月 二十五 日, 큰스님이 世壽 九十을 넘기시면서 次次 氣力 이 衰微하시는 듯하더니, 이 날은 門徒들을 돌아보시고, 前後事
를 두루 말씀하시며, “好住世間하라 猶如影響이니라”(조심해서 살거라 인과는 분명하니라) 하심에 弟子들이 臨終偈를 請하니, 頌日,
迎耶山色이 方正濃하니
始知從此 天下秋로다.
霜降 葉落歸根同 이여
菊咲望月照虛空 이라
迦耶山色 丹楓이 짙어졌으니
바야흐로 지금이 가을이던가
때가 되면 落葉이 뿌리로 돌아가지
九月 보름 밝은 달은 허공을 비치나니
하시고, 微笑지으시며 怡然入寂하시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