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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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92년 04월 122호
지공스님은 한국불교사에 특이하게 기록되어진 스님이다.
중국불교에는 인도에서 전교의 사명을 띠고 순례의 길을 떠나 온 위대한 고승이 무수하게 그들의 족적을 역사의 행간에 남기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사에 인도의 스님이 그들의 전법의 행각을 이 땅에 남긴 사람이 극히 드물게 보이는데, 지공스님이야말로 인도의 불교를 직접 이 땅에 전하는 역할을 한 스님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특히 나옹스님, 무학스님과 더불어 여말선초의 삼대 화상으로 일컬어질 만큼 그 분의전법 행각은 다중한 무게를 싣고 있다.
스님은 인도 마갈타국 만滿왕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여덟살의 어린 나이에 나란타사 율현律賢에게 출가하였다. 열아홉 살이 되어 남인도 릉가국의 길상산에서 보명普明에게 참배하는데, 보명스님께서 \"중천축에 이에 이르렀으니 몇 걸음이었는가?\" 하니 지공화상은 대답을 못하였다. 물러가 석동石洞에 앉기 6개월만에 깨달은 바 있어 보명에게 고하기를 \"두 다리가 일보다\"하자, 보명스님이 의발을 주면서 \"하산일보下山一步하면 문득 이 사자의 아이로다. 나의 문하에서 법을 얻어 출신한 자가 여럿이나 중생에게 모두 인연이 적었도다. 너는 나의 교화를 널리 하라\" 하였다.
뒤에 원나라를 거쳐 고려 충숙왕 15년(서기 1328년)에 이 땅으로 와 금강산 법기도량法起道場에 참예하고 그 곳에 머물렀다. 다시 원나라의 부름을 받고 연경燕京에 돌어가 법원사를 짓고 머물다가 공민왕 12년(서기 1372년)에 귀화방장貴化方丈에서 시적示寂하였다. 공민왕은 그의 다비 일부분을 가져와 회암사에 부도를 세워 그의 자취를 흠모하였다.
지공스님이 고려에 머문 시기는 그리 길지 않으나, 원나라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꽤 많은 고려 사람이 그의 문하를 찾았고 나옹대사에게 법을 전한 전법사이기도 하여 실제로 고려의 불교에 기여한 공이 참으로 컸던 것이다. 그는 두 권의「문수사리무생계경」그리고 「원각경」,「선요록禪要錄」같은 책을 남기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선요록」은 그의 사상을 모두 담고 있다 하겠다.
그의 법어 한 귀절을 여기에 적어 본다.
벙어리가 높은 소리로 묘법을 설하고 啞者高聲說妙法
귀머거리가 먼 곳에 가는 말을 듣는다 聾者遠處聽微言
무정한 만물도 다 찬탄하고 無情萬物皆讚歎
허공에 가부좌하고 밤새워 참선하다 虛空趺坐夜來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