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 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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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해설 - 무관
1992년 03월 121호
능인해인삼매중能仁海印三昧中
번출여의불사의繁出如意不思議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해인 삼매 그 속에 온갖 것을 갈무리하고
불가사의 무진법문 마음대로 드러내며
온갖보배 비로 내려 일체중생 이익하니
중생들이 그릇들고 온갖이익 얻음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편이나 평등에 대하여 잘못 받아들이는 일이 많은 것 같다. 보기를 들면 학교에 다니는 학생 가운데에 누구는 수학은 잘하는데 그림은 잘 못 그린다면 공부는 잘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곧 모두 백점을 맞아야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다양한 여러 가지를 모두 잘 할 수는 없다. 또 현대사회는 직업이 가지가지이고 그 직업마다 특수성을 요구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에 우리 사회의 중심적인 사고는 보편적으로 평등을 중심으로 사물을 보고 특수한 다른 부분에 대하여서는 이질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틀은 농경 사회가 가지고 잇는 고유한 생활을 꾸준히 하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미국에서는 오늘날 직업의 수가 약 삼십만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근래에 우리나라도 산업화가 되면서 유리닦는 직업이나 하수구를 전문으로 뚫어주는 직업도 생겨나기는 하였지만, 여러 가지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한 서양에서는 이렇게 직업이 세분화되어 자기의 전문 직종말고도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기도 한데,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노동부에서조차도 각종 직업의 통계도 작성하지 못해서 그만큼 노동 생산성에 대한 관리 감독도 철저하지 못한 실정이다. 요즈음에는 산업전선에서 유흥업소로의 이직률이 높아서 수출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는 말은 새삼 되새겨 볼 만하다.
능인能仁은 다른 본에는 能人이라고 쓰이기도 하였다. 곧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능력있다는 말은 불교에서는 깨달음(覺)을 뜻하여 부처님의 여러 가지 이름 가운데에 하나로 불렸다. 다시 말해서 여래 십호에는 들지 않았지만 다른 경전들에는 많은 대명사가 있어 천중천天中天, 대도사大道師, 금선金仙, 법왕法王, 지인至人(사람 가운데에 가장 높다는 뜻)들과 같은 수십 가지에 달하였다. 그러므로 능인이 해인삼매 속에 들어갔다는 뜻은 큰바다에 일체 사물의 모습이 도장이 찍혀 있듯이 뚜렷하게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맑고 고요한 삼매 속에서라야 일체의 진실한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하였듯이 법성게가 자리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타를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였는데 이 부분이 바로 이타利他를 드러내는 네 구절이다.
세상의 내면적 세계를 깨달은 것은 이와 사가 분별이 없음을 아는 것이므로 자리요, 세상밖에 고통받는 중생을 위하여 그 괴로움을 덜어 주는 것이 이타다. 그러므로 능인이란 능히 다른 이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건져 주는 교화의 부처님이다. 이 부처님이 왜 맑고 고요한 삼매 속에 있는가. 일승一乘의 법계에서는 자리와 이타를 떠났다. 왜 그런가 하면 교화 제도 해야할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내면이 주관과 객관으로 나뉘어 있는 바로 그 중생이기 때문에 그들을 근기에 따라서 이타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해인이란 것은 진실한 본각本覺이다. 망妄이 다하여 마음이 맑아지면 모든 사리가 가지런히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마치 큰 바다에 바람이 쉬면 파도가 그치고 바다가 깨끗하고 맑아서 나타나지 않는 형상이 없는 것과 같다.
