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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공동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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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땅 좋은 벗 - 안혜령 1999년 05월 207호
숨을 고르듯 잦아드는가 하면 이내 다시 퍼붓는 빗줄기 속에서 이윽고 운산리 재실 들어가는 길을 짚어냈다. 마을뒤쪽, 변산국립공원 경내로 잘못 접어 들었던 길은 강원도 골짝 못지 않은 깊은 산냄새를 내더니, 비안개 자옥한 산자락으로 겹겹이 감싸인 마을은 뜻 밖으로 널찍하고 안온하다.
감나무 지천인 풍광도 소담하려니와 변산 바다가 엎드리면 코 닿을 데라 마을이 두루 갖추고 있는 자연 조건이 “인류의 생명줄인 기초살림, 즉 산살림, 들살림, 갯살림”을 튼실히 일구고자 하는 변산공동체에 더할 나위 없이 맞춤한 땅이겠다.

‘변산실험학교’로도 알려진 ‘변산공동체학교 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에 둥지를 튼 것은 1995년 2월부터다. 충북대학교 철학교수이던 윤구병 씨가 농부가 되겠노라며 십오년이 넘도록 누려 오던 “안락한” 대학교수 자리 박차고 이 마을로 삶의 뿌리를 옮김으로써 이루어진 일이 었다.
혹 “미쳤다” 소리 들으면서까지 그가 삶의 길을 바꾼 것은, 개인적인 오랜 염원의 결과이기도 했으나, 나날이 “허물어져 내리는 마을공동체”를 되살리지 않고는 앞으로 인류의 생존 조차 불확실하다는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공동체 주민들의 자식들을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일꾼으로 길러” 내고자 마음의 가닥을 잡았으니, 그 학교는 이미 「실험학교 이야기」라는 책에서 그려 보인 바 있듯 “생명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람이 갖추어야 할 지식들을 교육함으로써 “새로운 공동체로 가는 길”을 이룰 것이었다.
그가 운산리에 자리잡자 그 삶에 성심을 둔 제자들과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변산공동체는 이루어졌으니, 지난 네 해는 이들이 초보 농사꾼으로서 기초살림을 다지는 한편, “참다운 교사로서 거듭나기 위해” 땀 흘린 시간이었다.
현재 변산공동체는 열댓 명 어른과 세 아이로 이루어져 있다. 결혼한 부부가 세 쌍이며 공동체 안에서 태어난 첫아이 “바다”가 이제 열여섯 달이 되었다. 부안 김씨 재실과 지름밭골, 솔밭 둥지를 각각 거처로 삼으니, 잠자리는 다를지언정 저녁 밥상만은 공동 식당에서 함께 하는 “밥상공동체”이다.
공동체의 모든 자산은 공동의 것으로 필요한 살림살이는 공동 분배하며, 울력을 같이하여 논 삼천 평과 밭 만이천 평을 일구어 자급 자족의 원천으로 삼는다.
운산리는 부안 김씨 문중 땅으로 공동체에서 부치는 만오천 평의 절반 이상이 부안 김씨의 땅이다. 또한 “옛날 같으면 상놈 중의 상놈”인 재지기 노릇을 자청했으니, 재실 관리하는 대가로 밭 오천 평은 도지 물지 않고 공짜로 부친다.
퇴비와 부엽토 써서 유기농법, 자연농법으로 주곡 중심의 농사 짓되, 자칫 돈 있는 사람들만 위하는 꼴이 될까 염려하여 함부로 내어 팔지는 않기로 했다. 그 대신 가공식품을 만들어 수입원으로 삼기로 했으니 간장, 된장, 장아찌류, 각종 효소며 술이 그것들이다.
의욕은 짱짱했으나 식구들이 한결같이 낫이며 호미 다루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 풋내기 농사꾼들인지라 “일머리가 트이지 않아”, “일의 차례를 몰라” 헤매고 그르친 일이 부지기수였고, 그 고초가 갑절은 되었다.
그 삶의 자취가 지난해 보리출판사에서 펴낸 「잡초는없다」에 비교적 소상히 소개되었거니와, “하루도 같은 일을 해 본 적 없다” 함은 이들의 일 욕심이 농삿일에서만 그치지 않았기에 절실한 말일 터이다. 새끼 꼬고 낫자루 만드는 것에서부터 트랙터와 경운기를 모는 신식 기술에 이르기까지, 간장, 된장 담그는 일에서부터 술빚고, 옷감 짜는 일에 이력까지, 동네 노인들이 손에 익히고 몸에 지닌 온갖 기술들을 배워 익히고자 했다.
