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은 1,362개의 이야기로 된 경전군이다. 처음에는 7,762경이었다니 우선 그 수효에 압도당한다.
이 많은 경전이 어떻게 전승되었을까. 부처님이 살던 그 무렵에 쓰던 문자는 특수 계층에서만 사용하는, 언어학자들이 ‘마가디 프라끄리뜨’라고 분류하는 일종의 싼스끄리뜨어였다고 한다. 경전 문자로 채택된 싼스끄리뜨어나 팔리어가 문자를 이룬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로 알려져 있다. 부처님의 입멸 뒤에 왕사성에서 이루어진 일차 결집 때에는 경전이 문자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말로 편집되어 암송으로 전한, 이른바 구전 전승이었다. 그래서 낱낱의 경전들은 모두 기억과 암송에 편리한 방법으로 편집될 수 밖에 없었다. 어떠한 가르침도 일단 기억되어야 했고 그리고 외워서 전해야 했다.
일차 결집이 이루어졌던 라자그리하의 필발라 동굴에는 오백 명에 이르는 비구가 모였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아라한으로서 되도록 부처님을 몸소 모시며 부처님의 설법을 많이 들었던 비구들로 선발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부처님의 설법 내용과 태도는 경전에서 찬탄하는 것처럼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감명 깊은 것들이었으므로 그곳에 모였던 아라한들은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쳐 있었음도 아울러 짐작할 수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태도와 온화한 모습 그리고 이야기 내용을 우리는 그때에 아라한들이 암송하고 또 뒷날에 기록으로 전해진 경전에 의지하여 느낄 수밖에 없지만, 경전을 읽게 되면 그래도 깊은 삶의 우물을 퍼올리는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단순히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깊은 충격을 주는 그런 내용이어서일 게다.
부처님의 이야기 한 토막
과거 세상에 하늘과 아수라가 마주 진을 치고 싸워 아수라가 이기고 하늘이 패배하였다. 그때 제석천의 군사는 패하여 흩어지면서 매우 두려워하여 차를 타고 북으로 달려 천궁으로 돌아가려 했다. 수미산 밑에 우거진 숲이 있고 숲 속에 금시조 둥우리가 있는데 그곳에는 금시조 새끼가 많이 있었다. 그때 제석천은 수레와 말이 지나가면서 그 새끼를 밟아죽일 것이 걱정되어 마부에게 말했다. 수레를 돌려라. 어린 새를 죽이지 말라. 마부는 제석천에게 말하였다. 아수라 군사가 뒤에서 쫓아옵니다. 만일 길을 돌아가면 그들에게 욕을 당할 것입니다. 제석천이 말했다. 차라리 돌아가다가 아수라에게 잡혀 죽을지언정 군사가 중생을 밟아 죽일 수는 없다. 마부는 마차를 돌려 남으로 향했다. 아수라 군사는 멀리서 제석천이 수레를 돌려 다시 오는 것을 보고 달리 묘책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곧 길을 돌려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두려운 끝에 진을 거두고 흩어져 아수라 궁으로 돌아갔다.
저 제석천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 위력으로 아수라 군사를 무찔러 항복을 받았고 또 늘 사랑하는 마음의 공덕을 찬탄하였다. 너희 비구들은 바른 믿음으로 집을 나와 집이 없이 도를 배운다. 마땅히 사랑하는 마음을 닦고 또한 사랑하는 마음의 공덕을 찬탄해야 하리라.
