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의 의미와 연기론적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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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윤세원
1992년 03월 121호
글 머리에
Peter Laslett은 이미 삼십육 년 전에 「철학, 정치 그리고 사회」라는 그의 저서 서론에서 \'정치 철학은 죽었다\'고 선언하였다. 그로부터 오년 뒤 Daniel Bell은 미국 사회 내에서 진행되고 있던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와 그 결과로 사회 구조에 반영된-비록 미미한 것이었지만-사회주의적 요소를 보면서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하였지만, 세계는 한동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된 이데올로기의 양극 시대를 유지해 왔다. 정치 이데올로기가 특정한 정치·사회 철학을 기초로 성립된다는 점에서 이 두 사람의 주장은 일련의 관련성이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전인류를 광기에 가까운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철벽의 구조를 형성했던 전후의 세계 구조도 무상의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변화의 가식적이면서도 선구적인 역할은 이데올로기적 대결의 종식과 세계 질서의 재편이라는 정치적 분야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고, 이 변화는 시기적으로 세기말과 겹치면서 전환기라는 사실이 더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철학적 관련성
사회주의는, 경제적 복지를 가장 낙관적으로 약속한 경제적 자유주의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덕분에 서양 정치사의 전면에 나타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 기회를 계기로 보편성을 획득한 정치 이데올로기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자유라는 이념을 개인의 경제 활동에 최대한 반영시키는 경제 체제와 이념으로써 사유 재산 제도, 자유 시장 제도 그리고 자유 경쟁이라는 기본 구조를 가진다. 실제로 자유 시장 제도 밑에서 인류의 총체적인 생산량은 전례없는 수준으로 증대된 것이 사실이지만, 증대된 부는 생산 활동에 참여한 전체의 경제적 복지가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라는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결과적으로 자유 시장 제도는 생산 과정에 노동력을 제공한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비인간적인 수준의 삶을 강요한 원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믿고 의지했던 개인의 이성은 자신의 탐욕을 추구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하였고, \'보이지 않는 손\'은 대량 실업을 유발하고 대중을 빈곤의 수렁으로 몰고 가는 원흉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인간애라는 바탕에서 볼 때 일단의 자유주의 추종자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고, 사회주의 운동은 이러한 실망에 대한 대안으로 출발하였다. 서양 사상사의 전면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뒤안길에서만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해 온 원시적 형태의 사회주의적인 이념이 새롭게 주의를 끌 수 있는 토양을 만난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자유 경제의 피할 수 없는 결과로 인식되자, 평등의 주창자들은 자연히 자유 시장 그 자체가 인류의 진보와 복지를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자들은 그 대부분이 인류의 진보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만약 인간에게 태어날 때부터 그들이 가진 창조적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허락해 준다면, 인간이 이룩할 수 있는 것에는 거의 한계가 없다고 확신하였고, 인간의 문제는 스스로의 이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계몽주의의 후예들이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아 실현을 가로막는 주된 장애물은 신분 제도라는 봉건적인 불평등, 곧 법적이고 정치적인 불평등이라고 보고, 사회주의자들은 경제적인 불평등을 주된 원인으로 보았다. 사회주의 운동의 핵심은 바로 이 불평등의 원인을 제공하는 경제 구조를 제거하자는 것이고, 이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실험을 하였지만, 철저한 이데올로기로 완숙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리멸렬한 사회주의 이념과 운동을 효율적인 이데올로기로 변신시키는 데 결과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바로 칼 마르크스였다.
문제의 본질
철학의 목표가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고, 정치의 목표가 개개 구성원들의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라면, 정치철학의 목표는 지혜를 바탕으로 한 정치 과정을 통하여 자유와 평등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서구적 자유 방식에 내재된 원자론적 인간관은 자유와 평등이 도저히 동시에 성취될 수 없는 양자택일의 논리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철학적 기초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데에도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로 선택한 자유주의와 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선택한 사회주의가 서로 갈등·대립하게 된 문제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밖으로 드러난 표피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 무슨 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양철학에 원천적으로 내재된 결함과 그것의 연속적인 오류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도출시킨 철학적 자유주의의 기저에는 원자론적이고 무관계주의로 특정지어지는 인간관이 도사리고 있고, 이들은 이러한 인간관의 바탕 위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리 설정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같은 모태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생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재산권의 보호를 가장 중요한 권리로 설정한 John Loke의 지적 후예들인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신념인 자유를 경제활동에 적용하여 시장에서 자유롭게 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로 정착시켰기 때문에 경제 활동의 평가는 과정상의 인간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소유라는 결과만을 문제삼는 비인간적인 현상으로 귀착된 것이다. 소유를 모든 것의 가치 척도로 삼을 수밖에 없는 내재적 요인을 배태하고 출발한 자본주의는 국내적으로는 전국토의 시장화와 전국민의 상인화 현상을 보편화시켰고, 국제적으로는 치열한 국가 이기주의를 만연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내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국가간의 관계에도 연장시켜 놓았던 것이다. 