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舍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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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원택
1992년 04월 122호
그것은 참으로 신비였습니다. 크기는 좁쌀알만하고, 녹두알만하고, 팥알만하고, 빛깔은 남빛, 붉은빛, 검정빛 들로 가지가지였습니다. 저 같은 중생에게는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경전의 말씀과 같이 계戒, 정定, 혜慧의 삼학에 밝으신 큰스님을 다비하면 이렇게 사리를 남기신다더니, 정말 불교의 진리는 대단하구나!\" 하고 감격해 하였습니다. 그때가 스물다섯 해 전에 효봉 큰스님 사리친견법회가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리던 때였습니다. 저도 평범한 인간인지라 세월 따라 그 감격도 잊어버리고 덤벙거리며 살다가 무슨 인연인지 \"나도 도인이 되어 보자\"는 생각으로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엔가 큰스님의 가까운 도반께서 백련암으로 오셨습니다.
\"요새 도리사에서 부처님 진신사리가 나와서 사리친견법회가 열리고 있는데, 날마다 신도들이 구름같이 몰려들고 있어 나도 가 봤어. 크고 빛깔도 좋던데 나하고 같이 가 보자.\"
\"우리가 젊었을 때에 정진하면서 도리사에서 한두 철 지나지 않았어. 부처님사리라는 증거가 어디 있어. 괜히 속지 말어!\"
도반스님께서는 \"가자\" 하시고 큰스님께서는 \"속지 말라\" 하시다가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정말 도리사 사리친견법회가 대대적으로 성공하고부터, 온 나라의 고찰치고 불상의 복장을 헤집고 탱화의 복장을 헤집어 사리친견법회를 가지지 않는 사찰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또 요즘은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법회\'라 하여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으로 스님들이 드나들며 너도나도 사리를 가져와 법회를 여는 것이 무슨 큰 불사나 되는 듯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큰스님 말씀처럼 무슨 증거들이 있어서 부처님 진신사리라고 하는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존엄스러운 것은 존엄함 그대로, 신앙하여야 할 것은 신앙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인데도 말입니다.
지금 해인사에서는 그토록 해인사의 발전만을 오매불망하시던 자운당 성우 대종사 사리친견법회를 열고 있습니다. 홀연 우리의 곁을 떠나신 큰스님의 다비뒤에 사리가 출현하니 빛깔은 붉은 빛, 우유빛, 상아빛으로 영롱하며 크기는 잣알이나 해바라기 씨만한 것도 있고 콩알 만한 것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번 자운 노스님의 다비식에 소임을 맡아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저로서는 그동안 사리에 제 나름대로의 대한 막연한 짐작을 크게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리란 다비를 하는 고온 속에서 뼈와 살이 녹아 그 진액이 모이고 엉겨 결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운 노스님의 사리 출현 모습을 보니, 사리가 거의 모두 뼈 속에서 나오는데 특히 척추 마디마디에 박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막연한 상식을 뒤집는 사리 출현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거룩하고 장엄한 사리 의 출현 모습이었던지, 지금도 감격스럽기만 합니다. 해인사 대중 스님들의 감격은 저보다 더 컸으리라고 믿습니다.
옛날 조주스님은 입적하시면서 이렇게 유촉하셨습니다. \"나를 다비하고 나서 사리를 찾지 말라. 괜히 후세인들을 번거롭게 할 뿐이다.\" 또 어떤 스님은 도반의 사리를 수습하고 나서, \"살아서 내 질문에 대답도 옳게 못했는데 죽어서 나온 사리가 무슨 소용이냐?\" 하면서 사리를 문지르니 피고름으로 변해 버리더라는 말씀이 어록에 실려 있기도 합니다.
자운 노스님께서도 평소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내 죽은 뒤에 사리를 찾지 말라. 내 평생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니 사리는 없을 것이다.\"
자운 큰스님의 유촉은 당신의 겸양의 말씀으로 남고, 오늘 이렇게 후학들에게 경탄과 감격과 반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자운 큰스님의 이런 거룩한 모습을 대하고서 수도자라면 어느 누구인들 자기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제 자신 \"도인이 되어 보자는 생각으로 출가를 하였다\"고 서두에 말했지만, 자운 큰스님의 사리를 보면서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고, 처음의 결심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아 가고 있는 듯한 자신의모습에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계단의 법주로서 평생을 오후불식하시며, 염불하시며, 틈나는 대로 절하시며 보내신 자운 큰스님의 수행의 삶이, 사리의 출현으로 더욱 어리석은 저희들에게 뼈속 깊이 와 닿는 무언의 말씀은 무엇으로도 그 공덕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큰스님의 사리는 오늘 이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수행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과 신앙하여야 할 불법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하게 하는 무상의 법문입니다.
성불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