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철 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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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리 일기 - 현진
1992년 04월 122호
지객知客스님을 찾았다. 조계총림 송광사. 이번 철에는 이곳에서 안거를 지낼 작정이다. 그동안 살았던 해인사에서 해제를 하고 여러군데 떠돌면서 그전부터 살고 싶었던 송광사를 찾기로 하였다. 지객을 맡고 있는 스님이 마침 아는 도반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한철 동안 공부한 얘기를 터 놓았다. 내일 아침에 입방入房 절차를 밟기로 하고 오랜만에 정담 있는 차 한잔을 맛보았다.
처소를 옮길 때마다 또다른 기분이 들고 새로운 각오로 걸망을 풀게 된다. 여기에선 내 수행에 어떤 변화가 올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쉬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 내가 있는 비전碑殿은 아직 옛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훨씬 정감이 묻어나는 곳이다. 더군다나 큰절과 조금 떨어져 있기도 하여 꼭 암자같은 기분이 든다. 아직까지 장작을 지펴 불을 때는 온돌방이라 건강에도 좋을 듯하고, 주위의 죽림竹林이 한결 운치있게 느껴진다. 첫눈에 도량이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그날 밤 대숲을 지나는 메마른 바람소리가 모처럼 찾아온 운수객을雲水客을 외롭게 만들었다. 적요寂寥를 즐기기보다는 또 외로움에 젖어드는 감상적인 내 모습에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렸다. 수행의 긴 회랑에서 만나게 되는 이러한 노을빛 감정은 때론 나를 한없이 심약하게 만드는 당당한 실존이 아니던가. 아무튼 이런 낯선 기분을 내 스스로 싫어하면서도 자꾸 물처럼 바람처럼 살고 싶어진다. 내 일상에 쉽게 안주하려 들고, 또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 버리는 우리네 방일放逸의 본능을 길들이기 위한 하나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수행처를 한 번씩 옮길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쌓인 물건들과 마주서게 된다. 이번에도 또한 나누어주고 버리고 하여도 걸망하나는 족히 넘었다. 인간은 소유의 역사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닌 듯 싶다. 내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둔 것이 떠날 땐 귀찮은 살림살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반연攀緣 또한 마찬가지. 이러한 인연 덩어리가 내 떠남을 망설이게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경험하였다고 할까. 그것이 정情이라는 뚜렷한 감정으로 다가올 땐 당황하기까지 하였다. 내 속의 배설물을 매일 버리듯 소유의 속박에서 매일 벗어나야 한다. 기실 생각처럼 그렇게 잘 되지 않는 내 자신이 더 답답한 노릇이다. 그래서 우린 떠남을 통해 진정한 무소유의 삶을 조금씩 터득하게 되는 모양이다. 이번에도 걸망을 챙기면서 그동안 살았던 수하樹下에서 쌓아 온 인연의 부피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에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참으로 걸림없이 행각을 자유롭게 돌았던 선사先師들의 행장은 무수한 버림이 선행되었을 게다. 조그만 물건도 버리기가 아까워 챙겨두고 하는 내 성미에 걸망 하나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은 수행이 아직 턱없이 부족한 까닭임이 분명하다.
다음날 입방이 있었다. 먼저 참중參衆 원서에다 대중과 화합하여 정진할 것을 서약하고 내 출가 이력을 적었다. 처음으로 써보는 입방서류라는 점에서 기분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리고 산중 어른 스님들을 뵙고 방부인사를 차례로 올리려고 이곳저곳을 왔다갔다 하는 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른들을 가까이서 뵙고 말씀 듣는 게 푸근하고 좋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모두 반가와 하시고 자상하게 일러 주시는 가풍이 마치 옛집으로 돌아온 식객을 대하듯 하였다. 큰방에서 정식으로 방부를 할 땐 긴장한 탓에 절을 제대로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송광사에서 같이 정진할 스님입니다.\" 어른 스님네를 비롯해 대중 스님네에게 삼배를 한 뒤 무릎을 꿇고 반배를 마치자, 교무스님이 이렇게 말하고 내 법명을 또박또박 일러 주었다. 이렇게 하여 큰방에 방榜을 붙이게 됨으로써 이제 송광사 대중의 일원이 된 셈이다. 만나는 스님마다 한결같이 고요한 눈빛을 지녔다는 느낌을 받았다. 흔히들 산세에 따라 한 도량의 성격이 달라지고, 또 그곳 스님네의 수행 가풍이 형성된다는 말이 억지 주장은 아닌 듯했다. 도량 곳곳에 여기 스님네의 섬세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느 스님의 말처럼 주봉主峰에서 부드럽게 흘러내린 조계산을 닮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사람마다 나름대로 나란 멋에 살건만
이 몸은 언젠가 한줌 재가 되는 것
묻노라 주인공아 어느 것이 참나런고
입적하신 구산九山 큰스님의 칠바라밀법문 서문에 있는 게송이다. 스님께서 소참법문으로 간간히 하신 것을, 아침공양 끝에 경책이 되는 내용만을 간추려 한 구절씩 암송하는 게 참 좋아 보였다. 하루를 어떻게 정진해야 할지를 일러 주시는 법문이라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승풍을 진작시킨 곳으로 유명한 송광사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안에선 수행의 보임처保任處로 더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공부가 잘 익어 마음을 쉬는 곳이라는 뜻이다.
나를 여러가지로 부끄럽게 만드는 도량에서 산다는 것은 커다란 복이 아닐 수 없다. 초발심 때의 마음으로 돌아간 날은 오늘이 처음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