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표 빨간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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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 신현득
1992년 05월 123호
신발가게 진열장에 신발들이 놓여 있습니다. 멋없이 큰 어른의 신들 사이에 예쁜 아기 신이 끼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빨간 운동화 한 켤레가 큰 인기입니다. 노랑나비 리본을 단 것이어서 더욱 예뻐 보입니다.
“얘, 넌 너무 예쁘다, 얘”
까만 장화가 빨간 운동화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자 것이구나. 몇 살짜리를 기다리고 있니?”
등산화도 투박한 말투로 말을 걸었습니다.
“나는 나비표 운동화란 말씀. 나비표 중에서도 노랑나비가 가장 예쁘다.”
나비표 빨간 운동화가 자기를 소개하였습니다.
“몇 살짜리를 기다리고 있냐니깐?”
“여섯 살짜리야. 예쁜 아이가 주인이 됐음 좋겠어. 그런 인연이 맺어질까?”
“여섯 살이면 예쁘지 않은 아이가 없다. 너는 참 좋겠다.”
그때, 엄마의 손에 잡힌 여자아이가 왔습니다.
‘깜찍하고 예쁘다. 저 아이가 내 주인됐으면.’
나비표 운동화가 이런 생각을 할 때였습니다.
“여섯 살에 맞는 운동화 주세요.”
엄마가 말했습니다.
‘옳구나!’ 하는 사이에 주인이 나비표 운동화를 내놓았습니다.
“깜찍하게 예쁜 신이지요.”
노랑 나비표 빨간 운동화는 이렇게 해서 순이의 발에 신겨졌습니다.
“네 발에 딱 맞다. 신이 순이만큼이나 예쁘다.”
엄마의 말이었습니다.
“아이 좋아.”
순이는 예쁜 신발을 신었습니다. 왼 발, 오른 발, 왼 발, 오른 발...
나비표 운동화가 순이의 발을 받들고 걸었습니다. 빨간 신이 순이의 발을 담고 걸었습니다.
‘순이가 걷는 게 아니야. 내가 순이를 걷게 하는 거다.’
나비표 운동화는 생각했습니다.
나비표 운동화는 순이가 발을 옮기는 대로 가게를 나와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오른 발, 왼 발, 오른 발, 왼발...
골목에서 다시 왼쪽으로 접어 들었습니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순이네 집은 작은 언덕 위에 있습니다. 계단 양쪽에는 꽃밭입니다. 꽃나무들은 아직 겨울잠에 취해 있습니다.
“언니, 새 신 샀다!”
순이가 집 안으로 뛰어들면서 소리쳤습니다.
“새 신?”
언니가 뛰어나왔습니다. 오빠도 뛰어나왔습니다.
“야, 깜찍하게 예쁘다!”
여기서도 나비표 운동화는 칭찬을 받습니다.
“내일 입학식에 신고 가면 아이들이 놀라겠어.”
오빠의 말이었습니다. 나비표 운동화는 내일이 순이의 입학식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입학식이라면 ‘멋지게 뽐내 봐야지’ 하고 나비표는 생각했습니다.
나비표 빨간 운동화는 언니의 깜장 운동화 옆에 나란히 놓였습니다. 깜장 운동화 옆에는 오빠의 흰 운동화가 놓여 있습니다. 그 다음은 엄마의 뾰족 구두 그리고 그 다음에는 투박한 남자 구두 한짝이 놓여 있습니다.
‘왜 한 켤레가 아니고 한 짝일까?’
나비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얘, 꼬마야. 넌 너무 예뻐, 얘.”
“그야 물론이지롱. 그런데 너 투박이 구두는 왜 한 짝이야?”
그러자 투박이 외짝은 입을 다물고 대신 오빠의 흰 운동화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버지가 다리를 다치셨어. 석 달째 깁스를 하고 다니신단다. 아버지는 신을 한 짝만 신고 공장에 가셨어. 목발을 짚고 다니시지.”
“저런, 어쩌다가?”
꼬마 나비표 운동화가 놀라자 이번에는 언니 신인 깜장이가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철공장에서 기계망치를 다루신단다. 그것이 잘못...”
“어, 그럼 많이 다치셨겠네?”
“많이 다치셨지. 하지만 할머니는 그만한 것이 부처님 덕택이라고 하신다. 할머니는 절에 가셨어. 아버지의 다리가 속히 낫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하러 가셨단다.”
신발은 모두 공장의 기계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비표 운동화도 공장과 기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한 식구가 된 것이 묘한 인연이다.”
“그렇고 말고.”
신발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습니다.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이건 누구 신이냐? 세상에 요렇게 예쁜 신발도 있냐?”
삭구들이 우루루 나와서 할머니를 맞이했습니다.
