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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신도회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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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2년 05월 123호
지난 4월 18일 조계종 전국신도회의 새 집행부가 출범하면서 전국신도회에 대한 교계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좀 제대로 하려나’ 하는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 적잖이 눈에 뜨인다. 반면에 ‘그 물이 그 물인데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서 개천에서 용 나겠느냐?’ 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도 꽤나 많은 편이다. 어찌 되었든 새 집행부가 출범하였는데도 전국신도회를 바라보는 교계의 시선은 아직도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은 채 여전히 비판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전국신도회가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하였길래 이처럼 비판의 눈초리를 받는 신세가 되었을까. 십여 년을 장기 집권하면서 온갖 비난을 받아온 박완일씨가 물러나고 비교적 때가 묻지 않은 신선한(?) 새인물이 회장이 되었는데도 전국신도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바뀌지 않는 까닭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로 전국신도회는 기본적으로 유명 뮤실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머리만 있고 꼬리와 몸뚱아리는 없는’ 기형적인 집단, 수뇌부 몇 사람이 앉아서 ‘전국’이라는 이름을 팔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한심한 집단, 시대의 도도한 흐름과 사회의 요구를 외면하면서 기초적인 역사의식마저 갖추지 못한 채 어용적 행태를 답습하며 불교의 위상에 먹칠을 해온 집단, 승단이야 어찌되든 신도가 맡아야 할 역할을 외면하고 방기하면서 눈치만 살펴온 집단... 사실 전국신도회를 보는 대다수 불자들의 시각은 이런 평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전국신도회를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적어도 지난 십 년 동안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둘째로 전국신도회는 대다수 불자들에게 외면당하거나 관심 밖에 있다. 자신이 전국신도회 소속 회원이라고 말하는 불자도 거의 없거니와 자신의 단체가 전국신도회 산하 단체라고 밝히는 곳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와 같은 사실은 전국신도회가 마치 모든 신도를 소속 회원으로 두고 있는 것 같은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거의 모든 신도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또한 불교계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전국신도회를 ‘몇몇 사람들이 모여 정치 등 불교적이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비신행단체’로 규정짓는 것이 전국신도회가 대다수 불자들과 유리되어 있다는 명백한 반증이 될 수 있다.
셋째로 전국신도회는 불교와 불자의 위상을 오히려 실추시켜 온 어리석음을 범해왔다. 다른 것은 제껴두더라도 이른바 불교신자를 대표한다는 전국신도회 회장의 명함으로 공천을 받아서 두 번씩이나 낙선의 고배를 들었다는 것은 개인의 명예 이전에 불교 전체의 꼴을 우습게 했다는 지적이 많다. 더구나 그가 총선 유세 과정에서 보인 부끄러운 행동-자신이 전국신도회 회장임을 숨기고 불교와 관련된 모든 이력을 삭제한 점 등-은 불제자로서 떳떳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준 것으로써 모든 불교인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물론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시절에 신도 운동의 불씨를 지펴 온 박완일 전회장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박완일씨가 회장으로 있던 지난 십여 년의 전국신도회는 한마디로 신도 운동의 침체기이자 왜곡의 시기로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넷째로 전국의 모든 신행단체와 신도회를 총괄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신도회의 정관을 보면 전국신도회가 마치 모든 신행 조직과 신도를 관리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조계종 종헌종법에 의거, 조계종 산하의 각종 신행단체에 대해서 종단의 대행권을 갖는다’고 되어 있으나 이것이 실제 통용되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이런 경우는 종단의 종무조직과 유기적 관계가 전제되지 않는 데 좀더 큰 원인이 있겠으나 다른 한편 전국신도회 수뇌부의 정치적 능력 부재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와 같은 전국신도회의 여러 문제점들은 이 단체의 태동 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국신도회가 처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좀더 바르고 참되게 실천하려는 신행을 목적으로 탄생하였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신도회는 비구와 대처사이에 분규가 극심했던 1954년 비구측을 측면 지원하기 위하여 특별한 목적을가지고 출범한 것이다. 