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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에 핀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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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대관 1992년 05월 123호
어젯밤 비에 목련꽃이 졌다.
봄날의 축복을 온몸으로 희열하던 목련꽃은 그 연한 꽃잎을 대지로 흩날리고 더 굳은 각질을 깨치고 파란잎이 싹을 터서 신록의 대열에 서 있다. 뒤질세라 운문의 뜰엔 아우성 같은 무더기의 나일락이 불이문을 지나 판도방 창문까지 그 향기를 보내고 있다. 잿빛 승복의 단단한 질서를 깨뜨리고 불꽃의 유혹마냥 후각을 자극하는 봄 향기의 어지러움이라니... 일순간 봄은 승천이요, 나른한 정적이요, 끝 모를 미혹이다.
봄 향기 그윽한 판도방엔 노란 잎, 빨간 잎, 연분홍 잎이 바쁜 스님들의 손 끝을 떠나 방안 가득 주인인 양 쌓여 있다. 스님들의 맑은 얼굴이 쌓인 연잎으로 더 큰 연꽃의 잔치로 피어난다. 며칠 전부터 초파일 관등을 위해 대중 모두가 연등을 만드는 울력을 하는 중이다. 원주스님은 대처에 나가 연등 만들 재료를 사오고, 마호 소임을 맡은 스님은 풀을 끓이고, 대중스님들은 간경 시간을 중지하고 연등 울력으로 부산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연 등을 만들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연등 만드는 일은 무엇인가 새로움이고 가슴 설레임이다. 하나의 연등이 단순한 상거래의 의미가 아니고 진정 가난하고 외롭고 소외받는 이들에게 따뜻한 축복이 되기를 기원하는 것도 초파일에 거는 기대이기도 하다.
대중 울력을 하는 날엔 평소의 진지하고 엄숙한 수행 분위기가 한껏 자유롭고 넉넉한 삶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평소에는 과묵하던 스님도 이런 날엔 재미있는 추억담을 얘기하기도 하고, 흥이 많은 스님은 몰래 혼자 부르던 옛 노래를 마음껏 부르기도 한다. 재담에 능한 스님은 울력 시간 내내 온갖 유머와 재치로 대중을 즐겁게 하여 자칫 지루하기 쉬운 시간을 흥겹게 만든다. 그래서 이런 스님을 대중 스님들은 더 호감을 갖고 대하고, 짖궂게는 손이 아니라 입으로 울력한다고 놀려대기도 한다.
맑은 웃음속에 일상의 아기자기한 삶으로 돌아가는 대중 울력은 그래서 수행의 또 다른 활력소가 된다.
주위의 왁자지껄한 잡담에 초연하던 스님 한 분의 말씀.
“지금 우리는 연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꽃을 피우고 있네.”
아하! 연꽃을 피워내다니.

손끝을 스칠 때마다
진흙 속에서 연 봉오리가
부풀어오르고

손끝이 스칠 때마다
이슬이 뿌려지네

손끝이 스칠 때마다
연 봉오리가 숨을 쉬고

손끝이 스칠 때마다
맑은 바람이 연잎을 흔들어
한송이 그윽한 연꽃이
물위에 떠오른다.

유마거사는 연꽃은 고원 능지에서 피지 않고 습한 진흙 구덩이에서 피어난다 하여 세간의 삶을 싫어하지 말라고 했던가. 빨간색 연잎을 피워내던 스님의 손이 붉게 물들었다. 불그스레 물이 든 손이 봄날의 꽃처럼 예쁘다. 봉숭아 꽃물을 들이던 유년 시절처럼 연꽃을 비비는 우리의 마음은 마냥 동심이다. 연등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연꽃을 피우려는 우리의 가슴들도 연 봉오리처럼 부풀어 있다.
내가 사는 곳은 불교의 신앙이 깊지 않은 벽지 촌이다. 순박한 농부 몇몇이 대대로 이어온 농사를 숙업처럼 지어가는 한가한 마을이다. 옛날에 무슨 인연이 있어 이 마을에 한 석공이 머물렀는데, 이 석공이 정성으로 조각한 돌부처님 한 분이 계셨다. 마을 사람들은 별다른 의미없이 이 부처님이 마을을 수호하고 미래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 하여 미륵불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 마을의 이름도 전하고 전하여 미륵골이라 한다..
이곳에 절을 짓고 처음 맞는 초파일이었다. 벽지 촌의 절이라 해도 초파일 연등을 다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다. 노스님과 함께 걱정을 하는데 마침 마을에 늙은 처사님 한 분이 찾아와 직접 새끼줄을 꼬고 법당 앞에 줄줄이 새끼줄을 치고, 막대기로 받침대를 만들어 연등을 달아 주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난감함이 신기함으로 바뀌던 추억이 내가 초파일을 맞는 기억 가운데 가장 뚜렷하다. 다루기가 까다롭고 숫제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새끼줄 치기를 숙달된 조련사처럼 쉽게 해 내는 것을 보던 기억이 새롭다.
올해도 운문사 연등 울력이 끝나면 그 곳 우리절에 가서 초파일 연등을 달아야 한다. 지금은 절 집안 일에 웬만히 익숙해져 별 걱정이 없지만 연등을 달 때마다 그 때 처사님의 도움이 그리워진다. 지금 그 처사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초파일은 내게는 또 다른 작은 아쉬움이다.
초파일 연등이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면 사람들은 그 빛에 무한히 감동하리라. 그러나 그 한 등이 켜지기까지의 여러가지 수고를 생각하기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도 완성된 자리가 의미있는 것이겠지만, 그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의 고난과 시련도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목련꽃이 지네, 연꽃이 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