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慈雲堂 大宗師 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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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 편집실 1992년 03월 121호
자운 큰스님께서는 여든두 해 전인 1911년 신해년 3월 3일에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의 경주 김씨 가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부친의 이름은 김자옥金玆玉이시고 모친은 인동仁同 장씨이셨습니다. 어릴 때 동리의 학당에서 사서삼경 등 한학을 배워 마치고, 1928년 무진년 열 일곱되던 해에 출가하시어 해인사에 입산한 뒤에 양혜운梁慧雲 화상을 은사로 득도수계得道受戒하였으니, 성우盛祐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다음해 금정산 범어사에 나아가 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하여 일대시교를 이수하였으며, 대교과를 졸업하시고, 1934년 일봉당一鳳堂 경념율사敬念律師를 직접 찾아 뵙고 대소승계大小乘戒를 수지하고 이해부터 율장 연구를 시작하셨습니다. 천부대율千部大律을 날마다 서사하며 지송근행하셨으니 더운 여름날에도 무명장삼을 벗지 않으시고 각고정진을 계속하셨습니다.
1939년에는 드디어 오대산 동대에 들어가 백일 용맹정근으로 문수기도를 봉행하시더니, 일일 황홀속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심지계법문心地戒法門을 통달하셨으니, 계율을 홍보하여 모든 인연을 구족하고, 대법당大法幢을 건립하여 칠불법계를 선양하고 교단에 승망僧網과 승풍僧風을 쇄신하여 천하사원에 복기명위福基命位를 확립하고 계해戒海가 징청澄淸하여 속태가 없어지며, 불일이 장명하고 법륜이 상전하기를 발원하였습니다.
1938년 도봉산 망월사에 백용성 종사를 찾아 뵙고 거량擧揚한 끝에 송을 올렸으니,
청산은 구름속에 걸어가는 듯하고
장강은 흘러가지도 않는 것 같다
밝은 달과 별빛같이 분명하고
눈속에 푸른 솔은 구름처럼 높다
靑山雲步 長江不流
露月星河 雪松雲嶠
하였는데, 용성화상은 입실을 허락하시고 게송을 전하시되,
뜰앞의 잣나무는 숲속에서 가장 드러나고
감청색 푸른모습 잎사귀는 수미산을 덮으리로다
庭前栢樹子 儼然冠山林
身帶紺靑色 葉覆五須彌
하시고, 자운당慈雲堂이라는 법호를 내리셨습니다.
이로부터 십여 년 동안 천하 명산대찰을 행각하셨으니, 북으로 금강산의 마하연에서 남으로는 학성선원까지 불영사, 금룡사, 통도사, 백양사 등의 선원에서 서래밀지西來密旨를 참구하며 수선안거의 삼매경에 지내셨습니다.
1943년에 월정사에서 대덕법계大德法階와 1946년에 종단 총무원에서 종사법계를 품수稟受하시고, 1948년 37세 때에 처음으로 문경 봉암사에서 천불千佛의 보살대계菩薩大戒 대법회를 강설 집전 봉행하셨습니다.
1949년 계율홍보의 원력으로 비구 계본 일만 부, 사미율의 오천 부, 사미니율의 오천 부, 보살계본 범망경梵網經 일만 부 등 모두 사만부를 출판하여 분포하셨습니다. 그리고 1951년 통도사에 천화율원千華律院을 개설하여 뜻있는 후학들에게 율학을 강수하셨습니다.
1955년 교단 정화로 말미암아 종단의 소명을 받아 해인사 주지에 취임하게 되시고, 해인대학 학원이사에 취임하시어 해인사 삼보정재를 위급난중에서 구출하셨습니다.
1957년 대한 불교 조계종 중앙 총회의원이 되시고, 원효학원 이사와 경상남도 종무원장, 중앙감찰원장, 표충사 주지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1960년에는 해인사 주지에 재임하시어 수많은 대작불사를 이룩하시면서도 언제나 청백가풍淸白家風은 즉사즉리卽事卽理라 무진설법교화無盡說法敎化에 외면外面이 없으시고, 한국 경율 간행 사만오천 부를 비롯하여 무량수경, 약사경 등 스물 한종에 이르는 번역본을 출간 유포하시어 복을 짓고 지혜를 닦으시며 덕을 쌓으셨습니다.
1966년 스리랑카에서 개최한 세계불교 승가연합회에 한국불교대표로 참석하시고, 1974년 인도에서 개최한 세계평화촉진 회의에도 한국불교 대표로 참석하시어 국위를 선양하고 한국 불교를 빛나게 하셨습니다.
1967년 범어사 주지에 취임,75년에는 규정원장, 76년에는 중앙 총무원장에 취임하시어 종단을 이끄셨으며, 1977년에는 대각회 이사장에, 87년에는 동국역경원장에, 그리고 역경사업 진흥회 이사장에 재임하시어 일신에 종단의 중망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크신 일은 1953년부터 오늘날까지 근 사십 년간을 종단의 기본인 계단주戒壇主,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으로서 수천 수만의 재가출가在家出家 불자칠중佛子七衆을 배출하셨으니, 이 공적을 어디에다 비할 수 있겠습니까?
1992년 2월 7일 음력 정월 초나흘 제자 지관智冠을 불러 경필을 가져오라 하시고 단정히 앉으시어 일필휘지 하시기를,
마음자리 밝아서 나고 죽음 없는 것을
목마가 밤에 우네 서쪽에서 해가 뜨네
眞性圓明 本無生滅
木馬夜鳴 西方日出
이라 쓰고, 편안히 입적하셨습니다.
세수는 팔십이세가 되시고, 법랍은 육십오년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