창립 이후 현재까지 거의 사십여년 동안의 전국신도회 역대 회장의 면면을 살펴보기만 하더라도 전국신도회가 순수한 신행 단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쉽게 공감할 수있다. 초대 김한천 거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국회의원이었던 박충식 씨,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 씨, 현 민자당 고문인 최재구 씨, 은평구 지구당 위원장인 박완일 씨까지 매우 정치적이거나 정치 지향적인 인사들이 주류를 이루어 온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전국신도회가 사십여 년에 걸친 역사 속에서 가장 득세했던 시절 역시 이후락씨 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때이다. 박완일 씨 제안으로 전국신도회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락 씨의 영향력 때문인지 당시 내노라 하는 정계와 재계 인사들이 전국신도회 주변에 몰려들었다. 1967년 무렵에는 김성곤, 정주영, 홍진기, 조중훈, 최영희 씨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회의거물들이 이사로 영입되었고 이때 전국신도회는 칠십오만 명에 이르는 회원을 확보하였다. 이처럼 불자들의 독실한 신앙 모임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전국신도회가 기대대로 잘 나아가기는 처음부터 틀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전국신도회가 해온 일도 적지 않음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실제로 전국신도회의 기세가 높이 올라갈 때 불교의 위상도 함께 격상됐다. 또한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면서 전국적으로 조직을 세우던 당시의 노력들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산신각과 칠성각 폐지를 주장하며 불교 개혁을 추진한 점, 회관 건립을 추진하고 또 최초로 세계 불교도 대회를 유치한 점, 최초로 교양대학을 개설하여 불자 교육 운동의 불씨를 지핀 점, 박완일 씨의수많은 강연으로 일반대중이 불교를 가까이 할 수 있게 한 점 등 전국신도회가 이뤄온 업적은 대단하다.
그러나 냉정히 살펴보면 이같은 치적들은 ‘전국신도회’라는 엄청난 명칭을 가진 단체로서 마땅히 했어야 할 일에 지나지 않는다. 또 박완일 씨의 강연을 통한 불교 홍보 역시 꼭 전국신도회 회장으로서 전념했어야 할 일인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새 회장 취임을 맞아 전국신도회를 지나치게 몰아부친 감도 없지 않으나, 새로 출발하는 전국신도회의 집행부에는 찬사보다는 고언이 적합하리라고 믿는다. 새 집행부는 제발 과거의 악습을 답습하지 말아달라는 요구가 간절한 까닭이다.
신임 조기현 전국신도회 회장은 신심이 강한 불자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과거와는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도 숨길 수 없다. 새 집행부는 먼저 과거 전국신도회가 답습해온 수많은 잘못들을 하나하나 점검해야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전국신도회에 걸맞지 않은 일이었는가를 면밀히 가려야 하는 것이다.
신임 조기현 회장은 새 회장에 취임하면서 전국신도회의 사단법인 추진, 조직의 확대 개편, 신도 회관 건립, 신앙 중심의 신도회 본연의 활동 회복, 회보 발간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전국신도회의 밝은 미래를 열 수 있는 적절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앙 중심으로 신도회 본연의 활동에 충실하겠다는 발표는 신임 조기현 회장 체제가 전국신도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져서 다행스럽다. 또 조기현회장은 특정 인자의 권력이나 재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체 신도가 함께 참여해서 일을 해 나갈 때 전국신도회의 모든 계획이 여법하게 성취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고 한다. 바로 이같은 발표는 ‘크게 달라질 게 있겠냐’는 많은 불자들의 우려를 씻어 버릴 수 있는 좋은 제안들이다.
조기현 신임 회장, 집행부는 과거 전국신도회의 모든 문제점을 명확히 진단하여 과감한 개혁과 변신을 기하는데 시간과 정력을 아껴서는 안 될 것이다.
신도회를 살리고 그렇게 해서 한국 불교를 살리는 역할을 하는 데 가장 앞장선 당사자가 바로 전국신도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