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마음으로 이루어졌다고 일컫습니다. 화엄경에서는 일체가 유심조唯心造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곧잘 불교를 일컬어 “마음을 닦는 도다”, “마음을 밝히는 종교다”라고 표현합니다.
우주에는 한량없는 산라만상이 있는데, 이 삼라만상은 눈으로 보이는 물질이나 현상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같은 것도 그 안에 포함합니다.
현생세계의 온갖 것이 삼라만상 아님이 없지만, 삼라만상 그 자체는 공간안에 있으며 또한 공간이 아무리 커서 삼라만상을 모두 포용한다 하더라도마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마음이 아무리 크더라도 마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허공이 마음과 더불어 존재하고 허공이 아무리 크더라도 허공이 있는 곳에는 삼라만상이 허공과 더불어 함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내용은 다르더라도 그 크기가 같으므로 불교에서는 이것을 삼대三代라고 하였습니다. 이 삼대를 철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시간과 공간과 인식이며, 부처님의 교리로 표현하면 연기와 반야와 실상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부처님의 덕성에 비유해서 말하면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과 억만보신 노사나불과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며, 또 한 체體와 상相과 용用으로도 표현될 수 있습니다.
체와 상과 용을 사람에 비유하면, 체는 사람의 마음, 상은 사람의 모습, 용은 사람의 여러 신체 부위라고 할 수있습니다. 그렇다면 체 곧 사람의 마음과, 상 곧 사람의 모습과, 용 곧 사람의 신체부위는 어떻게 생겼으며 또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허공과 삼라만상, 또한 시간과 공간과 마음은 서로 혹은 각각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시간을 연기緣起로써, 공간을 반야로써, 그리고 마음을 실상으로써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법신은 마음의 성性을, 보신은 마음의 상相을, 화신은 마음의 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체와 상과 용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체를 가리켜서 적멸하며 청정하고 진실하고 영원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을 가리켜서는 평등하며 바르고 착하고 구족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용을 가리켜서는 원융하며 밝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첫째로 체體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체란 적멸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적멸이란 말에서 적寂과 멸滅이란 말의 뜻은 서로 다릅니다. 적이란 본디부터 고요함을 뜻하는 말로서 멸하거나 멸하지 않는다는 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거울에 비유하면, 본디 거울의 고요한 성품은 거울에 때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는 것과 같습니다. 교리에서는 이러한 적의 상태를 근본지根本智, 본각本覺, 또는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합니다. 한편, 멸滅이라는 말은 번뇌망상이 사라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서, 거울에 비유하면 때가 다 사라져 밝아졌음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 말하면 후득지後得智, 구경각究景覺, 또는 성불이라고 합니다. 중생들은 모든 사물을 대할 때 그 사물의 대소장단과 청황적백흑들을 보면서 좋다, 나쁘다, 깨끗하다, 옳다, 그르다, 있다, 없다 하는 따위의 분별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분별하는 마음은 중생들의 감정에서 일어나는 것일 뿐입니다. 사실, 자신에게 좋은 것이 남에게는 나쁠 수도 있고, 자신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남에게는 더럽게 느껴질 수도 있으며,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남은 옳지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제의 주장과 오늘이나 내일의 주장이 서로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이란 순간순간 변하고 생멸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견문각지見聞覺知로 분별하는 것은 사실상 실체가 없으며, 무상하고 허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적멸한 이 자리는 일체 상대적인 세계를 헌출히 벗어났으므로 형상도 음성도 행위도 세속적인 명예도 재산도 권력도 욕구도 없으므로 청정하고 진실된 것입니다. 진실되므로 변하지 않으며, 변합이 없으므로 영원하고, 영원하므로 실상實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멸한 경계에서만 일체를 살릴 수 있으며 적멸하지 못한 경계에서는 일체를 죽일 뿐입니다. 적멸은 청정과 신실과 영원과 실상이지만 번뇌는 혼란과 욕심과 죽음과 고통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이 현상세계에서 적멸락을 증득하려면 어떻게 마음을 닦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수행하려면 개공관皆空觀을 닦아서 일체가 공空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으니, 곧 반야심경에서는 오온개공五縕皆空이라고 하였으며, 금강경에서는 모든 상이 허망하니 마땅히 머무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경계가 허망하므로 집착하지말고 마음을 허공 같이 텅 비워 맑게 하고 어디에도 흔들리지 말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연꽃이 더러운 물에 젖지 않듯이 온갖 욕망과 상대적인 세계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금강석처럼 단련하여 마음의 체體인 청정심과 부동심을 증득하여 적멸락의 세계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상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상이란 평등하고 바르고 선하고 구족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주 공간을 상으로볼 때 동서남북과 간방間方과 위 아래를 시방十方이라고 합니다. 