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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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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산책 - 돈연 1992년 03월 121호
머리말
대장경의 바다에서 아함경은 진흙속의 보석처럼 드러나지를 않고 있다. 명공名工의 손에서 다듬어지기를 기다리는 원석처럼, 부처님의 육성을 듣고자 하는 이에게 아함경은 가이없는 가능성의 자태를 간직한 채 서 있다. 아함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인간적인 부처님의 면모들이다. 이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한 때는 배척받고 소외당하기도 하였던 운명의 아함들은 서서히 역사적인 사실과 정신 문화의 맥락에서 이해되고 사랑받게 되었다. 그러기에 우리의 작업은 아직 더디고 미숙하고 게으르다는 지적이 없을 수 없다.
이글은 한역 사四 아함(장아함, 중아함, 증일아함, 잡아함) 가운데에서 잡아함을 대상으로 하여 엮어진다. 잡아함의 내용이 그렇게 설하여진 것은 아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낱낱의 경전들을 존재, 구도, 연기, 시, 생활들로 분류하고 거기서 중심되는 몇 개의 경전을 가려서 번역과 해설을 붙이는 방식을 택하였다. 존재와 구도와 연기의 편들은 이미 불교문학에 발표되었고, 몇 해가 흘러 지금 다시 \'잡아함의 시\'들을 쓰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불교도에게는 부처님이 무척이나 보고 싶은 분이다. 그분의 정열적인 구도의 모습과 온화하고 자애에 넘치는 성자로서의 위엄은 근본의 스승으로 모시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기에 대승불교에서는 추앙과 찬탄이 극심한 나머지 형이상학적이고 장엄한 부처님상으로 극대화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의 흐름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높이는 데에는 크게 기여했을지는 몰라도, 그분의 삶과 태도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적인 고뇌의 진실을 우리가 알게 하는 데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측면이 없지도 않았다.
잡아함에서 우리는 부처님의 다양한 설법을 통하여, 좀더 확실하게 사실에 접근하고, 미세한 관찰 능력을 끝까지 지키는 지속적이고 줄기찬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일초직립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와는 다른 성실하고 근면한 성자의 모습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두 소멸되고(滅盡)라든가, 남김없이(無餘)라든가 하는 선구禪句의 시발도 잡아함의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수없이 발견된다. 잡아함은 부처님의 진면목을 아무 꾸밈없이 보여주는 진실의 기록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암송자의 정진과 지혜에 따라 경전을 전하는 사실이 어 느정도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부가 기억되기도 했지만 일부분만 암송된 채 전승되기도 했을 것이다. 보기를 들면 사성제 가운데 고와 집만 설해졌거나, 고집도만 설해졌거나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십이인연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십이인연이 갖추어 설명된 곳과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빈번하게 교차한다. 물론 자주자주 법문을 들었던 제자들을 상대로 설법하실 경우 일부가 생략된 채 법문이 진행되었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리고 아함경은 부처님 설법만을 편집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 직접 가르침을 들었던 장로와 존자들의 말씀도 함께 실려 있다. 이런 경전은 부처님 입멸 뒤 약 삼백 년의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처님을 피부로 느끼며 살았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한 마디의 말씀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여 전하게 했던 선각자들의 태도는 \'사실을 말하는 부처님의 일관된 정신\'에 크게 영향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이 체험하셨던 깨달음의 세계, 거기에는 그때 인도 사회의 통념을 뛰어넘고 종교적인 희생 의식의 허구를 개혁하는 강도 높은 개혁 의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과 인간의 관계를 뚜렷이 구분하여 인간의 내재성을 크게 확대하고 삶 그자체를 남김없이 크게 살기 위해 정신의 극히 미세한 부분까지 쪼개어 나타냈다.
그런가 하면 생활의 잡다한 부분도 훌륭한 소재가 되어 경전 내용으로 등장하고 있다. 성스럽다는 것은 결코 모든 인간적 사실의 밖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잡아함은 그 때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에 비추어 볼 때 자연과학적인 무지라고 부를 수 있는 당시의 과학지식 때문에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신들과의 대화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잡아함의 무대는 지금으로부터 이천오백 년 전이다. 오늘날에는 서울과 부산 사이를 한 시간에 간다든가, 여성을 태운 로켓트가 달나라에 간다든가 하는 이야기처럼 그 때는 신 속에 인간이 있었고 인간 속에 신이 있었던 시대였다. 신을 떠나서는 육체도 정신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신을 부정하는 일은 오늘날 스포츠와 과학을 없애는 일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잡아함을 읽는 독자는 옛사람들의 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던 신들에 대한 마음을 살펴 읽을 필요가 있다.

