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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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정현종
1992년 03월 121호
지난 2월 중순,구례에 갔다. 어디를 점찍어 놓고 별러서 가는 여행도 있지만, 갑갑할 때면 나는 문득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데로 훌쩍 떠날 때가 있다.말하자면 산보를 좀 멀리 가는 셈이다.
구례에는 한 이십 년 만에 간 것인데, 옛날에 구례에서 남원 가는 기차인지 남원에서 구례 가는 기차인지를 탔을 때에 들은 기적소리가 하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구례하면 내 귀에는 언제나 그 기적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옛날 기차 화통이 내는 소리였는데, 텅 비다못해 팔만대장경에 들어있는 소리를 팔만 배 늘이거나 팔만 배 줄여도 내지 못할 그런 소리로써, 나는 세월이 흐른 뒤에 그걸 「소리의 심연深淵」이라는 제목의 시로 쓴 일이 있다. 인용해 보면 이렇다.
여러 해 전 구례에서 남원 가는 기차에서 들은 기적소리. 공중 어디에인지 영구녹음되어 아직도 울리고 있는 소리. 기적소리를 수없이 들었건만 다른 모든 기적소리와 아주 다른 그 소리. 虛鬼를 잡아먹었는지 허공을 잡아먹었는지 속이 그냥 텅 빈, 속이 텅텅 비고 속이 그냥 아주 없는 그 기적소리. 기차에 탄 사람들 三生을 다 바쳐도 이뤄낼 수 없고 그 마음들 전부와 살 전부를 부어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소리. 모든 꽉 찬 거, 모든 뜨거운 것과 모든 찬 거,모든 뚜렷하고 형체있는 것들로는 그 소리의 제일 작은 구석의 제일 작은 귀퉁이도 까마득히 채우지 못하고, 기차가 달리고 달려 천년이나 만년 셀 수 없는 날을 달려도 붙잡지 못할 그 기적소리. 구만리 허공하고나 내통하여 그 太虛服中에 나를 배고 나는 또 내 뱃속에 배고 있는 그 기적소리. 세상만물을 배고 있어 생명의 집과도 같고 썩은 나락과도 같은 지금도 허공과 두루 통한 귀에 울리느니, 하여간 밑도 끝도 없는 深淵인 그 기적소리!
옛날 화통의 기적소리는 지금의 그것과는 아주 다른 질감을 갖고 있고 아주 별난 정서적 환기력의 원천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순전히 기적소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소리를 어떻게 듣느냐 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안팎의 상태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누가 언제 어디서 듣느냐에 따라 그건 달리 들릴 수 있는데, 가령 그걸 들은 시간이 아침이냐 저년이냐 밤이냐, 기차 안이냐 바깥이냐, 기차 안이라면 어떤 풍경이 지나가고 있었느냐, 듣는 사람은 뭘하는 사람이며 심지어 호주머니 형편은 어떠냐 따위와 상관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또 따지고 보면 기적소리는 기차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기차 안에는 또 다른 소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의 천진한 떠벌림과 칭얼대는 소리, 그리고 눈을 감거나 뜨고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있는 이야기이며 그들이 가지고 가는 물건들 또한 그 이야기와 얽혀있는 유정有情한 물건들이다. 꼭 리얼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승객들의 현실적인 삶과 물건들의 인간적인 의미는 기쁘고 슬픈 감정적 뉘앙스와 더불어 잘 전달되어 온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필자의 느낌으로는 그 모든 것들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 기적소리이다. 그렇지 않은가? 인생이라는 게 짐보따리와 기적소리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겠지만, 그 모든 것의 수렴은 결국 기적소리 아니겠는가?
지방의 자그마한 도시인 읍이나 면에 가면 나는 언제나 우울해진다. 그 지방의 살림살이는 고유의 분위기나 멋스러움이 남아있기는 커녕 거의 빠짐없이 대도시 변두리 지역의 슬럼같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지방 살림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거리 모습이나 생산물이나 음식 등 그 지방 고유의 풍속과 풍물을, 자존심을 갖고 지키고 있는 모습을 나는 어디에서도 본 일이 없다. 물론 그러한 일이 그 지방 주민의 혼자만의 힘으로 되기 어렵고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연관되어 있는 노릇이겠지만 각 지방 지도층이나 의식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충분하였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교통수단만 하더라도 전라도면 전라도, 경상도면 경상도, 지방의 어떤 기차노선은 고집스럽게 옛날 화통을 달고 다닌다든지 읍내의 교통을 자동차를 배제하고 무슨 말마차나 우마차를 만들어 운행한다든지 하는 곳이 있을 법한데도 그렇지 못하고 음식점 같은 데도 이대 삼대 내려오면서 하고 있는 데가 없다. 집과 건물의 모습은 그 지방 분위기를 결정하는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리와 골목의 모습은 그냥 슬럼일 따름이다.
또 호텔이든 모텔이든 여관이든 떼로 몰려다니면서 마시고 노름판을 벌이고 하느라고 시끄럽기 짝이 없고 다른 사람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문도 쾅쾅닫고 하는 바람에 잠을 설치는 게 보통이다. 여러 가지로 속상하고 심지어 이 나라의 장래에 대하여 절망적이기까지 한 기분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물론 흐뭇한 일도 없지 않다. 화엄사나 쌍계사는 두세 번 갔었기 때문에 가보지 않은 천은사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천은사에서 한 십오분 걸어 내려와 삼거리 가게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없고 또 걸어 다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는 워낙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고 지방에 가면 시골버스를 타고 버스가 가는 마을로 가보기를 좋아하는 터라, 사방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공기는 맑아 마음은 평화롭고 기분은 더없이 좋아 가게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점심 때가 다 되었으니 먼저 화엄사 쪽으로 가서 점심을 해결할 심산으로 그쪽으로 가는 버스를 탈 작정을 하고 있었다. 밭에 갔다 오는지 그 집 아저씨가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게 천천히 걸어왔다.
\"겨울이라서 가게가 잘 안 되시죠?\" 하고 내가 묻자 아저씨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시골에서는 도시와는 달리, 버스를 기다리는 맛도 별미인데다가 급할 것도 없어서 가게 앞을 얼쩡거리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창에다가 무슨 종이를 붙였다. 가까이 가 보니 버스 시간표를 깨알같이 쓴 종이였다. 내가 꽤 오래 거기에서 서성거리고 있으니, 그 시간표를 참고하라는 뜻일 것이라고 알아 차리면서 순간 마음이 흐뭇해졌다. 작은 일 같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이런 마음씀, 대단히 섬세한 배려가 실은 우리를 살맛나게 하는 법이다.
시간표를 보니 다음버스는 한참 뒤에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나는 아저씨한테 화엄사로 가려 한다고 했더니 \"아까 구례가는 버스를 타셨어야 하는데……\" 하면서, 화엄사까지는 걸어서 삼십분이면 간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 나는 인사를 하고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시골에서는 십리길이 요너머라고 이야기된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화엄사입구까지는 꽤 빠른 걸음으로 오십 분정도 걸렷다.
어떤 음식점에 들어가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그 집 일하는 여자가 살며시 웃으면서 \"외롭게 왜 혼자 다니세요\" 하고 물었다.내가 웃으면서 \"외로우니까 무슨……\"하고 말을 이으려는데 신통하게도 저쪽에서 합창이 나왔다-\"좋은 일이 있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