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을 스칠 때마다
진흙 속에서 연 봉오리가
부풀어오르고
손끝이 스칠 때마다
이슬이 뿌려지네
손끝이 스칠 때마다
연 봉오리가 숨을 쉬고
손끝이 스칠 때마다
맑은 바람이 연잎을 흔들어
한송이 그윽한 연꽃이
물위에 떠오른다.
유마거사는 연꽃은 고원 능지에서 피지 않고 습한 진흙 구덩이에서 피어난다 하여 세간의 삶을 싫어하지 말라고 했던가. 빨간색 연잎을 피워내던 스님의 손이 붉게 물들었다. 불그스레 물이 든 손이 봄날의 꽃처럼 예쁘다. 봉숭아 꽃물을 들이던 유년 시절처럼 연꽃을 비비는 우리의 마음은 마냥 동심이다. 연등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연꽃을 피우려는 우리의 가슴들도 연 봉오리처럼 부풀어 있다.
내가 사는 곳은 불교의 신앙이 깊지 않은 벽지 촌이다. 순박한 농부 몇몇이 대대로 이어온 농사를 숙업처럼 지어가는 한가한 마을이다. 옛날에 무슨 인연이 있어 이 마을에 한 석공이 머물렀는데, 이 석공이 정성으로 조각한 돌부처님 한 분이 계셨다. 마을 사람들은 별다른 의미없이 이 부처님이 마을을 수호하고 미래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 하여 미륵불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 마을의 이름도 전하고 전하여 미륵골이라 한다..
이곳에 절을 짓고 처음 맞는 초파일이었다. 벽지 촌의 절이라 해도 초파일 연등을 다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다. 노스님과 함께 걱정을 하는데 마침 마을에 늙은 처사님 한 분이 찾아와 직접 새끼줄을 꼬고 법당 앞에 줄줄이 새끼줄을 치고, 막대기로 받침대를 만들어 연등을 달아 주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난감함이 신기함으로 바뀌던 추억이 내가 초파일을 맞는 기억 가운데 가장 뚜렷하다. 다루기가 까다롭고 숫제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새끼줄 치기를 숙달된 조련사처럼 쉽게 해 내는 것을 보던 기억이 새롭다.
올해도 운문사 연등 울력이 끝나면 그 곳 우리절에 가서 초파일 연등을 달아야 한다. 지금은 절 집안 일에 웬만히 익숙해져 별 걱정이 없지만 연등을 달 때마다 그 때 처사님의 도움이 그리워진다. 지금 그 처사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초파일은 내게는 또 다른 작은 아쉬움이다.
초파일 연등이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면 사람들은 그 빛에 무한히 감동하리라. 그러나 그 한 등이 켜지기까지의 여러가지 수고를 생각하기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도 완성된 자리가 의미있는 것이겠지만, 그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의 고난과 시련도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목련꽃이 지네, 연꽃이 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