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되는 종교의 정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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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2년 04월 122호
한달 동안 전국을 휩쓸었던 14대 총선 열풍이 지난달 24일 투표를 끝내면서 막을 내렸다. 이번 총선의 걸과를 놓고 보면 여느 때의 총선과는 달리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성취하고 경제적으로는 균형있는 성장을 이룩하며 사회적으로는 정의에 바탕을 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 어느 정도 담긴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의 과정에서 흑색선전, 폭력, 금품 살포와 같은 구시대의 탈법 선거운동이 난무하는 이전투구식의 싸운이 벌어져 우리의 정치 수준이 아직은 저급한 상태임을 드러내보이기도 했다. 특히 망국적인 지역갈등을 정치인들이 앞장서 조장하는 가운데 종교갈등마저 정치에 이용하려는 작태와 함께 일부 종교지도자들이 선거운동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드러내 다종교상황에 있는 한국의 종교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먼저 종교갈등을 정치에 이용했던 보기로는 조용기 목사의 \'기독교 입국론\'파문을 들 수 있다.
2월 24일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 목사는 한국기독교 부흥협의회 축하예배 자리에서 \'장로대통령, 기독교인 국회의원\' 이니 \'기독교 입국론\'을 들먹이며, \"청와대에서 목탁 소리가 너무 많이 들렸다,\" \"캐톨릭 김 추기경이 청와대에 너무 자주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따위의 발언을 했다. 조목사의 이 날의 발언은 KNCC 등으로부터 즉각적인 반발을 샀으며, 교단 안의 진보적인 언론과 사회의 언론으로부터 철퇴를 받으면서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켰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 목사의 이같은 발언은 87년 대통령선거 때에 김영삼 후보의 발언에 그 근원을 두고 있음을 쉽사리 알 수 있다. 그 때에 김 후보는 여당후보이던 노태우 후보에 대한 불교계의 지지도가 뜻밖에 부각되자 개신교도인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하여 \"내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에 찬송가가 울려퍼지게 하고...\" 따위의 발언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다른 보기는 투표일 닷새 전인 19일부터 종로구 관내 유권자 가운데 기독교 신자에게는 불교를 찬양하는 내용을, 불교 신자에게는 기독교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가 국민당 후보의 명의로 대량 배포되었다는 사실이다.
국민당측은 민자당 후보측에서 이런 선전문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민자당측은 이를 부인하는 등 사건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정치인들이 앞장서 종교갈등을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임은 분명하다.
종교지도자가 선거운동에 노골적으로 참여하는 사례로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장인 서의현스님의 제주도 발언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의현스님은 2월 29일 제주 오리엔탈호텔에서 도내 불교 지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열린 \'나라를 위한 기원법회\'에 참석하여 \'김영삼 대표의 삼당 합당은 구국적인 결단이며 김대표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소생시킨 지도자\'라는 요지의 법어를 했다. 이어 우백암 태고종 총무원장도 \"민주화를 위해 안정이 필요한 만큼 우리 불교인과 불교 지도자들은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에 나서야 한다\"고 발언하여 특정한 정당의 총선 구호를 연상하게 하는 지지성 법어를 했다. 김영삼 대표가 초청되어 인사말까지 하고 또 이들 스님들과 단독 요담까지 가졌던 이 날 법회 뒤로 대중불교 전국기자단, 통불협, 공불련, 중앙승가대학 학생회 들에서 규탄성명이 잇달아 발표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선거운동이 중지되었다는 흔적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참다 못한 중앙승가대학 학생회 스님들이 3월 18일 조계종 총무원에서 이틀 동안 농성을 하자, 서의현 스님을 대리한 총무부장 스님이 \"제주 발언이 사실이며 이를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정도의 내용을 담은 확인서 한 장을 건네주었을 뿐이다.
