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무용 전각마당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심무용 전각마당 - 심무용
1992년 03월 121호
다섯 이랑쯤은 대나무를 심고
다섯 이랑쯤은 채소를 가꾸고
한나절은 책을 읽고
한나절은 고요히 앉았다.
보리밭 이랑 사이로 찾아오는 봄은 푸르름입니다. 언땅이 녹기도 전에 밭이랑 사이엔 흙향기가 가득합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흙냄새가 구수해진다고 합니다만 메마른 요즈음 일상에서는 더욱 그 향기가 그리워집니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일진대, 흙을 잃어버린 지금 세대는 삶을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신다가 버린 농구화 찾아 신고 서리 녹아 들뜬 보리밭 밟는 일도, 봄비 지나간 논두렁 추스려 못자리를 만드는 일도, 봄의 문턱에서 우리가 새로이 시작하는 즐거운 노동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잊어버린 우리의 노동입니다. 대신에 기계의 금속성 소음과 소비와 향락의 아우성이 우리의 삶을 피곤에 지쳐 돌아눕게 합니다. 이제 우리의 이 파괴적인 문명도, 끝없는 가속도로 앞만 보고 치닫는 이 모진 삶도 휴식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잊어버린 흙냄새와 투박한 노동의 기쁨을 생각하면서 추사 김정희의 노래를 돌에 새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