「잡아함 제1222경」
이 내용은 아수라는 마왕으로, 제석천은 부처님으로 바뀌어 전생담에서 다시 재현된다. 생명에 대한 사랑의 실천 형태를 보이고 있는 이 경은 시의형식은 아니다. 기술 방법의 분류로는 천궁사天宮事라고 부른다. 동물애호가들의 처지에서는 동물 사랑의 본보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마음을 강조한 곳이 한두 곳이 아니지만, 부처님께서 사랑의 모습이나 태도 그리고 작고 섬세한 일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비유하는 설법 내용을 보면 그 상상의 한계가 무한임이 느껴진다. 예술과 철학과 논리와 사상이 우리에게 내재된 여러 사실들의 심리적인 고찰이라는 범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처럼, 부처님의 모든 설법도 결국 인간 사랑의 진면목을 숨김없이 보여주기 위한 모든 방법이 총동원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전은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기보다 그 장소와 때에 따라 적절한 형태로 곧 자유스러운 형식으로 전개된다. 잡아함이 초기에 경의 수효가 7,000개가 넘게 편집된 것도 결국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부처님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암송의 재료로 구술했을 뿐더러 부처님의 말씀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많이 전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 무렵의 아라한들은 짧은 이야기일 망정 낱낱이 나누어 편집했으리라.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부처님의 설법이 완벽하고 온전하게 전승되었으리라는 기대는 할 수 없다. 사람들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전승되어 오는 과정에서 얼마쯤 누락되고 덧붙이고 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기에, 오늘에 전해진 경전이 부처님의 육성 그대로라는 주장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교의 뼈를 이루는 사제, 연가, 십이인연, 팔정도, 열반, 공, 육바라밀 들에 대한 내용은 원형이라고 생각되는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고본다. 말하자면, 주변의 개념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핵심 사항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잡아함에 등장하는 시의 내용은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경의 앞부분에 시가 있는 경우
육성취의 도입부에 바로 이어 시가 등장하는 경우다. 경의 주제를 천명하거나 질문자가 어떤 뚜렷한 목적을 나타낼 때에 주로 쓰는 방법인데 흔히 짧은 단시나 중시를 쓰지만 드물게는 길이가 꽤 긴 장시도 있다. 부처님께서 특별한 목적으로 경을 설하는 경우에 즐겨 쓰시는 것도 이 방법이다.
경의 앞부분에 시가 있는 경우에도 형식은 다양하다. 단시로 주제를 간략하게 천명하는 형, 찾아온 목적과 까닭과 부처님에 대한 찬탄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형, 처음부터 문답형으로 시작되는 형들이 있지만, 대부분 짧은 단시형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시의 형식이라 하지만 인도의 고전문학의 묘미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놓임새가 있다. 곧 경의 전체가 긴 시, 경의 전체가 중간 길이인 시, 경의 전체가 짤막한 시, 겨의 전체가 문답형식으로 된 짤막한 시, 경의 전체가 문답 형식으로 된 긴 시, 경의 전체가 문답이 중복된 시, 경의 앞에 있는 긴 시, 경의 중간에 있는 긴 시, 경의 중간에 있는 중간 길이의 시, 경의 중간에 있는 짧은 시, 경의 중간에 있는 짧은 시, 경의 중간에 있는 문답형의 짧은 시, 경의 뒤에 있는 짧은 시, 경의 뒤에 있는 문답형의 짧은 시, 경의 뒤에 있는 짧은 시, 경의 뒤에 있는 문답형의 짧은 시, 경의 뒤에 있는 짧은 문답형으로 중복되는 시, 경의 뒤에 있는 중간 길이의 시 들로 모두 열여섯 가지의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런 형식의 다양성은 잡아함이 지닌 기술 방법의 특징으로 보인다. 그러나 짧은 단시로 구성된 경전의 배열은 한역 잡아함의 경우 제45권 뒤부터 집중적으로 배열하고 있다. 이 점을 살필 때 잡아함이 무원칙의 편집 방침에 따라 구성되었다는 판단은 매우 성급하거니와 잡아함의 전체를 잘 살피지 않은 데에서 나온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 제64경인 우다나경 이전에는 이러한 시의 형식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불교의 본질을 밝히는 사상의 내용을 담은 경전들만 있다.
니 제64경에는 결론처럼 무아사상의 시가 등장한다.
법은 내가 없고
또한 내것도 없다.
내가 이미 없거니와
내것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 비구의 해탈
삶의 윤회를 끊음이로다.
나고 멸하고 불고불락
더하여 세 가지 분별
탐진치를 관찰하라
이것이 진실한 우다나.
