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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윗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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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 정호승 1999년 05월 207호
나는 나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야산의 산 중턱 한가운데 자리잡은 조그마한 바윗돌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지신의 삶에 대해 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별빛들이 맑게 빛나는 밤이면 나는 나 자신이 별이 되어 빛난다고 생각했으며, 햇살들이 내 몸을 간지럽히는 아침이면 나는 나 자신이 햇살이 되어 빛난다고 생각했다.
어디 그뿐인가. 산수유가 핀 뒤 봄비라도 오는 날이면 나는 나 자신이 빗물어 되어 어디론가 흐른다고 생각했으며,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나 자신이 한 포기 풀잎이 되어 바람에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의 삶은 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해가 떠도 웃었고, 별이 떠도 기뻐했으며, 눈이 오거나 꽃이 피면 더욱 더 기뻐했다. 무엇 하나 슬픔으로 마음 아플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인 뒤부터 나는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늘 새소리와 이슬소리와 맑은 바람소리만 듣던 내 귀가 웬일로 사람의 말소리를 듣게 되었는지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이 돌을 아예 없애 버릴까”
“글쎄, 가끔 앉아 쉬면 더 좋을 것도 같아”
“그래도 밭을 가는데 걸리적거리잖야”
사람들이 하는 이 말을 듣고 놀라 가늘게 눈을 뜨고 조용히 주위를 살펴 보았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사는 이 곳은 나무들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숲 속이었다. 그런데 그 동안 어찌 된 일인지 숲은 밭이 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산 아래에다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고, 산의 나무들을 불태우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나 나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 놈을 치우지. 이 놈을 치우면 옥수수가 두 되는 더 나오겠다. 김매는 데도 힘들지 않고.”
두명의 사내가 자꾸 나를 쳐다보더니 나이가 좀더 틀어 뵈는 사내가 곡괭이로 나를 파내기 시작했다.
졸지에 나는 평화롭게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날 이대로 있게 해 줘요. 가끔 앉아 쉬면 되잖아요”하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파헤쳐 산 아래로 힘껏 굴려 버렸다. 나는 산 아래 사람들이 듬성듬성 집을 지어 놓은 골목 어귀 한 모퉁이에 처박혀 버렸다.
내가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는 저녁이었다. 하늘에는 막 샛별 이 떠올라 빛나고 있었다. 내 몸 군데군데에 상채기가 나 있었고, 더러 피가 흘렀다가 굳은 자국도 보였다.
나는 샛별을 바라보며 고요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 동안 숲속에 고요히 안주하며 산 삶이 잘못된 삶이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더욱 낮은 곳으로 내려온 삶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들떴다.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예전처럼 이슬이나 햇살들이 아니라 개들이었다. 개들이 처음 찾아와 킁킁 냄새를 맡더니 오줌을 누고 갔다. 어떤 때는 똥을 누고 갈 때도 있었다. 개들은 꼭 나를 찾아와 오줌을 누고 영역을 표시했다. 그 다음엔 동네 아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아이들도 개들처럼 오줌을 누거나 똥을 누고 갔다. 물론 낙서를 하거나 의자인양 편안하게 앉아 있을 때도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런 아이들이 무척 싫었다.
내 몸은 자꾸 더러워져 갔다. 내 몸은 개 오줌 냄새와 아이들 똥 냄새로 찌들어 갔다. 나는 개나 아이들에게 편안한 의자가 되어 주거나 재미있는 놀이감이 되어 주고는 싶었지만, 그들의 똥오줌 냄새로 찌들어가는 나 자신이 무척 싫었다.
그런 가운데 시간은 지나갔다. 나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개들은 번번이 나를 찾아와 한 쪽 다리를 번쩍 들고 오줌을 눔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표시했으며, 이이들도 꼭 내 뒤에 숨어 똥을 누고 가곤 했다. 가끔 소나기가 찾아와서 내 몸을 씻어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질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밤이면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별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마음의 평화와 고요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마음의 평화와 고요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이대로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덩이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괴로움은 단순히 괴로움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차차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점차 쓸모없는 천덕꾸러기 바윗돌이 되어 갔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던 개들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고, 아이들조차 이미 나를 잊은 지 오래였다. 그들이 나를 찾아와 똥오줌을 갈기고 가던 날들만 갈수록 더 그리웠다.
나는 외로웠다. 아무 데도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된 나 자신이 싫었다. 그것은 곧 내 존재의 고통이었다.
나는 누구라도 좋으니까 나를 찾아와 주기만을 바랐다. 발이 있다면 내가 개들을 찾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내가 누구를 찾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았다. 아침의 햇살도 이슬도, 밤하늘의 달빛도 별빛도 웬일인지 나를 비켜서 갔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나이 많은 큰스님 한 분이 무심히 내 앞을 지나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으음, 그놈 참 쓸만한 놈인걸.’
스님은 한참동안 나를 보시고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휑하니 잰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큰스님이 또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다른 젊은 스님 몇 분을 데리고 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떠냐? 이 돌이. 마침 대웅전에 마땅한 주춧돌 하나가 모자라서 애를 먹었는데, 대웅전에 쓰도록 부처님이 보내주신 것 같지 않느냐? 어서 이 돌을 옮겨갈 채비를 차려라”
젊은 스님들은 큰스님의 말씀대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원래 내가 살던 산중턱 맞은편 쪽으로 나를 옮겨 갔다. 그 곳엔 언제부터인지 절을 짓는 토목공사가 한창이었다. 나는 곧 대웅전을 받치는 주춧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주춧돌이 된 지 벌써 몇 백 년이 지났다. 나는 몇 백 년 동안이나 산사의 지붕을 받치고 있어도 조금도 무겁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내 존재의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