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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인가, 노동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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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재영 1992년 04월 122호
어린이를 파괴하는 사람들
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의 난제는 비인간화의 장벽이다. 교육의 목적이 어린이들의 자기실현을 돕는 데에 있다는 것이 현대 교육학의 명백한 입론이나, 학교는 도리어 어린이들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억압하고 왜곡시키고 있다.
교육학자인 이반 일리치는 그의 저서「탈학교 사회」에서, \"학교는 마치 상품 제조기와 같은 인간 제조기가 되어 어린 학생에게 자발적인 성장의 책임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으므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비평가 폴 굿맨은 교육 체제에 대한 그의 연구를 토대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의무교육 체제는 누구나 한 번쯤 빠져야 할 책임이 되어 버렸다. 이런 체제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비록 형식교육이 없었더라도, 각계각층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레오나드는 교육이 어린이의 잠재된 가능성을 계발하기는커녕 질식시키고 있다며, 이렇게 고발한다. \"유치원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고 꾸밈없으며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대해서 감동, 공포, 웃음과 같은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들의 얼굴은 빛나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러나 국민학교 4학년어린이에게서는 그런 모든 것들을 이미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말이 없고 금지당하며 고통스럽게 자신을 느끼며 자제한다.\"
입시지옥, 내신 경쟁으로 대변되는 한국 교육의 현장은 더욱 비인간적이다.강요된 보충수업에 대하여 한 고등학생은 이렇게 쓰고 있다.
\"맥빠진 흥미없는 보충수업, 이것이 보충수업의 내용이었다. 보충수업 용지에는 분명히 희망한다, 하지 않는다를 밝히는 선택란이 있었지만, 모두가 해야 한다는 선생의 말이 우리를 더욱 힘없이 만들었다. 인간을 완전히 하나의 입시 도구나 노예로 만들기 위한 작업 같은 인상을 주었다. 보충수업이 방학 동안에 일어날 수 있는 학생들의 범죄 따위를 막아 보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보충수업 용지를 받고 강제로 모두가 해야 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말로 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고 항의라도 하고 싶었다.\"
무감동, 침묵, 분노, 좌절, 청소년들을 이러한 비인간적인 함정으로 몰아넣는 학교교육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교사에게 있다. 교육의 주체는 사실 교사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학교 교육의 현장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불행히도 그들은 그들이 의식하든 못하든, 어린이를 왜곡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학교가 인간이 살 만한 곳으로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많은 학교가 우리의 어린이가 있을 만한 곳이 못 된다. 그들은 어린이들의 자연적인 학습능력과 건전한 성장능력을 손상시키고 방해하고 질식시키고 있다. 그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가운데 너무도 흔하게 \'인간 정신의 파괴\'에 종사하고 있다. 교사들은 어린이들의 마음과 가슴을 파괴해 놓는다.\" 중학생인 한 소녀는 이 파괴의 희생이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렇게 항변하고 있다. \"난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 버릴 땐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
교사들의 근무 조건
교사들은 왜 이렇게 어린이들의 인간성을 파괴하며 짓밟고 있는가? 사랑과 대화의 인간교육 원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교사들이 인간성 파괴에 종사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문제는 정치적, 사회 경제적 조건과 같이 교육외적인 모든 요인들과 구조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이지만, 교육 내부의 상황, 특히 교사들의 근무조건과 관련하여 밝혀 보는 것이 문제의 실제적인 이해와 해결에 유용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교사들의 일반적인 근무 조건은 복합적인 것이지만, 다음 몇 가지 항목으로 그 문제점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교사들의 과도한 근무시간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교사들의 주당 수업시간은 매우 과중한 편이다. 고등학교의 경우를 보면, 정규 수업시간이 주당 평균 20.7시간인데, 사립학교는 평균치보다 더 많아 22시간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사무처리 시간 6.1시간, 보충수업 5.8시간, 자율학습 지도 9.0시간들이 부가되어 교사의 주당 근무시간은 61.4시간에 이르고 있다. 결국 하루 평균 10.2시간꼴인 이 근무시간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이 자나친 것이며, 일반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훨씬 웃도는 근무량이다. 실제로 많은 교사들이 아침 7시쯤에 출근하고 밤 10시쯤에 퇴근한다. 별을 보고 나와서 달을 보며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듯 지나친 장시간 근무의 직접적인 원인은 입시 경쟁이다. 인문계의 경우 학교의 교육력은 전적으로 대입시 시험 결과에 따라 평가되고 있고, 이 경쟁에서 뒤지면 학부모들의 매도 아래 설 자리를 잃게 되므로, 학교 당국은 교사들을 채찍질하고 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과도한 근무시간에 허덕일 수밖에 없게 된다.
둘째는 과밀학급으로 인한 과중한 업무부담이다. 중고등학교의 학급당 학생수는 보면 1985년 현재 중학교가 평균 61.7명, 고등학교가 56.9명이다. 그리고 1986년 현재 학생수가 60명을 초과하는 과밀학급이 중학교의 경우 전국에서 26,093개 학급으로 전체의 56.3%에 이르고, 대도시에서는 그런 현상이 더 심각하여 85.5%에 이른다.
이 과밀학급은 과대학교 현상과 결부되어 교사 1인당 담당 학생 수의 과중으로 나타난다. 1986년 현재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국민학교가 37.9명, 중학교가 38.4명, 고등학교가 31.1명으로,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보다는 말할 것도 없고 대만, 싱가포르보다도 훨씬 과중하다.
