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시대, 한국의 위기와 불교계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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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종찬
1992년 03월 121호
\'변혁\'이라는 상황은 80, 90년대를 통틀어 전세계에 걸쳐 진행되는 엄연한 역사적인 실체이다. 더욱이 그 변혁은 90년대에 들어와서 좀더 근본적으로 사회 밑바닥에까지 구조의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인 조류와는 정반대로 더 한층 수구적인 보수주의가 강경 일변도로 버티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이렇듯이 세계적인 역사 변혁의 대조류를 역류하는 것은 80년대 초부터 국제 관계를 주도했던 강경 보수주의에 대한 지배 권력의 강렬한 집착이 한국 사회 전반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실증은 몇 가지 상징으로써 집약할 수 있다.
첫째는 동구와 소련에서의 대변혁을 두고 \'사회주의의 패배와 자본주의의 승리\'라는 도식을 적용시키는 것, 둘째는 공업 대국을 중심으로 야기되는 세계적인 경제 침체 현상에 대해서 끝까지 \'회복조짐\'이라는 선전을 거듭하는 것, 셋째는 걸프전을 위시한 지역분쟁을 통해 \'세계 최강국 미국(소위 팍스 아메리카)\'을 누누이 되풀이 하는 것, 넷째는 91년부터 뚜렷해지는 세계의 지역화 현상(EC의 정치 경제 통합체 발족과 동아시아 경제 블록 구축 기도, 미주 블록화 등)을 눈앞에 두고도 \'자유 무역, 개방, 블럭화 반대\'가 대외 정책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 등에서 쉽게 찾아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변화의 분명한 실체를 두고 벌어지는 진보 그룹의 기묘한 이데올로기의 영향이다. 다시 말해서 소련과 동구권의 변화를 두고 그간 벌여 온 이데올로기 공세, 곧 \'혼란은 몰락\'이라는 등식이 끼치는 절대적인 영향력이다.
현상적으로 보나 이론적으로 보나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로 시발점을 찾은 사회주의권의 변화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회복을 통한 생산성의 증대\'이다. 이미 83년부터(엄밀히 말해서 85년 고르바쵸프 정권 출범 이전부터 소련의 대변혁은 구체적으로 설계되었다. 그 정확한 시기는 83년 브레즈네프 사망 이후이다) 지금까지 십 년 가까운 기간 동안 실질 변화를 겪고 있고, 또 앞으로 20, 30년간은 더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소련 변혁(페레스트로이카 출범 당시의 설계도에는 2017년까지 변혁이 제시되었다)에서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중심명제는 현실로 확인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국가 조직의 골간인 당(공산당)과 연방 구조의 변혁까지를 동반하는 엄청나고 근본을 뒤흔드는 대변혁을 내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것도 스탈린 체제 이후 부분적인 개혁에 대한 실패 경험에서 그 해답이 찾아졌다.
다시 말해서 개혁은 결국 보수적인 관행에 의해서 좌절되고 만다는 경험이다. 이에 따라서 기존의 모든 것을 해체하고 모든 조직의 뿌리까지 뒤흔드는 대변혁이 소련에서 일어났고, 급기야는 사회주의권 전반에 정치 변동을 불러일으켰으며 마침내 국제 질서 전체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단 군축을 통한 냉전 체제의 종식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겉으로 드러난 국제 관계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과제가 정치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구조 일반은 물론 경제적 생산 관계를 위시한 전영역에 걸쳐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서 세계관 두 개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곧 \'민주화와 경제 개혁이 한꺼번에 추구될 수 있느냐\'의 여부를 둘러 싼 대립이다.
전통적으로 국가와 노조가 시장 경제에 개입하는 것이 정당시 되어온 유럽쪽의 사회적 시장 경제의 틀에서는 \'동시 추구 가능\'이라는 논리가 지배적이다. 반면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자유 시장 경제를 지고의 가치로 추구해 온 미국에서는 \'민주화와 경제 개혁의 동시 추구 자체는 성립될 수 없다\'는 입장이 분명히 제시되고 있다.
