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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알고 일본을 극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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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유지호 1992년 03월 121호
부각되는 정신대 문제
일제시대의 정신대(종군위안부)문제가 한일간의 현안으로 크게 떠올랐다.
작년 7월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 문제는 일반인의 관심권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또 작년말부터 최근까지 관계자의 줄잇는 증언과 관계 자료의 발굴로 그 때의 처참했던 정신대의 실태와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도 밝혀지게 되었다.
\"일본군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역으로 진출할 때면 반드시 조선인 위안부를 데리고 갔다. 다시 말해서 일본군이 있는 곳에는 꼭 조센삐가 있었다는 말이다. 병이 나서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된 여자는 사살하여 우물속에 버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들은 개나 고양이보다 못한 처우를 받아야 했다.\"(신동아, 92년 3월호, p186에서 인용.)
당시 중국에 파견되었던 한 일본 육군 병사(지금 75세)의 증언이다.
알본 정부는 그동안 정신대 문제는 민간인 업자가 저지른 일로써 정부가 개입했다는 자료를 발견할 수가 없다며 발뺌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다가 지난 1월 10일 일본군의 종군 위안부의 감독과 통제 사실을 보여 주는 「육지밀대일지」가 발견됨으로써 일본 정부는 \"당시 군이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며 처음으로 종군위안부의 문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면서도 \"본인의 동의에 따른 군부의 소행\"이라며 정부의 책임만큼은 끝까지 부정하였다. 또한 지난 1월16일에 한국을 방문한 미야자와 수상도 정신대 문제에 대하여 사과는 하였지만, 정부 차원의 범행이라는 점만은 시인하지 않고 진상 조사를 막연하게 약속하는 데에 그쳤다.
그런데 2월 6일과 7일 한국 여성의 정신대 강제 동원은 일본 국왕이 재가하여 공포한 칙령에 근거하여 전시 내각이 총괄 지휘한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관계 법령과 문서가 일본과 한국에서 연이어 발견되었다. 도조 히데키 수상 겸 육군대신(41년부터 44년까지 집권)의 비밀 전보와 일왕이 재가한 칙령 제 519호「여자정신근로령」이 그것이다.
일본의 배상 책임
이로써 일본정부의 배상책임은 확실해졌다. 그러나 이 문서가 발견되자마자 일본 정부는 \'남북한 우선 공식조사\'만을 발표하였을 뿐이다. 그동안 정신대 피해 보상 문제 제기에 대하여 일본 정부는 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보상은 끝났다고 변함없이 주장해 왔다. 미야자와 수상은 지난번 한국을 방문하여 정신대 문제에 대하여 \"참으로 가슴아픈 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하루빨리 진상을 규명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하였다. 이 발언은 \"불행했던 과거는 유감으로 생각한다(히로히토 전일왕)\" \"통석의 염(아키히토 일왕)\" 등의 표현에 비하여 다소 진전된 내용이라는 평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는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의 민간단체의 반일 시위가 매우 격렬하였고 정신대 관련 문서의 발견으로 전체적으로 일본 규탄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던 때였다. 그때의 시위로 한 노인이 숨지기까지 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미야자와의 발언은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 일시적 대응책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숨겨진 뜻에서 나온 언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같은 평가는 미야자와 수상이 한국을 방문하고 일본으로 돌아간 날, 가토 고이치 일본 관방장관의 발언을 통하여 사실임을 입증하였다. 가토는 \"일본정부가 지난 65년 일한기본조약 체결로 한국인 종군 위안부 문제가 일단락되었다\"며 \"어떤 보상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던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양국간의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였다. 그리고「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 해결과 경제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던 것이다.
이때 일본정부는 독립축하금이란 명목으로 3억 달러, 장기차관으로 2억 달러, 민간 상업 차관으로 3억 달러 등 총 8억 달러를 한국에 지불하였다. 이가운데 차관 5억 달러는 정부가 국제 평균 이자율보다 높은 이자를 지불하면서 모두 상환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실제 배상액은 독립 축하금 3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이 협정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거론하지 않더라도 일본 정부는 정신대 관련 피해자는 물론 한국인 강제 징집 및 징용자, 일백만 명의 희생자와 원폭 피해자 그리고 사할린 미귀환자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민의 일치된 생각이다.