번출여의繁出如意를 다른 곳에서는 飜出如意라고 하지만 어느 것이나 자기가 아는 것을 적절하게 다른 이에게 연출演出해내는 것을 말한다. 한 무더기의 금을 장인은 팔찌로, 다른 장인은 목걸이로 만들어 보이듯이 깨달음의 능인은 해인 삼매에 갈무리된 온갖 것을-깊고 깊은 어떠한 것이라 하더라-자기의 능력으로 잘 소화시켜 다른 이들이 알아보기 쉽게 연출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 자신의 능력에 특수한 기술이 없으면 그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것이 현실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고의 틀 속에는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아는 것을 추구하는 이도 있다. 어떻게 따지고 보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는 이해를 하지만 특수한 다른 것들이 모여서 보편화되어가는 것들에 아직도 우리가 익숙하지 못함을 생각케 한다. 그러므로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다함없는 법문을 마음대로 드러낸다고 한 것이다. 이를 옛날 야부冶父스님은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고 고기 물리지 않으니, 빈 배 가득히 달빛만 싣고 돌아온다\"고 읊었다.
온갖 보배비로 내리어 중생을 이익케 한다는 말은 보현보살의 십대행원을 그대로 본받아서 온전히 실천함으로써 모든 이들을 이익케 한다는 뜻이다.
여의보주 한 개는 여의보주 백천만 개를 낳고 이것이 많은 사람을 이익되게 하듯이 해인삼매 한 개는 백천의 삼매를 연출한다. 이 해인삼매 하나가 바로 열 부처님의 경계를 나타내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체 모든 중생들이 각각 대인의 경지를 증득하고 해인삼매를 얻어서 죽을 때까지, 아침에서 저녁까지, 말하고 잠잠하든가, 자고 깨어나든가,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하나하나의 해인삼매를 나타내는 것이 되므로 하나의 번뇌마다 하나의 진여법성해眞如法性海를 갖추어 두 가지가 없고 섞임이 없어서 허공에 가득한 이익을 주게 된다. 이는 나와 네가 이미 다른 개체가 아니므로 자리 이타의 구별이 본질적으로 없어지고 자타 구별이 없는 자리에 허공과 같은 마음이 있을 뿐이다. 이 마음은 자유롭고 순수하고 무한하다. 그러므로 특수와 보편, 평등과 차별을 모두 갈무리한 총화의 마음의 상태이다.
중생들이 그릇을 들고 온갖 이익 얻는다는 말은 부잣집에서 쓰는 그릇이 그릇마다 다 금으로 만든 것이라면 그 그릇을 쓰는 사람은 어른이나 아이거나 주인이거나 손님이거나 모두가 그것을 쓰게 될 것이다. 해인삼매 가운데 法마다 모두 眞이므로 크고 작고 모나고 둥근 것이 다를 뿐, 그 얻은 이익은 다 참다운 법이다. 다만 큰 것을 크다 하고 작은 것을 작다 하고, 어른을 어른이라 하고 어린아이를 어린이라 하거나, 주인을 주인이라 하고 손님을 손님이라 하며, 더러운 것을 더럽다 하고 깨끗한 것을 깨끗하다 하며, 둥근 것을 둥글다 하고 모난 것을 모났다 말할 뿐이요, 작은 것을 크게 하며 모난 것을 둥글게 늘이거나 깍아서 크고 둥글다 하지 않음을 알 것이다.
여의부사의如意不思議는 마음과 같이 불가사의한 일들을 연출한다는 것인데, 이는 불교에서 인간 마음의 심층을 의意와 의식意識과 전오식前五識으로 차별하고 있는데, 이 의는 자아의식에 뿌리한 것을 뜻하나 여기에서는 넓고 크고 깊은 마음, 곧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써 바다에 비유되는 부처님의 마음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이제 해인삼매 가운데 자타가 없으며 천박하고 감각적인 마음의 파도가 사리사욕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누구에게나 절로 풍성함을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어서 멋있고 가치가 무궁무진한 원천임을 나타내고 있다.
중생의 생각을 부처의 마음으로 바꾸면 차등이 평등으로 특수가 보편으로 한데 어울려 한없이 불가사의한 일들을 연출하게 된다. 이런 사상이 옳게 심어질 때 잘못된 서양의 가치관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