이와 관련된 또다른 보기로는 18일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개신교 강남지역 교계 지도자 조찬 기도회\'가 있다. 김영삼 민자당 대표를 비롯하여 강남지역 여당 입후보자들이 참석한 이 날 기도회에서 김성광 목사는 \"교회가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이 나라가 기독교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으며, 김영삼 대표는 \"지역의 영적인 지도자이신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한다\"며 민자당 지지를 호소했다. 또 김영삼 대표가 시무하는 강남의 충현교회에서는 일부 장로와 교인들이 공개석상에서 김대표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으며, 19일에는 은평구 수국사에서 박완일 민자당후보가 참가한 가운데 지지성 법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와같이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는 법회나 기도회가 나라 안 곳곳에서 열렸거니와 위에 든 보기들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음을 현명한 독자라면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종교와 정치는 어떤 관계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의 헌법 20조는 종교의 자유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곧,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조항이다. 제헌헌법 이래로 조금의 자구 수정만을 거친 채로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이 조항은 결국 종교자유의 보장과 정교분리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 원칙은 나라에는 종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행하지 아니할 의무를 부여함과 더불어, 종교단체에 대해서도 정치불간섭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리고 \'종교의 자유보장\'이라는 부분은 각 종교들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의 기회를 보장해 주는 처방약으로 우리의 다종교 상황을 합법적으로 지켜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우리 사회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다종교국가라는 데에 있다. 법적인 보장에도 불구하고 다종교 상황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이 사회 기강을 어지럽힐 만큼 심각함이 사실이다. 자기 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남의 종교를 비방하고 심지어는 성물을 훼손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여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 이즈음에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런 사태가 계속 진행된다면 중동의 종교전쟁이 우리 사회라고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냐는 우려의 소리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때 조용기 목사의 \'기독교 입국론\'은 그가 갖고 있는 교단사회에서의 영향력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심각한 파문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더욱이 영호남의 지역적 분열, 노사 사이의 계층적 대립, 학연이나 지연 따위의 잡다한 이해가 상충하여 내는 불협화음들에 휩싸여 있는 우리사회에 종교적 갈등까지 야기시킴으로써 정치의 혼란상을 더 가중시켰다는 비난을 결코 면할 수가 없다.
한편 서의현 스님의 제주도 발언은, 종교갈등 문제라기 보다는, 그 자신의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정치를 이용하는 어용적인 행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의현스님은 현실적으로 종단 안에서 총무원장 자격 문제를 놓고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으며,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퇴진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단 안에서의 약해진 입지를 정치권, 그것도 막강한 여당을 끌어들여 강화해 보자는 술수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조 목사나 의현스님의행위는 현행 헌법과 선거법으로 보면 위법행위임이 분명하다. 또 종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사회 일반의 기대에도 크게 어긋나는 일이다. 그리고 서로 정치적인 신념을 달리하는 신자들이 공존하는 교회나 사찰의 현실에도 맞지 않는 정치지향적 행위일 뿐이다.
각 종교가 저마다 은근히 정치권력과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이 정치적 세력화로 이어질 경우에, 종교 사이의 갈등은 더욱 첨예화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서 종교로 말미암은 전쟁 따위는 없었던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지금같이 종교들이 저마다 정치참여에 몰두한다면, 정교분리의 원칙은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의 와중으로 떨어질 것은 뻔한 이치이다. 내 종교의 신자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종교적 이기주의에 빠진다면 다른 종교의 신자도 그와 똑같은 아집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화와 통일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누가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더 열심히 일했느냐가 선택의 척도이어야 하며, 또 그럴 가능성을 지닌 이들이 정치 지도자가 되도록 하는 데에 종교계도 앞장서야 할 것이다.
3.24 총선은 끝났지만 이제 대통령선거를 두고 각 종교지도자들은 또다시 종파이기주의, 정치적 입지 강화 등의 전면에 나설 것이 예상된다. 87년의 경우와 같이 불자 대통령, 기독교신자 대통령을 만들려고 종교 지도자들은 다시 한 번 신자들을 우롱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를 십분활용할 대통령후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수님도, 불교의 부처님도 사회 혼란과 갈등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과 자비는 중생들의 화해와 일체감 형성에 기여하는 만고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