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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 방편으로서의 인권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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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혜진 1992년 04월 122호
\"작년 여름 비로 다 내렸기 때문에 눈이 인색한 겨울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눈 뒤끝의 매서운 추위는 죄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데도 눈 한번 찐하게 안 오나 하고 젊은 친구들 기다려쌌더니 얼마 전 사흘 내리 눈 내리는 날 기어이 운동장 구석에 눈사람하나 세웠습니다. 감옥 뜰에 서 있는 눈사람.연탄 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재소자의 면회를 마치고 돌아나오는 교도소 담장 귀퉁이로 아직 차가운 겨울바람이 몰아쳐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유리벽 너머로 차가운 수인의 눈동자를 뒤로 하고 경전 몇 권과 생활용품을 전달하고 나오는 길에, 장기수로 스무해를 감옥에서 보낸 신영복 선생의 편지글 한 구절이 저들의 갇힌 심정을 충격적으로 적고 있다는 생각을 떠올립니다.
\"한 나라를 알려면 그 나라의 교도소를 보라\"는 말도 있지만, 한 사회의 모순이 집적된 후미진 곳, 구조적 모순이 잉태한 수많은 범법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 교도소입니다. 굳이 부처님의 저 광대한 교설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따지고 보면, 죄라는 것도 시대와 환경, 사회적 조건의 산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행간에서 무고한 죄인과 어쩔 수 없는 기막힌 운명의 죄인을 자주 보곤 합니다. 정권 담당자들이 그 정권을 유지하려고 죄없는 시민을 감옥에 가두는 행위에 의해서나, 찌들고 비틀린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법의 이름으로 보호되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여서 갇힌 몸이 되는 사람들, 그 무수한 사연의 수인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조건으로 하는 삶의 기준으로부터 유리된 자들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생활 주변에는 자본주의적 무한경쟁의 사고방식이 유일한 생존의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생존의 유일한 잣대는 누가 많이 재화를 거머쥐느냐에 달려있고, 한 인간의 인격과 지위마저도 돈에 기준한 가치관에 따라 평가되는 물신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러한 무한경쟁과 물신주의에서 낙오된 자들이 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한 단면이기도 한 빈민과 교도소의 양산을 낳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사회구조가 정착될수록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대결 구도는 깊어지고, 가지지 못한 자의 아우성은 사회구조의 심각한 모순 형태로 사회 구성의 한 측면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애초에 종교가 개인과 사회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전형으로 출발했다면 지금의 종교 또한 우리 시대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순과 고통에 눈을 돌려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근본불교 당시 부처님께서는 그 무렵 인도 사회의 계급적 질곡에 반하여 가장 높은 바라문 계급과 가장 낮은 수드라 계급도 근본의 자리에서는 평등하다는 계급의 평등을 주창하여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만유평등의 사상을 펼치셨습니다. 특히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노예 계급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며 그들의 아픔을 온 몸으로 함께 나누는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정신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소외된 이들을 따뜻한 삶의 자리로 돌려놓는 일에 큰 지침을 마련해 줍니다. 그 따뜻한 자리야말로 불교가 희구하는 정토의 세계일 터입니다. 그 정토 세계를 열어가는 방편으로서의 인권불사는 바로 인간의 자주적인 모든 권리, 곧, 인권의 자유가 만인에게 평등하게 보장되는 사회를 구현하는 일입니다. 사회의구조적 모순에 의하여 인간적인 삶을 유린당하고 또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앞장서는 것이 인권불사의 신성한 책무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고귀한 정신을 발양하는 신성한 불사인 인권불사의 현주소는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만에 하나 누가 물을라치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고 한심합니다. 다른 종교는 한 스무해 전부터 종교 본연의 책무 가운데 하나인 인간구원의 문제가 바로 이러한 사회구조의 모순에서 태어난, 소외되고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받은 이들을 돕는 인권사업이라는 인식 아래 여러 가지 사업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이 부러워 보일 지경입니다.
안권불사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꼽아보면, 먼저 사회에서 버림받은 여자와 분단 상황이 만들어 낸 기지촌의 여자들 문제,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탁아 사업이 있습니다. 이는 냉대와 멸시를 받으며 자란 버림받은 이들에게 우리 모두가 갚아야 할 사회 공동의 책임이자 또한 종교가 짊어져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왜곡된 경제구조에 의하여 일한 만큼의 몫을 분배받지 못하는 경제 불평등의 치유에서부터, 전향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삼사십 년 동안 차가운 감방에서 보내야만 하는 장기수의 석방 문제, 부도덕한 정권의 피해자인 양심수에 대한 지원 문제, 그리고 이들을 옭아매는 법과 제도의 개폐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인권불사는 끝이 없습니다. 요즘에 부쩍 늘어난 성폭력 문제나 일제시대의 정신대 문제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양심수에 대한 지원 불사는 포교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몫을 차지합니다. 불교인권위원회에서는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전국의 교도소에 있는 양심수에게 경전 및 겨울 내복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경전을 보시받은 군산교도소의 양심수 한 분은 종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종교적 사랑만큼은 함께할 수 있으며 사회의 구석진 곳곳에 그 사랑이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긴 사연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남한사회주의조동자 동맹의 박노해씨는, 마침 불교에 관심이 있던 터라 경전을 고맙게 받았는 말과 더불어, 불교 경전과 송찬우 씨의 노자와 장자 번역서 및 월간 해인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경전을 보내주면 고맙겠다는 연락을 가족을 통해 보내왔습니다. 가난한 카톨릭 집안에서 자라나 노동해방 투쟁에 앞장서 왔던 박씨가 이처럼 불교에 대하여 관심을 나타낸 것은 결과적으로 경전 몇 권이 가져다 준 소중한 보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 겨울의 인권불사는 포교의 성과뿐만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종교적 사랑과 보시가 그들에게 크나큰 힘과 격려로서 다가섬을 깨닫게 한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교인 모두가 헤쳐나가야 할 과제가 곳곳에 쌓여 있습니다. 이를테면 구속자 가족 모임인 민가협 회원이나 민주화 과정에서 숨진 유가족 모임인 유가협 회원의 대다수가 다른 종교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불교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또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대응에서도 우리 불교는 같은 불교 신자인 이들에 대한 지원에서 카톨릭 교단보다 미흡하였거니와, 카톨릭 교단의 그때의 기민한 대응과 그뒤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헌신적인 기여로 천주교인이 크게 늘었다는 것도 우리가 기억해야만 할 터입니다.
현재 우리 불교의 인권사업은 다만 몇몇 의식있는 대중의 원력으로만 운영되는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여 재정이나 인력 구성 등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권사업이 좀더 활발하게 진행되려면 종단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사부대중의 열렬한 참여가 필요합니다.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걸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주는 인권불사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시대의 책무이자 신성한 사명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