잡아함의 시
가. 가타G th
잡아함에는 독립된 말씀들만 천삼백 육십이 개다. 십이 부(경전이 설해진 형태로 구분한 열두 가지 방법)에서 잡아함은 여시어·경·가타·게야가 가장 많고, 우다나·미증유법·아바나다는 드물게 또는 불완전한 형태로 보이며, 니다나·자타카·수기·우파데샤·방랑 등은 원형만 보인다.
가타는 응송應頌이라 번역되고, 운문으로 설해진 경을 말하지만 산문으로 설해진 경의 중간 또는 끝에 아름다운 시구로 묘한 뜻을 읊어 놓은 게송을 말하기도 한다. 이 응송은 매우 간결하다. 내용을 압축하여 아름다운 운율로 표현하기 때문에 문장이 단아할 뿐만 아니라 쉽고 짧아 외우기가 쉽다. 대승 경전의 거의 대부분에 응송 부분이 있다. 이것을 사구게四句偈라고도 하는데, 압축을 통하여 경전의 뜻을 더욱 잘 나타나게 하는 형식 가운데에 가장 발달한 문장 표현이다. 철학적인 내용의 방광(화엄경, 반야경 등)에서는 가타와 게야가 뒤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처님이 논의하고 문답하며 온갖 법의 내용을 명백히 하는 우파데샤와 문답의 형식으로 깊고 넓게 의미를 확대하는 이 응송에는 드물기는 하지만 문답의 게송이 등장하기도 한다.
경의 중간에
생활의 불
가정의 불
진리의 불
이 불의 공양이야말로
평온으로 가득한 즐거움

범죄없어 편안한 세상
지혜로움만이 그것을 만든다

법을 지키며 재물을 모아
공양 받을 곳에 공양하되
공양 받을 곳에 공양하니
하늘의 세계라 말할 수 있으리.
「잡아함 제93경」
경의 끝에
나 일찍이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삶과 죽음 섞었네
사성제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큰 괴로움 날로 깊었네

누구든 사성제를 깨달으라
큰 흐름의 바다를 끊고
생사를 영원히 벗어나서
다시는 태어나는 몸 받지 않으리.
「잡아함 제403경」
경의 중간에 문답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쉬라바스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코살라에 상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수레 오백 개로 함께 장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이 광야를 지나게 되었다. 광야에는 도둑 오백여 명이 숨어 있었다.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을 습격할 속셈이었다. 그때 광야에 천신이 있었다. 그 천신은 길가에 서서 이렇게 생각했다.
\"저 코살라 상인들에게 가서 의리義理에 대해서 물어보자. 만일 저 상인들이 내가 물었을 때 기쁘게 풀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 힘으로 그들을 도둑들로부터 벗어나서 편안히 갈 수 있도록 하리라. 만일 묻는 바에 흡족치 않으면 다른 천신처럼 내버려 두리라.\" 천신은 생각을 마치고 몸에 빛을 내어 상인들의 수레 야영지를 비추며 게송으로 말했다.

누가 잠에서 깨어났나
누가 다시 깨어난 잠인가.
누가 이 뜻을 풀 수 있는가
누가 나에게 말할 수 있는가

이 때 상인들 속에 우바새가 있었다. 부처님을 믿고, 법을 믿고, 스님들을 믿었다. 한마음 삼보를 향하고 삼보에 귀의하며, 삼보를 의심치 않았다. 사성제에서 의혹을 여의어 사성제를 깨닫고, 첫째가는 무간등과無間等果를 얻었다. 상인들과 함께 길벗이 되어 있었다. 저 우바새가 밤이 되어 무리의 뒤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하며 천신의 말을 생각했다.
십이인연을 역순으로 관찰했다. 이 일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있다. 이 일 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 일이 있다. 이를테면 무명을 연緣하여 행行, 행을 연하여 식識,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 명색을 연하여 육입六入, 육입을 연하여 촉觸, 촉을 연하여 수受, 수를 연하여 애愛, 애를 연하여 취取, 취를 연하여 유有, 유를 연하여 생生, 생을 연하여 노사老死 우비고뇌. 이렇게 큰 괴로움들이 쌓여 간다. 무명을 없애면 행도 없고, 행이 없으면 식도 없고, 식이 없으면 명색이 없고, 명색이 없으면 육입이 없고, 육입이 없으면 촉이 없고, 촉이 없으면 수가 없고, 수가 없으면 애가 없고, 애가 없으면 취가 없고, 취가 없으면 유가 없고, 유가 없으면 생이 없고, 생이 없으면 노사와 우비고뇌가 없다. 그렇다. 그렇다. 이 순수한 괴로움의 소멸이여! 이 우바새는 사유를 마치고 게송으로 말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났다네
내가 깨어난 잠이라오
내가 그 뜻을 알고 풀이하겠소
사람들이 기억하도록 말할 수 있소.

그 때 천신이 우바새에게 물었다.
\"어떻게 잠에서 깨어났소. 무엇이 깨어난 잠이요. 어떻게 뜻을 알 수 있었소. 어떻게 기억하도록 말할 수 있소.\" 그 때 우바새는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욕망과 번뇌를 다 여읜
해탈, 바른 지혜의 마음
그는 아랴한

그는 깨달은 사람
나는 거기 잠든 사람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
괴로움도 인연의 모임
이 모든 괴로움 남김없이 없애는 길 알지 못하네

괴로움이 다한 곳
바르고 평등한 길 모르네

그들은 늘 잠들어 있네
나는 거기에서 깨어 있다네

이것이 잠에서 깨어남
이것이 깨어난 잠
이렇게 알고 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네

그때 천신은 게송으로 말했다.

잠에서 깨어남도 좋고
깨어난 잠도 좋다
뜻을 잘 아니 좋고
기억하도록 말해 주니 좋다
오래 헤어져 지금 본다
모든 형제들이여 오라
그대 은혜의 힘 때문에
모든 상인들 함께
도둑의 겁탈 벗어나
편안한 길을 가리라

이와 같다. 여러 비구들이여. 저 코살라 늪지대에서 상인들이 무사히 광야를 빠져나간 것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받들었다.
「잡아함 제590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