이 두 개념은 91년 이후 국제 갈등의 기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실험 무대는 소련의 대변혁이다. 소련은 현실적인 실험 대상에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식 시각으로 민주화와 경제 개혁의 동시 추구가 불가능하다면 당연히 \'경제 개혁 우선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이는 곧 애초부터 소련의개혁이 추구했던 대대적인 민주화 조치의 일시 정지라거나 후퇴를 의미하게 되고, 그것에 따라 개혁을 둘러싼 노선 갈등이 정치적인 권력 투쟁으로 전환된 것이 지난해 12월의 소련 사태이다. 이를 두고 서방 언론들이 \'옐친 마피아의 일 년 간에 걸친 조직적인 정치 권력 장악 기도가 저지른 쿠데타\'라고 규정한 근원이기도 하다.
이를 입증하듯 \'옐친 마피아\'는 그간의 개혁과정에서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는 \'비상대권\'을 내세워 민주화를 후퇴시키고, 경제 체제 개혁만을 강제 추진하여 결과적으로 대중의 조직적인 저항을 불러들이고 있다. 이는 곧, 서방의 언론들이 개혁이라는 이름보다 정치적 혼란으로 최근의 사태를 규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울러 지금 벌어지는 사태의 진단과 분석을 두고 서방세계가 양분되기 시작한 것은 중대한 변화이다.
2차대전이 끝난 뒤에 경제 체제와 경제 개발에 대해 같은 개념으로 묶여 있던 서방세계가 분열되기 시작했음은 90년대 세계 변혁의 핵심을 시사해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다 후발 국가군이었던 아시아 지역까지 가세하여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체인 아세안이 미국에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고, 이를 기화로 하여 일본은 아시아 경제 블록 구축의 중요 계기를 제공하며 탈미脫美에 앞장서고 있다.
특별히 유념해야 될 사실은 이것들이 단순한 국제 질서 개편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 관계는 물론 자국내의 사회, 정치, 경제 체제 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개념과 접근 방법들이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보수주의의 상징이던 일본의 자민당이 스스로 사회당과의 \'연정聯政\'을 시도하고 있음은 상징적인 보기이다. 이는 극우 세력의 합리적인 배척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국제 관계를 규정해 온 국가와 안보개념의 수정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공개적이면서 합리적인 실험무대는 EC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정치 공동체이며, 유럽 통합군의 탄생을 위해 실질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유럽 각국의 노력은 중요한 실증이다. 또한 아세안이 중심이 된 \'역내 자유무역지대화\'나 중국이 이끌고 있는 \'5국五國 6방六防체제\'와 일본이 자국 내의 극우를 배격하고 구축하려는 동아시아 경제 블럭, 그리고 이미 현실화된 소련의 \'독립국가연합\'등이 두드러진 예이다.
또한 미국이 캐나다와 중남미를 묶어 미주자유무역 지대화의 구축을 이끌면서도 과거의 패권주의의 연장으로 \'대서양권과 태평양권\'을 넘보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조치가 뒤따르는 것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대서양 국가임을 자임하였을 때 유럽 각국은 공동으로 이를 배격하였다. 아울러 태평양 국가를 들고 나왔을 때에는 아세안을 주축으로 공개적인 반대 움직임이 거세지기도 하였다.
문제는 유독 아시아 국가이면서도 미국의 이러한 행보에 대하여, 도리어 태평양 국가임을 환영하고 확인시켜 주는 분위기가 한국 내에서만 매우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특히 보수적 정치권과 학계는 물론이고, 진보를 자처하는 학계와 운동권까지도 같은 시각을 보이고 있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의 탈미 움직임에 대해석도, \'안보는 미국만이 독점한다\'는 전통적인 강경 보수주의 시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외형적인 정치, 군사적 움직임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안보 개념을 적용하여 혹평을 서슴치 않는다.