「잡아함 제64경」
경의 중간에 시가 있는 경우
물론 이 경우에도 시의 길이에 따라 문답 여부에 따라 그 형식이 다양하여 모두 82가지나 된다. 내용은 대체로 설화, 그 무렵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그린 것, 부처님과 제자들의 대화 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제19권에는 제석천, 백정, 점치는 여자, 점치는 남자, 호색가, 매춘부, 무사, 사냥꾼, 돼지 도살업, 망나니, 구리 그릇을 녹여 만든 사람, 어부, 낙태, 코끼리, 조련사, 남편을 살해한 독한 아내, 미워하고 성내는 바라문, 물건을 잘못 나누어준 바라문, 과일을 훔친 사미, 꿀을 훔쳐먹은 사미, 떡을 훔쳐먹은 사미, 물건을 낭비한 비구, 말과 소를 학대한 사람, 손님을 쫓아보낸 비구, 욕을 잘하는 비구, 재판 잘 거는 비구 들의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있어 초기 교단의 생활과 삶을 살필 수 있다.
잡아함은 부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존자들과 제자들의 대화가 독립된 경을 이루기도 한다. 제549경에는 용모가 단정한 가차나와 젊은 청신녀인 깔라와의 문답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제 93경에는 경의 중간에 시의 형식으로 생활의 불, 가정의 불, 진리의 불이 가정을 평안으로 이끈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 불교와 가정과의 관계에 대한 지혜를 드러내보이고 있다. 그리고 등이 아픈 부처님의 모습을 기록한 문답 형식의 경이 또 있다.
등이 아픈 부처님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코살라에 유행하시다 바라문 천락의 망고 숲에 도착하여 머물고 있었다. 우파마 존자가 시자였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등이 아파 고통스러워 하셨다. 우파마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옷과 발우를 들고 걸식을 다녀오라. 우파마 존자는 바라문의 집에 이르렀다. 그때 바라문 천락은 자기 집에서 이발사에게 수염과 머리를 깎고 있었다. 우파마 존자가 문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게송을 읊었다.
왜 수염과 머리를 깎고
몸에는 가사를 입으셨오
문밖에 계시는 뜻
무엇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까
우파마 존자가 게송으로 답했다.
아라한이요, 선사께서는
등의 풍질로 아프십니다
조금의 안락수를 주시어
우리 스승을 치료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바라문 천락은 발우 가득 제호를 담고 기름 한 병과 꿀 한 병을 사람을 시켜 가져 가게 하고 뜨거운 물도 함께 보냈다. 우파마 존자는 세존께 돌아와 기름을 몸에 발라 드리고, 뜨거운 물로 씻겨 드리고, 제호와 꿀을 타서 드렸다. 세존의 등 아픈 곳이 조금 편안해졌다.
바라문 천락은 새벽 일찍 일어나 부처님께 찾아와서 머리 숙여 발에 절하고 한 쪽으로 불러나 게송으로 여쭈었다.
바라문이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무엇을 나누어야 큰 과보가 있습니까
어떤 것이 베풀어야 할 때입니까
무엇을 깨끗한 복전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답했다.
만일 숙명의 지혜를 얻어
죽은 다음 어디에 태어날 것 알고
모든 번뇌를 다 없애
부처의 세 가지 신통을 얻고
훌륭한 마음의 해탈로
모든 탐욕에서 벗어나면
바로 이름하여 바라문이라
이것이 나눔의 큰 과보
그러한 보시가 바로 보시할 때
복전을 짓는 것에 따름이로다
바라문 천락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복을 지어 돌아갔다.
「잡아함 제1181경」
‘등이 아픈 부처님’은 팔리어 장경과 숫타니파타에도 등장하는 경으로서 부처님의 노년기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부처님 같은 성인이 어찌 감기인들 걸릴쏘냐 하는 고정관념에 젖어 온 사람들도 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전법의 길에 드신 부처님께서 풍한노숙의 걸식 생활을 하다가 이교도에게서, 그것도 시자의 힘을 빌려, 기름과 꿀과 뜨거운 물을 얻어 아픈 곳을 치료하시는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참으로 깨달은 사람의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남김없이 드러내 보인다.
저 높은 곳에서 열반과 적정의 드높음만을 찬양받으시던 부처님의 이러한 신음과 고통을 보고서, 현실에 대한 불평과 자기자신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오던 우리 중생들은, 새삼스러이 불교의 본질이 온전히 자리한 곳이 바로 이 삶의 현장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