“할머니, 그건 순이의 입학 기념 신발이예요.”
할머니는 하얀 고무신을 나비표에 나란히 벗어 놓았습니다.
“정말 예쁜 신발이다. 네 아버지가 속히 나으라고 부처님께 매달렸지. 지금까지 기도하고 왔다. 관세음보살 불렀지.”
그때 아버지가 돌아왔습니다. 목발을 짚고 층계를 오르기가 힘들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얘야, 좀 어떠냐?”
먼저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힘들어 하며 마루끝에 앉았습니다. 외짝 구두를 벗어 기다리고 있던 외짝과 짝을 맞춰 놓으면서 말했습니다.
“어제보단 훨씬 좋아졌습니다.”
“그것이 영험이다. 관세음보살 부른 덕택이다.”
할머니 말씀이었습니다.
이튿날은 순이의 입학날입니다. 예쁜 차림을 한 순이가 노랑 나비표 빨간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머리에 빨간 리본을 꽂고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았습니다. 오빠와 언니가 양쪽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오빠는 오학년, 언니는 삼학년입니다. 어머니가 뒤를 따랐습니다.
왼 발, 오른 발, 왼 발, 오른 발... .
순이가 학교에 가고 있습니다. 순이의 발을 담은 나비표 운동화도 기쁨에 차 있습니다. 순이도 나비표 운동화도 날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건 순이가 걷는 게 아니야. 내가 순이의 발을 담고 걷게 하는 거지.’
나비표 운동화의 생각입니다.
교문을 들어섰습니다. 아이들이 한마당 가득 뛰어놀고 있습니다.
‘야, 너르다!’
나비표 운동화는 소리칠 뻔 했습니다. 그때를 맞추어 순이가 “야, 너르다!”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저쪽 끝까지 달려 볼까?”
언니의 말이었습니다.
새신을 신고 달려보자 휙휙 단숨에 백두산도 넘겠네...
나비표 운동화는 순이의 발을 받쳐 담고 운동장을 끝까지 달렸습니다. 기뻤습니다.
종소리가 나고 일학년 입학생이 모였습니다. 어머니들도 같이 모였습니다.
“이순이”
순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선생님은 이름표를 달아주며 “순이는 신발까지 예뻐!” 하고 말했습니다. 순이와 나비표 운동화를 한꺼번에 칭찬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신발을 모두 신장에 넣어요.” 선생님 말씀에 따라 신발들이 신장에 나란히 놓였습니다.
‘어디를 가나 나는 칭찬뿐이야’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비표 운동화를 본 한 어머니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신은 정말 예쁘다.”
두 달하고도 며칠이 지났습니다. 순이네 집 언덕이 꽃으로 묻히기 시작했습니다. 개나리, 진달래, 백목련, 영산홍이 차례로 피어 언덕을 온통 꽃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명절, 부처님 오신 날! 순이네는 온 식구가 모여 연등을 만들었습니다. 대문에 연등을 달았습니다. 처마에도 달고 꽃나무에도 등을 걸었습니다.
“부처님 영험이 계실 거다.”
할머니 말씀대로 아버지는 일찌감치 기브스를 풀었습니다. 열 달 넘게 걸려야 다 나으리라던 상처가 절반인 다섯 달만에 나은 것입니다. 집안에 시름이 없어졌습니다. 아직도 절룩거리지만 아버지는 꽃나무를 돌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구두 한짝을 집에 두고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절에 가서도 등을 켜야지.”
순이네는 온 식구가 남산 꼭대기 큰 절에 가서 2536년 부처님 오신 날 제등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부처님 고마워요.”
남산 꼭대기 대웅전까지는 가파른 층계길입니다.
“이 층계를 오르게 된 것이 꿈만 같네요. 어머니 기도가 아니었다면 정말 불구가 됐을지도 몰라요.”
“아기 아버지 완치 기념 가족 법회를 겸한 날이어요.”
“모두가 부처님 덕이다. 나무 석가모니불!”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층계길을 오르며 나누는 말씀이었습니다.
순이의 나비표 운동화가 앞장을 섰습니다. 다음이 언니의 깜장이, 다음이 오빠의 하얀 운동화, 그 다음은 할머니의 하얀 고무신, 다음은 엄마의 뾰족구두, 그 뒤를 아버지의 투박한 구두가 오르고 있습니다.
옛날에도 그 예적 삼천년 전 봄
향기롭고 따뜻한 꽃핀 여드레
세계를 움직이는 우렁찬 소리
하늘에나 땅에나 홀로 나 하나...
오빠가 부르기 시작하자 온 식구의 합창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을 뵈러 간다.’
나비표 빨간 운동화는 날고 싶은 맘으로 층계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