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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국민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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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9년 05월 207호
국제통화기금 사태로 온 국민이 ‘6.25 이래 최대 국난’이라는 혹독한 위기를 넘긴 지난해 가을부터 겨울 사이 중생의 사표가 되어야 할 조계종은 한바탕 활극으로 세계의 조롱을 샀다. 그리고 나서 첫 부처님 오신날을 맞는다. 조계종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부중의 교단임을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번 부처님 오신날이 갖는 의미는 명확하다. 지난날 경제 사정으로 고통 받는 국민에게 기쁨을 주지는 못할망정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잘못을 뉘우치고 조계종의 ‘실제’ 모습을 보여 줄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 때쯤이면 모든 언론매체는 불교계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한다. 매스컴들도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일을 이 때만큼은 불교에 관한 내용이라면 눈에 띄게 다룬다. 이를 잘 이용하면 이번 부처님 오신 날을 계기로 종단의 달라진 모습을 국민에게 알리고 추락한 위상을 높일 수 있다.
홍보는 없는 것을 거짓으로 꾸며 만들거나 침소봉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여러 요소 중에서 특별히 강조할 만한 것을 중점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홍보는 또 알리는 사람의 의도뿐만 아니라 알려고 하는 사람 곧 소비자의 구미도 고려해야 한다. 시장에 비유하면 조계종단은 생산자인 동시에 판매자이며 국민은 소비자이며 언론은 광고대행자이다. 물건을 팔려면 소비자가 흥미를 느낄 만한 것을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것이 홍보의 기본이다. 곧 상품성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조계종의 생산자는 소비자가 가지고 싶어 하는 상품은 만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지곰 왜 물건을 팔아야 하는 지 등에 관한 아무런 준비가 없다. 생산과 판매의 주체는 지난 종단 사태에 개입했으며 지금도 종단을 이끌고 있는 총무원, 중앙종회 등 중앙 종무기관의 종단 지도자 스님들이다. 종단 사태가 마무리된 지 백일이 넘었는데 그 동안 종단의 지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한일은 ‘승리’의 과실을 분배하고 유지하는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앙종무기관의 부장과 국장, 주요 사찰의 주지 인사와 관련된 것이다. 총무원 새 집행부가 들어선 뒤 주요 직할 사암의 주지 임기가 언제 끝나는지를 알려고 많은 스님이 혈안이 됐다든지, 수도권의 모 사찰을 차지하려고 또는 지키려고 총무원에 진정서가 들어가고 비방 문서가 작성되기도 했다는 사실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마저 안겨 준다.
조계종의 각 부분을 대표하고 학식이나 수행력에서 그나마 나은 스님들만 모였다는 중앙종회의원들 대부분이 관심을 보인 것은 몇개의 파별로 나뉘어 서로를 견제한 것이었다. 지난 종단사태를 승리로 이끌었고 가장 강력하다는 평을 받는 한 조직은 이른바 알짜 사찰과 종단 주요 보직을 얻는 대 더 심혈을 기울였다는 소식이 종단 주변에 파다하게 퍼져 분노와 함께 지난해에 입은 상처의 깊이를 더하였다. 중앙종회는 또 종단사태 뒤 3월에 결산 종회를 합쳐 몇 번의 종회를 열었는데, 집행부 감시말고는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으며 폐회 중에는 자파의 회원을 늘리고 이들이 좋은 사찰의 주지로 갈 수 있게 힘을 쓰거나 상대편 의원이나 그에 동조하는 스님, 재가자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온갖 음해성 소문이 횡행하면서 종단 주변을 어지럽히고 있다고도 한다. 분열과 반목의 혼란 속에서도 유일하게 일치된 관심사가 있다면 지난 종단 사태의 한 축이던 이른바 정화개혁회의 스님들을 징계하는 것인데, 이마저도 이런저런 이해 관계에 얽힌 로비가 난무한다는 소식이다.