시방은 곧 우주공간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 공간 자체는 아무것도 없이 둥근 것입니다. 거리며 크기를 잴 수 없는 공간에는 고저와 귀천, 좋고 나쁨, 동서남북의 방위가 없습니다. 중생이 동서남북을 분별하는 것은 자기 기준에서 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공간은 평등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반야지로써 파악해 보면 공간적인 차원은 반듯해서 원융한 것입니다. 가령 씨앗을 뿌리더라도 대통령이 뿌리거나 농부가 뿌리거나 내가 뿌리거나 남이 뿌리거나 구별하지 않고 땅은 평등하게 씨앗을 싹틔웁니다. 대지가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하는 따위의 차별심으로 신분을 구별하여 싹틔우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러나 평등하다는 것이 반드시 같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중생들이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를 받게 되고 착한 일을 하면 그에 대한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 바로 평등입니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이 나쁜 과보를 받는다든지 나쁜 일을 한 사람이 좋은 과보를 받는 것은 평등이 아닙니다. 때때로 평등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일이라도 그 근원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곧바로 그것이 평등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평등의 진리를 모르는 중생들은 상에 집착하여 갖가지 번뇌망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집착을 버리고 평등심을 가지면 모든 사물에서 무심하여 항상 평탄하고 바르고 착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항상 평등관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등관을 지닌다는 것은 모든 상이 공空함을 볼 줄 아는 것입니다. 공은 유무를 뛰어넘는 일체이기 때문에 일체가 된다 함은 구족하다는 것이며 이는 곧 평등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공관으로 모든 상을 파악하면 부처님과 중생이, 극락과 지옥이, 나와 남이 모두 평등합니다. 나아가 대소 장단도 물질도 감각도 감정도 모두 평등하고 구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허망한 모든 상에서 집착을 버리고 평등관을 실천하여 바르고 만족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용用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용은 원융하고 밝고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뜻이 있습니다. 서로 원융하니 밝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마음이 밝으니 모든 것이 아름답게 되는 것이며 또한 아름다우니 평화롭고 즐거운 것입니다. 원융하다는 말은 모든 용의 작용이 서로 걸림없이 조화롭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사람에 비유하면 눈과 귀와 코와 입과 손발과 그밖에 모든 신체 부위의 작용이 몸 전체와 연관되어 있을 뿐더러 마음과도 연관되어 있어서 저마다의 구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가정 생활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마음이 통하면 가정이 조화를 이루게 되고 부부나 친구나 이웃도 서로 원만하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생활 환경이 조성됩니다.
또한 용이라는 것은 자기 위치를 충실히 지키면서 그와 더불어 서로 화목한 것입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서로 고리로 연결되어 연기하므로 일체 곧 하나입니다. 사람의 몸은 여러 부위로 되어 있지만 전체로 보면 하나로 통합니다. 각 부위가 독립적이고 개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따로따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삼라만상은 하나하나의 개체이면서 동시에 일체입니다. 이것을 원융무애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아집과 편집과 이기심과 자만심에 사로잡혀 전체를 보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해치는 일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연기緣起의 이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서로 융화하고 조화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마음을 체와 상과 용으로 살펴보았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부처님의 말씀대로 살면 부처님이 되고 중생의 생각으로 살면 중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의 마음은 영원하고 만족하며 평화로운 마음이지만 중생의 마음은 끊임없는 생멸심과 탐욕심으로 가득찬 마음입니다. 부처님은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이지만 중생은 삿되고 악하고 부정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부처님 마음으로 살려고 하면 부처님의 마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나는 부처님이다. 그러니까 내 마음은 적멸하고 청정하고 진실하고 영원하다.’, ‘나는 부처님이다. 내마음은 항상 평등하고 집착에서 벗어났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착하고 바르고 또 항상 만족하다.’, ‘나는 부처님이다. 그러니까 내 마음은 언제나 원융하고 모든 일에 탐욕하지 않으므로 내 마음은 항상 밝고 명랑하고 아름답고 평화롭다.’
자기 생각을 이렇게 늘 부처님의 마음으로 돌이켜 이를 실천해야겠습니다. 부처님 마음으로, 육바라밀과 십바라밀 등 대승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이것이 곧 부처님의 삶이며 성불의 길입니다. 우리 모두 부처님 마음으로 성불합시다.
이 법문은 고봉스님께서 선우회 법회에서 행하신 법문의 요지를 다시 풀어서 기록한 것입니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