좀더 안락하고 풍요한 인간의 삶과 인류의 보편적인 진보를 담보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로 선택되었던 자유의 현실적 결과는 경제적인 불평등이라는 또 다른 장애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편, 평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걸고 출발한 사회주의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와 비인간적인 상황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자본주의는 물론 사회주의도 출발에서부터 실패의 요인을 안고 있었지만, 두 이데올로기의 치열한 대결이 양자의 생명을 오히려 연장시켜 주었다. 양 이데올로기의 대결과 실패는 그들의 공통적인 기초인 철학적 자유주의라는 근본적으로 잘못 설정된 세계관 내지 인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온 이념의 투쟁에서 모든 도전을 극복한 자유주의의 완벽한 승리로 인하여 더 이상 자유주의에 도전할 이념이 없음을 선언한 Francis Fukuyama의 「역사의 종언」은 동구의 몰락과 소연방의 해체 및 개방으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논지로 보이지만 사실은 잘못된 관점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아직도 원점에 그대로 남아 있다. 원자론적이고 무관계적이며 이원론적인 인간관의 토대 위에서 자유는 강조하면 할수록 구성원간의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고, 평등은 강조할수록 인간의 개성과 개인의 창의력을 말살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의 갈등 구조,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연기론적 사회관으로 본 이데올로기의 붕괴와 전환기의 의미
연기론적 사회관이란 사회와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설명은 물론 처방에까지 무상의 세계관과 무아의 인간관 그리고 중도의 실천을 철저히 적용하는 사회관을 말한다. 연기론적 사회관은 3차원적 공간에 시간의 흐름이라는 한 차원이 더해진 4차원적 의미 구조를 견지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회관은 일체의 존재와 사회 현상들을 정태적으로 보는 시각이 아니라 무한 변수들이 이합집산하고, 성·주·괴·멸하는 끊임없는 관계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 사회관은 사회 내의 어느 분야에 대해서도 상수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으며, 또한 불변의 실체를 가정하지도 않는다. 오직 사회 내의 모든 것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하는 관계의 흐름만이 인정될 뿐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인류는 한 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과거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변화를 강요당하는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전환기란 대규모의 급속한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기존의 사고 방식과 삶의 기본틀이 붕괴되는 시기이다. 그러면 급속한 변화는 왜 일어나며, 그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급속한 변화는 한 특정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에게 세계관을 제공하고 가치관을 형성시킨 철학적 기반에 내재된 결함이 드러나 현실이 용인하기 어려울 정도의 괴리가 생길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결함은 더 이상 기존의 철학으로 인간과 당시의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을 경우나, 현실적인 삶에서 파생되는 당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출연했을 때 나타난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정착되기 전인 전환기는 각종 사회고가 만연하는 불안과 고통의 시대가 된다.
인류는 당면한 각각의 시대마다 그 당시의 상황과 조건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시대의 시대고를 해결할 수 있는 지배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배적인 철학은 바로 그 시대, 그 장소에서의 중도였다. 그러나 그 중도를 성립시킨 모든 조건과 상황은 무상의 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이 특정 시대의 지배적인 철학이 계속해서 중도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시간의 흐름과 조건의 변화에 상응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운 중도를 창출해 갈 수 있는 자동적인 자기 변화의 원리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지배적인 철학은 적용 공간이 달라지거나 변화가 누적된 어느 시기에 중도로써의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고, 이 때를 전환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기능을 상실한 과거의 중도는 현재의 사회고를 해결할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중도를 창출해 내는 일에 방해물이 된다. 그것은 이미 중도가 아니라 하나의 시대적인 극단인 것이다. 따라서 전환기란 그 사회를 정초했던 지배적인 철학의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요, 사회가 구성원들의 사회고를 최소화할 수 있는 중도의 실천론을 상실한 시대이며, 새질서를 창출할 새로운 철학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새로운 중도의 조건
이데올로기적 대결의 종식과 동구의 몰락, 소련 공산당 및 연방의 해체와 개방 등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성취한 문제의 해결에서 온 결과가 아니다. 자기 변신을 거듭해 온 자본주의는 자비의 윤리관 결핍에서 오는 그 역기능이 따름에도 아직은 어느만큼의 유용성이 있어 보이지만, 제도화된 사회주의의 실패는 경쟁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자기 변신을 거부한 경직성 때문에 용도 폐기된 것이다. 또한 양자의 기반이 된 철학은 이미 중도의 기능을 상실하여 인류의 장애를 암울하게 하는 각종의 현대적인 난제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새로운 중도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시대를 정초할 철학은 기존의 철학에 내재된 최소한 다음 세가지의 결함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는 인간과 세상을 주객, 자타, 유와 무, 창조와 피조, 물과 심 등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어야 하고, 둘째는 자기 원인적 단독자나 불변의 실체를 가정하지 않는 유기적 관계론이어야 하고, 셋째는 기계적 결정론이나 우연을 극복할 수 있는 논리 구조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기초위에서만이, 나의 자유가 남의 부자유로 전이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의 개념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고, 나의 소유가 타인의 소유에 대한 박탈로 전이되지 않고, 소유를 척도로 한 저차원의 평등 개념을 인간 가치의 본질적인 평등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철학은 무상의 세계관과 무아의 인간관 그리고 자비의 실천론을 가진 연기론 밖에는 없다. 문제는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너무 불교의 교리로만, 그리고 불교 교리를 설명하는 것으로만 협소하게 적용시켜 왔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불교의 진리가 아니라 본래의 진리인 이 가르침들을 과감하게 정치 사회 등의 인간사 전분야에 확대 적용시켜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매개 이론의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