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서울에 있는 모 여고 삼학년생들이 수학여행을 와서 안내를 신청했다.
그 때는 안내하는 일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터라 나는 해인사 역사부터 시작해서 법당을 빙 돌며 벽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 주었다. 그리고 법당 뒤 계단을 올라 팔만대장경을 참배하게 하고 나서 학생들 몇 백 명을 법보전 뜨락에 앉혀 놓고 대장경의 역사와 특히 그 신비함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이 장경각은 국보52호로서 그 동안 온갖 재난에도 아무 손상 없이 완벽하게 보존이 되어 왔습니다. 또한 굉장히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심한 가뭄과 장마에도 바닥에 숯과 소금 등이 묻혀 있어 자동으로 습도 조절이 가능합니다. 또 창틀의 구조가 특이하게 설계되어 통풍이 원활합니다. 그리고 신비한 것은 장경각 안에는 어떤 벌레도 살지 않고 새들도 장경각 위를 피해서 날아다닌다는 것입니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가려는데 한 여학생이 소리쳤다. “스님! 저기 장경각 위로 새 한마리가 날아가는데요”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고 모든 학생들은 내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저 주책없는 새가 하필 이 순간에 나타나서 속을 썩인담 어휴!’
순간 번개같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 법보전 부처님께서 지혜를 주셨나 보다.
“에에, 저 새는 이사 온 지 얼마 안돼서 이 곳 규칙을 아직 잘 모르나 봅니다.”
와아하면서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지금도 가끔 장경각 뜨락에 서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새가 또 주책없이 장경각 위로 날아가고 있는지를 보게 되고, 십여 년 전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혼자 슬며시 웃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