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구하는 행보에 탄탄대로坦坦大路는 있을 수 없다. 무명無明의 습習에서 비롯된 오욕락五慾樂이 중생에게는 달콤한 꿀일지라도 진리를 찾는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다. 채 버리지 못한 욕망은 아무리 작은 잔해라도 곧 모진 비바람이 되고 만다. 그러나 진리를 찾는 이에게 비바람은 더 없는 즐거움이며, 끝 없는 가르침이다.
“벗이여, 진리를 찾아 출가한 그 첫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설법 자리에서 수마睡處의 유혹을 못 견뎠던 아나율에게 던진 석가 세존의 질책이다 채 자르지 못한 세간의 습習을 단숨에 잘라 버리는 순간이었다. 이 날부터 아나율은 잠을 자지 않는 수행을 계속하여 육신의 눈을 잃었다. 안타깝게 여기선 석가세존이 그를 명의에게 보이기도 하고, 지나친 수행을 나무라기도 하였건만 아나율은 온 몸이 부서질지라도 부처님께 맹세한 것을 깨뜨릴 수 없다고 답하였을 뿐이다.
아나율은 범어로 아니룻다Aniruddha라 한다. 이는 불멸不滅, 무멸無滅의 의미이다. 아나율은 중생의 즐거움을 끊음으로써 다함이 없는 진리를 얻었다. 육신의 눈을 잃은 아나율이 얻은 것은 지혜의 눈(天眼)이다. 육신의 눈으로는 나는 새만을 볼 수 있으나 지혜의 눈은 허공에 난 새의 발자국을 본다. 육신의 눈으로는 중생의 고통만을 볼 수 있으나 지혜의 눈은 중생의 고통을 구하는 방편을 본다.
보살이 쌓은 공덕이 어찌 그 자신을 위한 것일까. 진리를 구하는 이의 발걸음이 쉼 없이 계속되는 것은 중생을 위함이 천얀千眼의 관세음일지라도 그 일천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중생의 마음 그 한 곳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