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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의 미륵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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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남주 1992년 04월 122호
세계문학에 불후의 업적을 남겼던 작가들은 하나같이 문학예술의 토대를 생활에 두었다. \"시적인 내용은 생활의 내용과 다르지 않다\" 라고 한 독일의 시인 괴테가 그러했고,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위대한 문학은 그 소재를 일하는 사람들의 소박한 삶 속에서 찾고 그것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톨스토이와 같은 나라의 작가인, 막심 고리끼는 자기의 작품이 독자에게 감명을 주었다면 그것은 자기가 노동할 능력이 있고 노동을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하면서 작가로서 자기는 경기장의 화려한 경주마가 아니고 무거운 짐을 싣고 힘겹게 언덕받이 길을 오르는 짐마라고 비유했다. 또 괴테와 나란히 독일 문학의 거장인 하이네 같은 시인은 문학예술이 생활의 기반 위에 서야 제 힘을 발휘한다면서 문학과 생활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득력있게 표현했다.
\"거인 안테우스는 그의 발이 어머니인 대지에 닿아 있을 동안에는 무적의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헤라클레스가 그를 들어올리자마자 그 힘을 잃고 말았다. 시인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현실의 대지를 떠나지 않는 한 막강한 힘을 내지만 공상에 빠져서 이리저리 푸른 하늘을 떠돌아다닌다면 바로 그 순간에 무력해지고 말 것이다.\"
문학에 대한 이런 생각은 외국의 작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들은 하나같이 그들 문학의 뿌리를 생활의 터전인 노동의 대지에 내렸다. 멀리는 김소월과 한용운 같은 시인이 그러했고 김유정과 이기영같은 소설가가 그러했다. 가까이는 황석영, 방현석 같은 소설가가 그러했고, 고은, 신경림 같은 시인이 그러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의 내용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상황과 결부시켜서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특히 시집 「농무」의 작가인 신경림 시인은 먹고 입고 살기 위해서 힘겹게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소박하고 단순 명쾌하게 시적으로 그리는 시인의 대표적인 보기일 것이다. 그가 시집 「길」후기에서 한 말을 여기에 옮겨보자.
\"자잘한 삶의 결, 삶의 얼룩은 다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시의 값은 오히려 본질적으로 작고 하찮은 것, 못나고 힘없는 것, 보잘것없는 것들을 돌보고 감싸안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낮고 외로운 자리에 함께 서고, 나아가서 그것들 속의 하나가 되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또 그것이 시의 참길은 아닐까.\"
필자가 이렇게 문학과 생활의 관계를 말한 것은, 최근에 전남 화순군에 있는 운주사의 불상을 보고 느꼈던 필자의 소감을 쓰기 위해서이다. 필자는 문학과 마찬가지로 예술작품의 위대함도 생활에 있다는 것을 그곳의 버려진 불상들에서 새삼스럽게 발견했던 것이다.
필자가 미륵신앙의 성지라고 일컬어지는 운주사(雲舟寺 또는 雲住寺)에 간 것은 지난해 정초였다. 퇴락한 절을 중심으로 위와 양 옆으로는 야트막한 구릉이 잠을 자듯 누워 있었고 계곡을 끼고 절로 이어지는 비좁고 구불구불한 황토길의 솔밭 사이에는 잔설이 녹지 않고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절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계곡 양 켠의 논다랑과 밭고랑 그리고 산허리에 온갖 모양의 불상이 산재해 있었는데 나는 내가 어린 시절에 겪고는 했던 마을사람들의 넋에 에워싸여 있지 않은가 하는 착각을 받았다. 돌을 아무렇게 쪼아 놓은 듯한 그 불상들은 한여름에 뙤약볕을 등에 받으며 김을 매는 이웃집 아낙을 연상하게 했고, 들일을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가난한 농부의 모습과 먹고 사는 세상살이에 지쳐 어딘가 멀리 떠났다가 이제는 다시 돌아와 고향에 묻힌 노파의 주름잡힌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정말이지 아무렇게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 온갖 형상의 미륵불들은 농경사회 민중들의 생활의 모습 그대로였다. 누구나 가까이 사귈 수 있고 금방 친해져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기록에 따르면 운주사가 자리잡고 있는 그 지역은 18세기 전라도 일대의 도망노비들과 유민들이 피해 살았던 삶의 터전이었다고 하나, 필자는 이 글에서 절과 미륵불의 얽힌 사연을 밝힐 생각은 없다. 필자의 관심은 온통 투박하고 순박한 그들 미륵불이 준 감동의 근원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필자도 제법 절 구경을 많이 한 셈이다. 그런데 유명하다는 큰절이나 심산유곡의 암자에 안치된 불상을 보고 필자가 감동을 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기껏해서 불상의 정교함과 크기에 잠시나마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고정시켰을 뿐이다. 도대체 필자는 그들 거대하고 화려하기까지 한 불상 앞에서 생활의 냄새를 맡는다거나 친근함을 느낀 적이 없다. 그들은 오히려 필자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먼 세상의 범접 못할 한갓 대상일 뿐이었고 필자에게 위안을 주기는커녕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비록 그들이 대자대비의 얼굴을 하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보잘 것 없고 비바람 눈보라에 시달려 아무 곳에나 쓰러져 있고 서 있고 누워 있고 앉아 있는 운주사 근처의 그들 미륵불들은 왜 필자의 가슴에 와 닿아 필자를 포근하게 감싸 주었을까. 왜 그들은 필자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자리잡고 앉아 따뜻하게 해주고, 언제고 가까이 사귈 수 있는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일까. 그것들이 삶의 터전인 논과 밭에 있었기 때문일까. 길가에 장승처럼 서서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 땅에 묻히기 위해 고향을 찾는 길손을 맞이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 모든 것이었는지도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 불상들이 필자의 가슴에 와서 심금을 울리고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들 하나하나가 생활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인 것이다. 인간이 노동에서 멀어지면 동물에 그만큼 가까워지는 법이다. 인간의 육체를 지탱해 주고 정신을 바르게 세우는 일차적인 요소는 먹고 살기 위해 생활자료를 획득하는 노동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고상한 사고도 물질의 한 형태인 인간의 육체를 떠나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하루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어떤 고승의 가르침이 오늘에 갖는 교훈은 예나 다름없다. 그것은 노동이야말로 깨달음의 출발점이고 과정이고 종착역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저 유명한 주문, \"아제 아제 바라 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도 중이 속세에 등을 돌리고 심산유곡을 찾아나선다는 뜻만은 아닐 터이다. 중생과 피와 땀을 나누어 흘리면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시련의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중생이 살아가는 문제로 시달림을 당할 때 그들과 더불어 고통을 같이하면서 극락을 꿈꾸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중생들 속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본디의 성불일 터이다. 한마디로 불교에서 일컫는 깨달음은 중생과 함께하는 노동의 질과, 노동하지 않고 먹고 사는 자들을 제거하는 싸움의 길에서만 얻어질 것이다. 바로 이런 중생과 중의 모습이 돌에 새겨졌기에 운주사의 불상들은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인간적인 친근감을 주었을 것이고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무한한 감응을 일으켰을 것이다.
문학예술은 바로 현실의 인간이 살아가는 모양을 그 객관성에 기초하여 재창조하는 것이다. 그 현실의 인간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좀더 인간다운 삶을 살기위해 노동하고 비인간적인 대상과 싸우는 바로 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