변산바다의 싱싱한 생선이며 조개류로 젓갈도 담아 보고, 다양한 식물성 염료와 황토, 개펄 흙 따위의 광물성 염료로 옷감 물들어는 일도 꾸준히 해 와서, 삼년 묵은 갈치젓 맛있다 칭찬 듣고, 모시며 광목 물들여 개량 한복도 만들어 냈다.
그뿐인가. “올콩은 감꽃 필 때 심고, 메주콩은 감꽃이 질 때 심는 거여”라는 동네 할머니 한 말씀이 자연의 섭리를 깨우치는 진리로 새록새록 하니, 자연의 변화가 “날마다 새로운” 나날들 속에서 묵정밭 일구듯 마음밭도 따라 갈았으리라.
밭작물 제치고 의기 양양 솟아올라 원수 같던 풀들 거개가 나물거리이고 약초임을 알아보게 된 일 또한 큰 깨우침이었을 터이다.
이제 이 풀들은 온당한 대접 받고 있으니, 재실 한 옆의 발효 하우스에는 잡초로 천대 받던 온갖 풀들이 당절임 되어 축성의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효소로, 식초로, 술로 완성된 것들은 땅을 파고 지은 냉암소에 따로 보관되고 있다. 그 맛과 효능이 좋더라는 입소문어 퍼지면서 택배비를 부담하면서까지 주문해 먹는 이들이 늘고 있어 이 곳 살림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자연에 쓰레기는 없으니, 빈 집과 함께 버려지는 것이 아까워 변산 일대를 돌아다니며 모아 두었던 오륙백개 되는 옛 항아리들이 이 때 요긴하게 쓰였다.
이 항아리들을 올리느라 식구들이 장독대를 쌓아 완성하던 날, 그 위에서 잔치를 열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멀리서 보고는 “전교조라는 종교 집단이 들어왔다”고 수군대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간직하고 있다.
할 일은 많고 돈 되는 농사는 애당초 돌아보지 않았으니, 주위에서 염려하는 이들이 많으나 윤구병 씨는 금전적인 후원회는 단호히 사절한다. “남의 힘 빌려 하는 살림과 학교가 어떻게 주체성을 갖고 자립할 수 있겠나 싶어서”다.
그런 점에서 또 여지없는 것이 “땀 안 흘리는 무리”라는 뜻으로 이름 붙인 “불한당”들이다. 안면이나 옛 인연만 믿고 연락 없이 찾아오거나 호기심으로 구경 온 사람들은 이 곳에서 손님 대접 받을 꿈도 꾸지 말 일이다. 공동체고 학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잘 보이고 얼굴 팔아서 기금 모아” 이루려는 것이 아닐 뿐더러, 몸으로 동참할 성의 없는 이들 모시고 견학시킬 만큼 한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기껏 먼 길 찾아온 이들을 박대한다더라 소리까지 듣지만 최소한 “3박 4일” 머무르며 몸보시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주문에 기꺼이 응하며 이 곳을 찾은 이들이 이제까지 오천 명이 넘는다.
운산리에 자리잡은 이듬해부터 이들은 두 해 동안여름, 겨울 계절학교를 열었다. 음식 만들기, 바구니 엮기, 천연 물감들이기, 뗏목을 엮어 계곡이나 바다에 띄우기, 채소 기력 따위의 “산 지식”이 중요한 내용이었으며, 영어며 수학, 철학, 역사, 글쓰기 같은 지식 교육이 곁들여졌다.
윤구병 씨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를 제 힘으로 제 앞가림할 수 있는 힘 키우는 것, 곧 개체 생존 유지에 필요한 교육과,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힘을 길러 주는 것, 곧 공생의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라 본다.
그런 뜻에서 그는 산업혁명 이후 지난 이백 년 동안의 교육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질 나쁜” 교육이었다고 말한다. 이웃과 자연과의 단절, 더불어 삶이 아닌 경쟁하는 삶, 추상적 교환가치가 생산가치를 누르고 지배하는 가치 체계, 기르는 문화가 아닌 만드는 문화가 앞섬으로써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잃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시는 길은 “자연과 공생하는 길”이니, 자연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교사이며, 자연의 섭리대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삶 자체가 가장 바람직한 교육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룰 학교는 공동체 식구들이 서로 교사이며 학생이다. 교사들은 비록 “자격증”은 없으되 “자연과 한살림”하며 쌓은 삶의 연륜으로 지혜롭고, 그 살림 살아나가는 데에 필요한 참지식이 몸에 배어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충분한 이들이다.