사실 일본은 아직까지 일제 36년간의 침략에 대하여 공식적이면서도 진정한 사죄는 한 마디도 없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하물며 이에 따른 적절한 보상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65년의 청구권 협정 때에도 박정희 정권의 일부 집권층을 빼고는 야당과 전국민이 강력히 반대했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 협상 때는 정신대 문제가 거론도 되지 못하였다. 일본 정부가 강력히 부인했기 때문이다. 당시 협상을 주도하였던 김종필씨는 \"60년대초 협상에서 정신대 등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정신대 관련 자료와 같이 조사되거나 파악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김씨를 비롯한 당시 정부에 대한 비판은 뒤에 다루더라도 어쨌거나 이 협정이 불완전한 것이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각성해야 할 정부의 태도
일본은 42년부터 45년 8월까지 약 삼 년 반 동안 필리핀에 저지른 죄가를 갚기 위하여 3억 달러의 배상금과 2억 달러의 정부 차관, 2억 달러의 민간 상업 차관을 주었다.
2차대전 때 육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독일은 52년 이스라엘에 34억 5천만 마르크(20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였으며, 그 뒤에 생존 유태인과 사망자 가족들에게 3조 1백 35억 마르크를 단계적으로 지급하였다.
독일은 이러한 물질적 보상뿐만 아니라 70년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하였을때 당시 유태인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의 눈물을 흘렸다. 바이츠제커 대통령도 91년 4월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을 때 야드바셈(희생자 기념관)에 들러 독일과 독일 국민을 대표하여 사죄하였다.
전쟁의 승리자 미국도 2차 대전중 일본계 미국인 강제 억류와 관련하여 육만 명의 당사자들에게 심심한 사과와 함께 일인당 2만 달러씩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캐나다도 일만이천 명에게 일인당 2만 1천 캐나다달러를 지급하였다. 그밖에도 부시 미국대통령은 90년 10월 \"금전적 보상과 사과의 말만으로 지난날에 일본계 시민에게 행하여진 비인도적인 행위를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다\"며, \"이에 대하여 사죄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다른 나라가 행한 국제적 관례에 비추어 볼 때에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태도는 결코 지나칠 수 없다는 게 우리 모두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을 상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매우 미온적이다. 그동안 정신대 문제 등에 대하여 공식적인 거론이 없었으며 최근 현안으로 떠오른 뒤의 조처도 매우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대책위를 두고 각 동면사무소에서 피해 사례를 접수한다는 게 고작이니 말이다.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것과는 반대로 지난 1월 14일 어느 양심적인 일본인에 의하여 서울 영희국민학교 학적부를 통하여 알려진 국민학생 정신대 차출의 충격에 대해서도 학적부 공개 불가의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또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일본 수상 방한에 즈음하여 일본 규탄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한 노인의 죽음까지 몰고 오는 사태가 일어났다.
정신대 문제를 유엔 인권위에 상정하여 일본의 책임을 촉구하는 국제 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지난 2월 12일 미국으로 떠난 이효재(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공동대표)씨는 \"정부로부터 최소한의 측면 지원이나 현지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최소한의 정보조차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을 알고 일본을 극복하자
65년의 한일협정을 개정하라는 여론이 비등한 지금에 이르러서 이 조약 추진의 핵심 인사인 김종필씨는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자신의 지분이 침해당하자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는 기사는 있어도 지난날을 반성하고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하여 무언가 하고 있다는 기사는 어디에도 없다.
김종필 씨뿐만 아니라 정부 여당의 모든 인사와 기관은 총선과 대선에서 다시 다수 의석을 차지하여 권력잡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전국을 돌며 미래의 전망과 안정을 제시하지만 정신대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하여 노심초사하는 언행은 전혀 없다. 일생을 이 문제 때문에 고통받고 설움받고 응어리졌지만 당시의 박정희 정권이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하여 대다수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협정을 강제 체결하였듯이 이제 그 후예들인 민자당 정권에 의하여 외면되어지고 있는 역사를 보면 씁쓸함을 달랠 길이 없다.
그렇다고 정부만 한탄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몰염치한 일본만 탓할 수도 없다. 최근 일본의 월간 유력지 「문예춘추文藝春秋」와 그의 자매지「제군諸君」은 대담과 컬럼을 통하여 \"사죄할수록 나빠지는 일한 관계\"와 \"종군위안부인가 북의 핵문제인가\"를 통하여 일본 지식인들의 한일과거사에 대한 견해와 지금의 대한관對韓觀을 피력하였다. 소위 그동안 지한파知韓派니 친한파親韓派로 거론되던 이들은 최근 정신대 문제와 관련한 한국민의 반응을 맹렬히 비난한 것이다. 꼴같지 않은 이들의 태도에는 언급하고 싶지 않으며 다만 우리 불교도와 국민의 각성이 요구됨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제 일본은 경제 대국에서 그에 걸맞는 정치 군사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또다시 대동아 공영화 건설을 향하여 박차를 가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다 일본이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 된 현실에서 다시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일본을 경계하고 일본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