이는 단적으로 한국 내에는 모든 이념이 단일 노선으로 묶여 있음을 의미하고, 숱한 국제적 변혁에도 아랑곳없이 한국만은 변혁이라는 개념이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본질에는 처음부터 아예 관심조차 없고 단지 과거의 연장선 속에서의 현상에 대한 강한 집착만이 전횡되는 사회 분위기의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로 인한 결과는 당장 전반적인 사회의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사회 전반이 구심점을 잃고 와해되어 가는 오늘의 현상을 위시하여, 급작스레 채권국에서 채무국, 그것도 엄청난 무역적자를 안은 경제 위기 국면을 맞게 된 것도 모두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몸은 아시아에 있으면서 미국의 시각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니까\' 무역 보복을 당하는 것도 당연하고 적자국이 되는 것도 스스로 초래한 결과일 따름이다. 더구나 세계적인 불경기라는 각국 경제학자들의 진단과 이의 실질적인 반향인 \'91년부터 저성장 정책 전환 조류\'는 처음부터 전면 배제시킨채 \'오로지 고성장\'만을 강변하고 나섰으니까 경제 체제 전반이 몰락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다. 특히 이런 와중에 보편적인 국가적인 경제 진단은 전혀 제시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라면 몰락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사회주의권에서 개혁 과제로 시작한 \'산업 민주화\'가 \'경영에서의 노사의 공동 참여와 공동 손익 균점\'이라는 틀을 향해 가는 것과는 달리, 유독 한국만이 노동자쪽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등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국제 조류를 전면 배격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임금상승으로 국제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위시하여 생산성 향상 운동과 일 더하기 운동, 임금 억제 정책, 경영 쇄신이라는 이름 아래 최근 벌어지는 경영 만능주의 등이 적절한 사례이다)
사회체제의 해체 국면 역시 이 구도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사회 변동은 정치 변동으로\' 한계 지으려는 진보계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관료와 언론의 정치 불신감 고조 공세, 정치권의 대중 욕구 차단 및 전략의 정책화 단계에 대한 합리성 부여 등은 그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대중의 정치적 결사와 참여 의지를 처음부터 봉쇄하려는 의도가 너무도 다분한 공명 선거 운동이 마치 정치적인 진보 운동으로 규정되는 악습도 있다. 자본주의 국가 형성의 초기 단계에 어용 운동으로 규정되었던 공명 선거 운동이 개혁적이며 진보적인 대중 운동으로 규정되는 아이러니에 대한 도전이 왜 전무한가?
이 의문은 불교계에 그대로 적용된다. 공명 선거 운동이라는 허울 아래, 불교권은 자신들의 취약지인 서울과 호남 등지에서는 공명 선거 운동을, 정치적인 강세 지역인 영남 지역에서는 특정 후보 지원 공세를 펼쳤다. 이는 어용성이 강한 이 운동의 주도층들이 앞으로 정치적인 입지를 마련하기 위한 사전 포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옳다. 특히 이 운동을 주도하였던 경실련의 핵심 관계자는 초기에 \'향후 정당화 모색\'을 밝힌 적이 있다.
불교가 왜 이런 추세에 그대로 뒤따라야만 하는가? 이 문제는 다분히 본질과 현상의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풀어볼 수 있다. 아울러 이 문제는 앞서의 한국이 안고 있는 모든 구조적인 문제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사실 불교의 사유 체계와 행동 양식은 본질로부터의 모든 출발을 일깨워 주었다. 특히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일시적 단계적 규정과 해석은 진리가 아니다, 변화는 무질서와 혼돈이 아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현상에서는 진리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는 진리가 불교의 삼법인三法印과 공空에 적실히 들어 있다. 절대를 부정하는 것 역시 불교의 최근 현실의 적실성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진리이며 사상이다.
오늘날과 같이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명제까지 변화하는 국제 사회 체계에서 불교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해질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특히 현실사회속에서 이념과 관계없이 부정과 회의가 모든 사유 체계와 사회 인식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산업화와는 아예 멀다는 불교뿐이다.
변화를 감내하지 못하는 개인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력 역시 같다. 변화를 \'본질의 변질\'이라는 단선적 도식에서 보면 혼돈과 무질서일 따름이나, 불교의 세계관으로 보면 바로 \'창조의 동인\'이 되는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명한 인식 구조와 세계관이 있으면서도, 변화를 거부하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일부 불교 세력이 편승하는 것은, 분명 비불교적인 행태가 불교를 자멸의 길로 이끌고 있는 것과 같다. 확실하고 명료한 결과에 대한 분명한 예측이 제시되지 않아도, 현실은 변해야 하는 것이 현재 국제 사회에서 가장 고립된 한국 사회의 운명이다. 그 운명의 에너지는 한국의 어떤 철학과 정치 사회 집단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단지 불교만이 그 에너지를 깊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거짓과 위선 더 나아가 조직적 조작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분쇄하는 것보다도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회의와 부정을 통하여 고착화를 배격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끊임없이 대중을 움직여 나가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지금 한국 불교의 사회 참여의 정도라고 해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