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배례석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승가의 얼과 멋 - 여연 1992년 03월 121호
가람의 중심이 되는 곳에는 으례이 법당이 자리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 법당에 어느 부처님을 모시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대웅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비로전 또는 극락전이라고도 하며, 대적광전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신라시대에는 이 법당을 금당金堂으로 불렀다고 한다.
아직, 그러니까 조선왕조의 억불정책이 있기 전인 고려나 신라시대에는 왕들이 사원을 참배할 때에는 금당의 부처님을 뵙기에 앞서서 그 앞뜨락에서 삼보전에 예배를 올렸다고 하는 기록이 많이 보인다.
그 예배를 올리던 돌은 여러 가지 청정한 연꽃 무늬나 아름다운 구름송이와 같은 당초문을 새겨 넣었으며, 그것을 다른 말로는 배례석拜禮石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 배례석에는 반드시 임금만이 배례를 했던 것이 아니고, 예전에는 신심이 매우 깊은 불자들도 그곳에서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 맑고 삼가하는 마음으로 합장合掌을 하고 절을 하였던 것이다.
신라 때의 임금들은 통도사의 금강계단金剛戒壇에 참배할 때에는 늘 이곳에서 예배드렸다고 한다. 특히 해인사 원당암에 있는 배례석은 진성여왕과는 남다른 사연을 담고 있는데, 여왕은 각별히 관계가 깊었던 각간角干 위홍魏弘이 죽자 그를 혜성대왕으로 추존推尊하고 해인사를 혜성대왕의 원당으로 삼아 늘 이 배례석 앞에 엎드려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며 사자死者의 넋을 달랬다고 하는 기록을 삼국사기에서 읽을 수 있다.
배례석은 이처럼 그 쓰임새가 신앙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불법이 수난을 당하고 우리들 삶이 각박해지면서 영영 잊혀진 존재가 되어 가고 말았다.
지금도 한낱 돌조각(돌덩이)으로 남아 있을 뿐, 사원에 사는 승려들조차 그것이 무엇에 쓰이던 것인지를 모를 지경이다. 사원에 버려둔 전통의 숨결과 얼들이 비단 그것뿐이랴마는 행여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돌덩이로 치부되어 한 구석으로 처박힐까 걱정이다.
돌조각 하나, 하다못해 기왓장 하나라도 우리 선인들의 삶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그것들에 눈길 한번 새로이 얹어 보는 순간, 잊혀져 가는 존재들의 그리운 향기는 다시 피어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