종단과 불교전체의 이익보다는 나와 파벌의 이익을 우선시하다 보니 비리와 무원칙이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스님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육제도를 획기적으로 정비하는 등의 종단 내부사업도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지만, 교육원 주최로 토론회가 한 차례 열렸다는 소식을 끝으로 더 이상 승가 교육과 관련된 내용도 없다. 총무원을 비롯 3원에서 새해 업무 계획을 발표했지만 그 때는 조계종에 대한 여론이 워낙 나빠 일반 언론의 관심도 끌지 못했고 내용도 눈에 띨 만한 것이 많지 않았다.
종단지도부의 이런 모습은 소비자들의 흥미는 고사하고 비난만 살 뿐이다. 소비자. 곧 국민은 불교가 단발성 ‘베풂’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잘못된 틀과 의식을 고치는 데 앞장서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있거나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종교계에 거는 기대가 각별하다.
그런 기대에 합치되는 실천이 없지는 않다. 그 하나가 실상사 귀농학교에서 벌이고 있는 운동이다. 도시 실직자들이 농촌으로 돌아가 사는 방식을 익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운동의 본질은 덜 먹고 덜 쓰자는 의식 개혁 운동이다. 자본주의식 생산과 소비 방식이 갖는 계급과 지역의 불균형을 시정하고, 환경 재앙을 막으려면 덜 먹고 덜 쓰는 길밖에 없다는 데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부처님의 무소유, 소욕지족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운동이 실상사라는 한사찰의 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중앙종회에서 발의하고 총무원에서 적극적으로 시행한다면, 세계는 또다시, 그러나 과거와는 전혀 다른 관심을 갖고 한국 불교를 주목할 것이다.
그 밖에 불교계가 현재 관심조차 보이지 않지만 뒤늦게나마 서둘러야 할 일들이 있다. 하나는 사설 교도소 설립에 관한 것이다. 지금 정부의 신자유주의 이념에 충실한 이 사설 교도소는 현재 기독교 한기총을 비롯하여 서너 군데에서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데, 늦어도 내년 초에는 계약을 하고 내년 중반부터는 건축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기총이 관심을 갖는 까닭은 종교 교도소 설립 목적 때문이다. 종교 교도소 설립은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며, 한기총 현 집행부도 이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어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다. 곧, 기독교 신자 법조인, 법학 교수를 주축으로 정부와는 별도로 이미 관련 법안을 만들었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이 통과되도록 정부에 갖은 압력을 넣고 있다. 정부는 토지가 많은 불교계가 참가한다면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사설 교도소를 설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하나는 비영리조직(NPO) 법안에 관한 것이다. 민감의 비영리조직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이 법안은 지난해 3월 일본 중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우리나라도 관심을 갖게 됐다. 임의 단체로 있는 민간 단체에 법인자격을 부여하고 그 활동을 돕는다는 내용의 이 법안에 대해서도 기독교 관련 단체에서 재빠르게 법안통과를 위해 움직이고 있으며, 지금 법제처에서 법안 초안을 작성하였다고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의원 입법으로 국회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남북통일 문제, 십조원에 이르는 실업기금에 대한 민간의 감시 운동 둥 종단지도부에서 심혈을 기울일 사항은 참으로 많다.
그러나 종단지도부는 재소자들을 교화할 방법으로 사설 교도소 활용 방안에 대해 고민한다든지 ‘제3의 기둥’으로 불리는 민간 시민 운동에 대해 토론하는 일 따위는 아랑곳없이, 본사 주지와 총무원 부장들이 중앙총회의원을 겸직할 것인지 말 것인지, 아니면 날로 커지고 있는 재가 종무원들의 위력을 꺾으려면 종헌을 어떻게 개정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 따위에 관해서만 고민하고 논쟁하고 있다. 중앙종회와 총무원에서 위에서 말한 이런 일들을 주제로 회의를 열고 위원회를 구성해서 연구하고 토론한다면, 굳이 따로 홍보할 필요도 없고, 부처님 오신날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별 내용도 없는 것을 가지고 언론에서 떠들어 불자들이 외려 얼굴을 붉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달을 지켜보니, 앞으로 4년 뒤의 종단 운명도 94년과 98년에 이어 순탄치 않으리라는 암울한 전망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