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의 현주소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만우(시인)
1992년 05월 123호
본디 생명을 기리는 의례는 탄생과 죽음을 으뜸으로 한다. 한 생명체가 조건지워진 모든 관계와의 단절이 죽음이라면 탄생은 그 단절의 관계 회복이며 동시에 단정한 삶을 세우기 위한 출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의 명확한 응시를 전제로 한 삶의 가치는 언제나 남과 죽음의 선상에서 비틀거리는 존재와 절름거리는 역사의 불구자 같은 상황을 바로 세우려는 인간의 위대한 행적에 최대의 값을 부여해 왔다. 그러나 그 최대치가 교조화되고 종파화되어 또 하나의 속박으로 존치되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존치하는 수단의 선봉은 탄생과 더불어 신이한 행적이나 미화된 죽음과 같이 의례화된 여러 가지 기념비적인 것들이 도맡아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 초파일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부처님의 탄신일이 아니고 자연인으로서 석가의 탄생일이다. 부처가 갖는 참된 진리의 주체자가 아닌 왕자라는 한신분의 계급적인 탄생일 뿐이다. 출가하기 전에 왕자의 신분으로 맞는 초파일은 카필라 왕국의 일반적인 축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확보된 계급적 신분을 버리고 모든 생명체와 동일한 순환구조를 가진 존재의 확인, 곧 출가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성도일이야말로 종교적인 의미에서 비로소 부처님의 탄신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가 갖는 말 뜻 자체가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의 행로를 암시하고 있듯이 모든 사람들이 궁극으로 삼아야 할 모든 것을 보여 준 참된 의미의 탄생은 성도를 통해서 깨뜨려진 계급적 신분의 해방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중요한 것은 위대한 사람의 위대한 행적이 아니라, 일반 조건 속에 던져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다. 표본이 된 위대한 삶들, 그 틈새에서 오늘도 절망하고 고뇌하며 순간순간을 지워 나가는 일반 사람들, 그 표본의 대열에 끼려고 도道의 추상성에 온몸을 던져 버린 회색빛의 적나라한 형상들, 이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부처님 개인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이미 모든 것을 여실히 알고 행하고 가신 분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초라하고 볼품없는 무명업식의 이 몸이 실존적인 관심의 영역이다.
꽃 피고 잎이 자라는 이때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태어남과 죽음들. 그 행간에서 기억되는 위대한 삶과 죽음들이 때로는 우리를 힘겹게 하는 부분이 있다. 다분히 자신의 부족함과 열등함을 담보하더라도, 사이비일 뿐인 가치구조들이 엮어내는 편견과 독선, 대립적인 사고 구조 속에서 종교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수많은 행사들은 일단의 추악함을 함께 안고 있음을 본다.
언제부터 초파일을 대대적으로 기념했는지는 모르나,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로 때로는 국가적인 큰 행사로서 또 때로는 단순한 절집안의 행사로서 끊임없이 행해져 온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공휴일로 지정은 되었으나 엄격히 말해 불교와 가까운 사람들의 제한적인 경축일일 따름이다. 오늘날 빈자일등의 훈훈함과 어둠을 밝히는 빛의 소임을 방기해 버린 상황에서 초파일이 끊임없는 분규로 얼룩지고 있는 절집안의 상황에 일조하고 있음이 서글픈 현실이다.
노동에 근거하지 않는 경제구조를 가진 승가의 한해 살림살이가 초파일때의 수입에 크게 좌우됨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초파일이나, 그밖에 다른 경제 여건에 의한 수입의 다소가 사찰을 규정하는 첫번째 조건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다툼의 첫번째 요건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비움으로써,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최고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전하러 오신 날이 그 본뜻과 달리, 더 많이 챙기기 위한 다툼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아이러니가 오늘 초파일의 현주소이다.
도道와 돈 사이에서 돈 쪽으로 기울어 버린 것이 우리가 맞는 오늘날 초파일의 모습이라면, 인간의 해방과 역사의 해방을 위해 이 땅에 오신 부처님을 우리는 한낱 장사꾼으로 전락시켜 버린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러한 행위는 탄생뿐만이 아니고 법 자체를 훼손시키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래도 음력 사월은 좋은 달이다. 모든 생명들이 제 모습을 찾아가고, 산속 깊숙히 피어나는 들꽃들이 산색山色을 탐하지 않고 제 멋을 지니고 피어난다. 산새들은 몸을 숨길 만한 가지를 갖게 되고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그늘이 점점 터를 넓혀 간다.
그러나 또 누가 알겠는가. 참된 장부가 출현해서 창피하고 거북스러운 온갖 언어와 몸짓을 거두어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