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처님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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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한승원
1992년 05월 123호
나는 한 처녀 늙은이를 알고 있다. 한 번도 시집을 간 적이 없고, 물론 사랑을 해본 일도 없다. 아기를 낳아 본 일도 있었을 까닭이 없다. 그 여자는 형제 자매도 없고 오직 돈이 있을 뿐이다. 돈이 그들과의 관계 맺기를 모두 끊어 버린 것이다.
그 여자는 돈이면 모든 것이 다 쉽게 풀릴 수 있다고 믿는다. 돈처럼 좋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제 건물들이 서울 안에 몇 채나 있는지 모른다. 호텔도 있고 장급 여관도 있다. 건물세가 퐁퐁 나오는 시장 안의 건물도 있다. 일반 주택, 아파트도 있다. 금싸라기 같은 땅들도 여러 군데 있다.
그가 돈을 버는 방법은 대개 이렇다. 반드시 법원에서 경매를 하는 땅만 사는 것이다. 그것을 사서 모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고쳐 짓거나 새로 짓기도한다. 이때 그는 건축비를 주지 않아 청부업자가 지쳐 나가 떨어지거나 도산을 하게 한다. 그래도 그는 조급해 하지 않는다. 몇 년쯤 지나간 뒤에 새로운 업자한테 맡긴다. 그 새로운 업자한테도 마찬가지 수법을 쓴다. 그 새로 나선 업자가 나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또 다른 새 업자를 불러들인다. 그는 그렇게 해서 돈을 몇 푼 들이지도 않고 준공을 따낸다.
그 악랄한 여자한테 내 주변의 한 순진한 사람이 걸렸다. 그 여자가 새로 짓겠다고 하는 여관으로 입주하려고 가진 돈 일억여 원을 넣고 계약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가 짓고 있는 그 여관 건물은 백년하청이었다. 언제 완공이 될지 알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다. 내 친지는 진퇴양난이다. 그래도 법에 호소할 생각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그 처녀 늙은이는 평생을 법의 약점을 이용하여 살아온 사람이므로 그녀와 재판을 하여 이긴 사람이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그 처녀 늙은이의 단칸방에는 그의 소유로 되어 있는 부동산 서류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사무원을 두지 않고, 밤이고 낮이고 간에 틈만 있으면 그 서류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법의 약점을 이용하여 늘 누구의 어떤 건물이든지 거저 먹을 수 있을까. 건물세를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낼까 궁리를 한다. 또 자기 건물의 가게에다 투자를 많이 한 세입자들을 권리금 한 푼 주지 않고 내쫓을 궁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돈 일억 원을 물려 놓은 내 친지가 찾아갔을 때 그 여자는 앞으로 자기도 좋은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자기의 부동산을 모두 처분하면 일천억 원이 훨씬 넘는다고 했다. 죽어가면서 그 돈을 한꺼번에 사회에 내놓겠다고 했다.
그 여자의 집에 다녀온 내 친지가 말했다.
“그 돈을 모으면서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짜냈을까. 그렇게 모은 돈을 죽어 가면서 다 내놓는다고 해서 그가 과연 지옥행을 면하게 될까?”
그 여자는 무엇이든지 병적로 소유하려 든다. 그것은 남자의 사랑과 자식에 대한 사랑을 소유하지 못했기에, 그 빈 곳을 채우려고 다른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는 몸부림을 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대체로 홀아비들은 누군가에게 주려고 하지만 홀어미들은 받는 족족 품에 안으려고 한다. 그것은 생리적인 구조하고 똑같다. 여자의 성기는 수용하게 되어 있고 남자의 성기는 뿜어 내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처녀 늙은이를 비웃고 욕하다가 나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나 스스로도 그 처녀 늙은이처럼 인색했다. 모으고 또 모아서 그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으려 했다. 그 처녀 늙은이처럼 지옥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극락과 천국은 바다 건너 저쪽 어디쯤에 있을까. 나는 도량에 들어서면서 또는 교회 앞을 지나면서 가끔 그 보이지 않는 세상을 생각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어디 있다고 생각을 할까. 부처님이나 하나님의 존재를 그야말로 독실하게 믿는 사람들은 극락과 천국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죽은 다음 극락이나 천국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에게 또는 하나님에게 부지런히 빈다. 돌아가신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를 그 곳으로 가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지옥에 가 있을지도 모르는 그 어떤 사람을 구해서 극락으로 보내 달라고 지장보살에게 지성을 다하여 빈다. 또 제 자신이 좋은 곳으로 가려고 재齋를 지내고 방생을 한다. 그것은 극락행이나 천국행을 위한 ‘미리 길닦기’일 터이다.