과밀학급과 과대학교 현상은 한편으로는 학습효과 저조, 학생들의 심신 발달 저해, 안전지도 미흡 들과 같은 많은 교육의 문제를 일으키거니와,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교사에게 지나친 부담을 안겨 줌으로써,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인간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또 학생 문제에 대한 교사들의 교육적 접근을 곤란하게 한다는 점이다. \"학급에 학생 수가 많아지고 학교가 너무 비대해지면 우선 교사가 학생 개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도하기 어렵게 된다. 자연히 가르치는 것과 학생지도가 획일적으로 되고 형식에 흐르게 된다. 학생은 그만큼 교사의 관심과 눈을 피할 여지가 많이 생긴다. 따라서 학생들은 교사는 물론 다른 친구들로부터도 소외되고 개인의 특징이나 존엄성을 인정받기 어렵게 된다. 곧 학생 각자가 이름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이로 말미암아 소외감도 경험하지만, 학생 수가 많은 데에서 비롯되는 익명성의 보장으로 일탈 행동도 마음놓고 할 수 있게 된다.\"
셋째로, 교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들 수 있다.
교사의 보수가 다른 직종에 견주어 열악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92년 현재 30년이상 장기 근속한 최고 호봉의 본봉이 90만원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만 보아도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입증해 준다. 이러한 열악한 보수 조건은 교직에 대한 사회적 지위 인식도에 그대로 반영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1984년에 대한교육연합회에서 조사한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 인식 순위\'에 따르면, 교사들의 사회적 공헌도는 의사, 약사, 판사, 검사보다 앞서는 2위를 기록하고 있으나, 사회적 지위는 20위, 24위, 그리고 경제적 지위는 26위, 30위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열악한 처우는 교사들의 \'천직\'으로서의 자부심을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교직에 대한 불만과 기피의식을 심화시킨다. \'교원의 교직 의식에 관한 연구\'(대한교육연합회, 1983)에 따르면, 교사들은 낮은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 가장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고(32.7%), 다음으로 경제적 불안정(27.6%), 나쁜 근무조건(16.4%), 보람을 느낄 수 없음(13.3%), 적성이 맞지 않음(7.0%) 등의 순으로 교직에 대해서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또한 65.0%의 교사들이 \"교직을 다시 택하지 않겠다\"고 응답하고, 기피 이유로는 낮은 사회적 지위(34.3%), 낮은 보수(20.2%), 승진 기회의 부족(19.5%) 등을 들고 있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장기간 근무, 38명이나 되는 과중한 1인당 학생수, 거의바닥에 가까운 사회적, 경제적 지위로 말미암아, 이제 이 땅의 교사들은 더 이상 교직을 천직天職이나 성직聖職으로 자부하지 않는다. 전문직론, 중산층론도 한갓 모호한 추상론일 뿐으로, 그들은 고달픈 직업인이요 노동자일 따름이다. 이것은 어떤 형태의 계급론적 인식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훌륭한 선생님, 존경받는 스승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들은 교육학에서 배운 훌륭한 교사의 역할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여건에 있기 때문이다.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교사들, 그 결과는 학생들의 눈에 여실히 투영된다. 1986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의 35.2%만이 \"교사를 좋아한다\"고 응답하고 있을 뿐이며 52.3%는 \"그저 그렇다\", 12.5%는 \"교사를 싫어한다\"고 응답하였다. 또 1982년의 한 연구에서는, 학생들이 교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고민이 있을 때 상의하고 싶은 선생님이 없다.\"(57.7%)
\"선생님은 학생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잘 이해해주지 않는다.\"(57.3%)
\"선생님은 우리와 자주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46.8%)
\"존경할 만한 선생님이 보기 힘들다.\"(25.6%)
불교의 해답
허덕이며 쫓기는 근무시간, 품위를 지킬 수 없는 박봉, 과밀학급과 거대학교에서 받는 중압감, 이러한 불리한 요인들이 압박해 오는 현실 상황에서 오늘의 교사들은 천직이라는 자존심을 잃고서 한갓 노동자로 전락해 가고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교사들은 관료 집단, 학부모 집단 들의 부당한 외압에 정정당당히 맞서 광정하지 못한 채 도리어 부조리한 학교교육의 한 구조품이 되어 끊임없이 어린이와 학생들의 가슴을 파괴하는 일에 말려들고 있다. 오늘의 이런 현실에서 전교조 운동이 발생하였고, 교사와 학생의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참교육운동은 많은 부분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천직으로서의 교직의 소명과 일개 노동자로의 전락 사이에서 수많은 교사들이 방황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어떠한 교육 개혁도 공염불이 되고 마는 이 절박한 문제에 대한 불교의 대답은 무엇인가?
석가모니부처님은 어느 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자가 스승을 공경함에서 다섯 가지 할 일이있다.
첫째는 스승의 필요한 물건을 받들어 공급함이다. 둘째는 예의로써 공경하고 공양함이다. 셋째는 존중하여 우러러봄이다. 넷째는 스승의 가르침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따라서 어긋나지 않음이다. 다섯째는 스승을 따라 진리(法 )을 물어서 잘 지니고 잊지 않음이다.
이것이 바로 \'스승 공경의 오사五事\'이다. 물질적인 조건의 충족을 첫번째로 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우리는 당면한 교사 문제를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지혜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제 한국불교는 바로 이러한 지혜의 가르침에 힘입어, 이 땅의 교사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발언하고 행동해야 할 터이다. 이것이 교육 인간화의 목표를 추구하는 길이며 또한 민족정토를 실현해 내는 바른과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