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암 거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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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박원자
1992년 05월 123호
초파일이 내일 모레인데 성은암엔 사방으로 초록의 물결만 넘실댈 뿐 그 흔한 연등 하나 보이지 않는다. 으레 초파일이 다가오면 사찰마다 마치 잔칫집인 양 술렁거리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가족들의이름이며 주소를 적은 꼬리표를 붙인 연등을 달곤 하는 게 사찰의 행사처럼 되어 버렸는데, 성은암엔 그런 술렁거림이 전혀 없었다. 암자의 주인을 만나자 성은암의 분위기가 왜 그리 간결했는지 금새 알 수 있었다. 스님이 이 암자에 와 기거하면서 처음 맞았던 지난해 초파일에도 성은암에서는 여느 절처럼 등에 값을 매겨 사고 팔거나 꼬리표를 붙인 연등을 달지 않았다. 이는 부처님 오신 날은 부처님의 법을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경축하는 날이지, 돈을 내고 등을 사서 이름을 써붙이고 복을 축원하는 따위로 정신을 빼는 날이 아니라는 스님의 생각이 신도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곧 맞이할 올 초파일에도 지난해처럼 그렇게 조촐하고 경건하게 맞이할 생각이다. 그래서 성은암엔 여느 절처럼 초파일이면 마치 대목을 맞이한 듯한 번잡스러움이 없었다.
거정 스님은 지난 스무 해 동안 써온 시를 추려 시집 두 권을 낸 시인이다. 그게 지난해였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인 1977년에 동시로 ‘아동문학’지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고 한국동시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분이다. 30여 년 전에 출가해 산중에서 ‘다 큰 사람’ 들끼리 살다 보니 아이들의 세계가 자연히 동경되어서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본 것이 동시를 쓰게 된 첫걸음이 되었다. 맑고 고요한 근원의 자리를 지향하던 스님의 마음자리와 동심이 자연스럽게 만난 것이다.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가 귀하게 여겨지고 그들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어 동시를 쓰기 시작했으나 순수를 지향하는 마음과 조용히 선을 하는 과정에서 맑은 시심이 솟아났을 뿐 인위적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한 적은 없다. 수행중 묵묵히 써놓은 글을 누군가가 보고는 ‘그냥 놓아두기에는 작품이 너무 좋다’고 해 여러 사람들 앞에 내놓게 되었다. ‘일반 시로 추천하겠다’는 조병화 시인의 뜻을 마다하고 동시를 고집해 죽 동시만을 써 왔다. 그런데 정작 스님의 시는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접근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읽는 시란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맑고 단순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그린’ 스님의 시가 그들에겐 어렵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아이들에겐 조병화시인의 지적처럼 스님의 시에 보이는 ‘깊은 산중에서 캐낸 송이버섯 향기같은 새로운 기쁨’을 캐내기에는 역부족이였으리라. 해서 나중에는 어린이 뿐 아니라 순수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쓰는 자세를 바꿨다.
“사실 내 작품에서는 불법을 핵심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나 생사해탈을 드러내 놓지는 않았지만 시 속에 그것을 근본으로 깔았지요. 우리가 맑고 고요한 본성으로 돌아왔을 때, 부처님의 본마음인 도道로 나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로 맑고 고요한 마음을 표현해 부처님의 법을 나타냈는데, 사람들은 ‘스님의 시에서는 불교의 냄새를 맡지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스님의 시를 광덕스님은 시집 첫머리 추천의 말씀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시는 기교가 없고 말이 없고 현란한 논리가 없을 뿐더러, 높다란 불법의 이치도 심오한 진리의 표출도 전혀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모두로도 오히려 도달할 수 없는 우리들의 진실, 실상의 자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스님의 시가 사람들에게 무덤덤하게 전달되는 것을 보면, 스님의 말씀처럼 아무래도 요즘 사람들은 ‘구호처럼 외치는 높은 목소리’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요즘 스님은 솟아오르는 시심의 샘을 아예 메워 버렸다. 당초 시인이 되려고 작정했던 것도 아니고 시집 한 권쯤 내고 절필할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스님을 보고 스님을 아는 이들은 더러 ‘시를 안 쓰고는 못 배길 것’이라고 하지만, 공부를 다 마치고 써도 괜찮을 때쯤 동화 한 편을 쓸 생각은 있으나 시를 쓰는 일을 접어둘 생각엔 변함이 없다. 스님의 창밖으로는 가까이 월야산의 산굽이가 물결처럼 펼쳐 있고, 더 멀리로는 삼천포 뒷산인 와룡산이 길게 누워 있다. 정남향으로 시원스럽게 내 놓은 통창이 퍽 인상적이라는 느낌과 함께 창밖으로 들어오는 월야산의 사계를 바라보노라면 시심이 저절로 솟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그뿐이랴 밤이면 쏟아져 들어오는 별빛이며 달빛, 혹은 산을 뒤흔드는 바람소리, 눈 오는 밤 설해 목이 넘어지는 소리는 시인인 스님을 그냥 놓아둘 것 같지 않다.
“내 살림살이가 없으면 시에 빠질 수 있겠지만 나의 살림살이가 더 급하고 좋기 때문에 이제 그만 쓸 생각입니다. 시집 한 권의 분량이면 충분히 나의 수행 과정이 표현되어 있겠지요. 수행인의 본분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로 돌아가야지요.”