학교 건물에 따로 서지 않고 공동체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이 학교이며, 여러 종류의 작업장과 일터가 놀이터이자 교실이다. 또한 산과 들, 마당이 바로 아이들의 운동장이 될 터이다.
아이들은 자연 안에서 손발과 온몸을 놀려 스스로 삶에 필요한 정보를 얻고 몸에 익히며, 모든 문화 활동에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참여함으로 써 더불어 창조하고 더불어 즐기는 공동체 문화를 이루어 갈 것이다.
지난해 3월, 변산공동체학교는 지역 주민 아이들 다섯 명과 함께 중등교육 과정을 시작했다. 부안 김씨 재실을 임시 교실로 삼아 오전에는 이른바 지식 과목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기초살림 교육을 하고 있다. 현재 학생은 여섯 명으로 늘었는데, 무인가 학교라 지난 겨울에는 고동학교 입학 검정고시 준비반을 열기도 했다.
“인류의 오랜 보편교육의 선례와 전통에 따라” 교육은 무상으로 이루어지며, 공동체 학교의 학생은 공동체 구성원의 아이들과 지역 주민의 아이들로 제한된다. 지역과 학교를 함께 살리기 위한 조처인데, 실제로 「실험학교 이야기」를 읽고 아이를 변산공동체학교에 보내고자 한 이가 서울에서 예까지 이사를 와 공동체 주민으로 살고 있다.
공동체 주민이란 공동체와 뜻은 함께 하되 밥상은 따로 하는 이들을 이른다. 현재 인연이 되어 변산으로 옮겨 왔으되 이렇듯 개별 살림을 사는 공동체 주민이 세 가족이 있는데, 올해부터 학교에서 기초살림 교육과 정보 교육 들을 도움으로써 공동체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한다. 정식 공동체 식구가 되는 과정은 꽤 까다롭다. 우선 이 곳에 오려는 까닭을 세세히 밝힌 장문의 편지를 써 보내야 한다. 그 편지를 식구들이 돌려 읽은 뒤 “초청하면” 일 주일에서부터 시작하여 몇 차례의 단계를 거쳐 함께 한 솥밥 먹고 일하기를 삼 년을 한다. 삼년이 지나면 비로소 공동체 식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는 행여 농촌 생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환상을 경계함과 아울러 기존의 식구들과 부딪칠 일이 없는지를 확언하고자 힘이다.
현재의 구성원 중에 이렇듯 삼 년을 넘긴 식구는 다섯 명이다. 그 동안 열댓 명쯤이 변산에 들어왔다가 떠났다. 주체성 있고 개성적인 인격체들 이 끌어안으려다 번번이 서로의 “가시”에 찔리기 십상이니 더불어 삶이 그만큼 지난한 일이다.
변산공동체는 올해를 “자급자족의 원년”으로 잡았다. 지난 네 해 동안의 이들의 노고가 일차결실을 맺었음을 뜻하니,「녹색평론」 올 3/4월호에서 윤구병 씨는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세워나갈 지역공동체학교의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올 1월에 영농법인을 설립한 것을 필두로, 앞으로 탁아소부터 고등교육 기관까지 일관된 대안교육 체계를 세우며, 변산 일대의 산과 바다를 이용한 ‘개펄연구소’, ‘약초연구소’ , ‘임산자원연구소’를 세워 지역 생태계를 보존하고 활용할 것이다. 바람이 많은 지역 특정을 살려 변산 지역에 풍력 발전소를 세운다는 다부진 꿈도 들어 있으며, 지역 유기농들과 연대하고 생태 학교를 설립하여 기초살림공동체를 유지, 확산하는 일에도 나서려 한다. 이 계획대로라면 변산지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구적이고 모범적인 생태 공동체로 자리잡을 것 같다.
그러나, “백년을 내다보고 한다” 했듯이 당장에 이루어질 일은 결코 아니다. 우천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징검다리”로서 공동체 기초살림과 학교를 튼실히 다지는 데 열성을 다 할 터이다. 식구들을 위한 흙집이라든지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기초 설비, 곧 대장간과 목공소, 도자기 가마 따위를 지을 일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고, 중학교 인가 받을 일도 미룰 수 없는 일이다.
해야 할 많은 일들 중에 지금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를 점차 가깝고 도탑게 엮어나갈 일 또한 중요할 성싶다. 그이들 “대신 농약통 둘러멜 수는 없지만” 그이들과 함께라야 온전히 마을공동체를 되살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고생길”이다. 그러나 윤구병 씨 말마따나 “그 고생으로 마을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꽃피어난다면 한 번쯤 미쳐볼 만도” 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