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함 밖에 또 무엇이 남아 있는가
눈 푸른 납자 눈에 안 띄고
절을 거쳐가는 사미승은 언제나 있네
벼락치는 소리 단 한마디 없이
그저 엉터리로 부처의 뒤를 이어가네
한 개의 든든한 쥐똥나무 주장자여
산 오를 때 지팡이 때론 개 몽둥이(조주)
꽃이 지자 절간엔 다시 등꽃이 핍니다.
수십 수백만 등이 절이며 거리에 매달리건만 조주의 주장자 한 방망이가 더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등을 내거는 손길 따라 주장자가 쥐어졌으면 합니다.
“선악의 경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음을 좌座라 하고 안으로 자성이 일어나지 않음을 보는 것이 선禪”이라 한다면 꽃이 피고 지는 세월 속에, 꽃이 피고 지는 일터에 좌선座禪이 있다면 인생이 더욱 든든하겠습니다.
한 호흡 멈춤이 사死요 한 호흡 내쉼이 생生이라면 잠시 한 호흡 가다듬는 것도 자신을 주장자로 만드는 일이겠습니다. 초파일 등 속에 좌선으로 앉아 있는 것이 바로 등불을 밝히는 일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