나는 그곳에 가보지도 않았고, 또 믿음도 그렇게 깊지 못하므로 극락이나 천국에 대하여 무어라고 자신있게 말을 할 수 없다. 어차피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위안과 평화를 얻기 위한 것이다. 부처님이나 하나님을 통해 위안을 얻고 평화를 얻는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믿음일 터이다.
나는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절에 가서 조그마한 등을 달곤 한다. 만일 극락이 그 어떤 곳에 있다면 나도 그곳으로 가고 싶다. 좋은 일을 많이 해야만 그곳에 이를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을 만큼의 좋은 일을 하고 싶다.
좋은 일이란 어떤 것일까. 그 일로 말미암아 얻어진 것을 나 혼자서 다 간직하지를 않고 그 가운데에 얼마쯤의 것을 이웃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이 그것 아닐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뿐이랴. 좋은 일을 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부처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가령 장미나무나 모란나무나 목련나무나 진달래 나무가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고 새로 봄을 맞아 예쁜 꽃을 피워냄으로써 이 세상을 환하게 채우고, 보는 사람들을 즐겁고 기쁘게 해 준다면 그 꽃들도 모두 부처님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들이 부처님일 수 있을 때 그것들은 이미 극락 세상에 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나는 꽃 피는 이 봄철에 들어서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집 뒷산에는 진달래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산들이 온통 벌겋게 물들었다. 진달래 나무들이 주렁주렁 불을 켜 달고 있는 듯 싶었다. 이어서 철죽꽃들이 숲 사이사이에서 요염하게 얼굴을 드러냈다. 그 꽃들 스스로가 이 세상을 극락 세상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좋은 일이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길거리를 가다가 휴지하나 버리지 않는 대신 떨어진 휴지 한 조각을 줍는 것이 좋은 일일 터이다. 길바닥에 쥐의 시체 하나가 있다. 그곳에 쉬파리가 알을 슬었다. 알들이 애벌레가 되어 그 시체를 파먹는다. 애벌레들도 그 시체를 분해하는 일로써 세상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한 것일 터이다.
그러한 내 생각이 과연 부처님 믿기라든지 그 사상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인지 자신있게 말을 할 수없다.
나는 물론 극락 세상에 가고 싶다. 그렇지만 부처님에게 그 곳에 이르게 해달라고 열심히 비는 것만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 내가 좋은 일을 함으로써 부처님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그 곳에 이르게 된다면 좋겠다.
좋은 일이란 돌려주기이다. 돌려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혼자서만 저쪽 어디쯤에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그 극락세상에 가겠다는 생각도 욕심이다. 그 욕심은 스스로를 인과에 떨어지게 하고, 스스로를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자기 혼자만 옳다는 생각도 욕심이다. 자기 이외의 사람은 다 틀렸다거나 다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은 아집이다. 그 어이없는 독선은 스스로를 저돌적으로 내달리게 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종말을 들먹거린다. 종말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자기들의 신을 믿으라고 한다. 그 신을 믿어야만 닥쳐오는 종말을 면하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눈이 덜 뜨인 민중들한테 설파하곤 한다. 그것은 종교이기보다는 일종의 집단 이기주의일는지도 모른다.
흔히 사람들은 늙어 가면서 턱없는 욕심을 부리는 수가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자기의 삶을 추악한 욕심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소외된 자신을 그 욕심으로 보상받으려는 것이다. 욕심을 채우려면 교활해져야 하고 간악해져야 한다. 교활과 간악이 이 사회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하는가.
앞에서 말을 한 처녀 늙은이처럼 병적으로 가지고 있으려 하고, 상대쪽이야 어떤 피해를 입든지 자기 배만 채우려는 욕심은 암세포하고 다를 바가 없다. 돈은 칼하고 같다. 복수를 하려는 자나 강도가 쓰면 사람이 피를 흘리게 하고, 음식점의 요리사가 쓰면 좋은 요리를 만들어 낸다. 목각하는 사람의 손에 그것이 들어가면 아름답고 정교한 공예품이 만들어진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