스님은 유난히 옛날을 그리워한다. 삼십여 년 전, 절 집안의 형편이 어려워 마을에 내려가 탁발을 했던 일이나 겨울을 나기 위해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서 져 나르던 일, 그리고 한철한철을 아껴 정진했던 지난날이 진정 ‘중 노릇’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숨돌릴 틈도 없이 급격히 변화하는 오늘날의문명 속에서 불교의 수행 풍토마저 변해버린 지금, 스님은 더욱 옛 스님들이 조촐히 홀로 수행했던 옛 수행법을 아쉬워한다. 십오륙 년 전, 선림회를 발기한 것 또한 이러한 옛 수행법을 그리워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타율적이기보다는 자율적인 수도, 절 살림도 위아래 구별없이 나누어서 하는 원융한 살림을 주창한 것이 곧 선림회의 본뜻이었다. 자신이 성장하는 것이 곧 다른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며, 스스로 좋은 숲이 되고자 노력한다는 취지에서 선림회를 생각해 보았으나 동조하는 사람이 적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린 나무로부터 큰 나무로 성장했을 때 사람들에겐 풍성한 그늘을 드리워 줄 수 있고 새들에겐 안식처를 줄 수 있듯이 내가 성장해 무성한 수풀을 이루어야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지요. 도를 향해 수행정진하는 것이 곧 자신이 성장하는 길입니다. 옛 스님네들은 철저히 도에 목표를 두고 수행에 힘써 깨달음을 얻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지요. 요즘 불교의 현대화라 하여 자기 수행은 접어 두고 중생들과 어울려 지내는 일이 곧 포교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는데 이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정진을 해서 자기 완성을 이루었을 때 일체 중생을 교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채 성장하지도 않은 어린 묘목이 남에게 몇푼어치나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수행을 하지 않은 채 중생 제도를 따로 내세우는 것은 도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아완성을 하는 종교가 곧 불교인데 이것을 추구하는 수행인마저도 많지 않다며 스님은 요즘의 수행풍토를 깊이 염려했다. 불교가 마음을 닦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지식을 넓히고 불교학을 배우는 일에 급급한 세태가 퍽이나 아쉬운 듯 했다.
“수행을 떼어 버리면 불교가 아닙니다. 아무리 경전을 많이 읽고 참선을 한다해도 그것은 형식일 뿐이지요. 사실, 도의 길은 법문 한 구절, 한 경전 안에 있습니다. 예전엔 마음을 깨달아 들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경전 하나만을 중심으로 배웠어요. 철저히 수행을 목표로 한 공부였습니다. 요즘처럼 모든 경전을 섭렵하며 오로지 배우는 데에만 급급해 하지는 않았습니다. 강원과 선방을 거쳐 주지가 되고 또는 이력을 밟는 데에 급급한 풍토는 사라져야 합니다.”
‘도를 닦아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을 내지못하는 오늘날의 수행 풍토를 염려하는 스님의 말씀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스님은 두 해 전에 이곳 성은암에 들렀다가 ‘이런 곳에서 옛 스님들처럼 수행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본절인 청곡사에 내려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예전 행자 시절을 함께 했던 도반 스님을 만났다. 서로 길이 달랐기에 삼십 년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본절 주지로 있던 도반스님은 스님의 이러한 생각을 전해듣고 그로부터 두 달 뒤에 마침 암자가 비게 되었다며 스님에게 연락을 해 왔다. 함양 상원사에서 옛날식의 중노릇을 하고 있던 스님은 ‘아무래도 수행 정진하려는 원은 부처님의 원과 일치한다’는 생각을 하며 이곳 성은암으로 옮겨왔다. 스님은 요즘 시선집을 준비하고 있다. 선시와 국내의 시 가운데에서 작품 성향별로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 이루어지도록 시를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스님이 접한 시 가운데에서 잘 알려진 작품은 빼버리고 새로운 좋은 시를 선별하고 있는데, 올해 말쯤에 우리는 스님이 선정한 맑고 고운 시들을 대하며 문명에 메마른이들에게 꿈을 주려는 스님의 마음자리와 만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이십 년, 산에서 삼십 년을 정말 속절없이 살아왔다. 그대로 유수처럼 무던히도 이 강산 방방곡곡을 몇 바퀴를 돌며 살아왔는지 알 수가 없다. 앞으로는 남은 생을 한 점의 구름으로, 더러는 산중에서 한없이 머물고 때로는 바람따라 뜻없이 흘러가도 간 바가 없는 그런 삶을...”
채마밭에 손수 심어 놓은 상추를 뜯어 홀로 식탁에 앉을 스님을 뒤로 하고 내려오며 얼핏 떠올린 스님의 시집 뒷날개에 실린 글이다. 큰 절에서 만나뵌, 삼십 년 전에 행자 시절을 같이 보냈다는 주지스님은 거정스님을 이렇게 표현했다. “참, 맑은 사람이라요.” 성은암 뒤꼍의 대나무 숲을 뒤흔들던 바람소리가 오랫동안 마음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도에 한 생을 건 스님의 향기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