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팔만대장경과 이사 온 새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우소 - 동은 1999년 05월 207호
지금부터 십여 년 전, 그러니까 내가 해인 강원 치문반에서 초발심의 꼿꼿한 기상으로 푸른 눈빛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그 해 여름 나는 장경각 안내 소임을 맡아 대적광전 오른쪽에 있는 두평 남짓한 안내실에서 지내게 되었다. 힘든 일이 제일 많은 치문반 시절에 큰방 생활을 하지 않고 후원 소임을 맡는다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었다.
안내실 소임은 강의를 마친 뒤 안내실에 기거하면서 탐방객들이 요청을 하면 해인사의 역사나 벽화 이야기 그리고 팔만대장경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일이었다. 말솜씨가 없는 편인 나로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어떤 때는 안내를 하다 예쁜 보살님들 앞에서 나도 몰래 얼굴이 빨개져 어쩔 줄 몰라 할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서울에 있는 모 여고 삼학년생들이 수학여행을 와서 안내를 신청했다.
그 때는 안내하는 일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터라 나는 해인사 역사부터 시작해서 법당을 빙 돌며 벽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 주었다. 그리고 법당 뒤 계단을 올라 팔만대장경을 참배하게 하고 나서 학생들 몇 백 명을 법보전 뜨락에 앉혀 놓고 대장경의 역사와 특히 그 신비함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이 장경각은 국보52호로서 그 동안 온갖 재난에도 아무 손상 없이 완벽하게 보존이 되어 왔습니다. 또한 굉장히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심한 가뭄과 장마에도 바닥에 숯과 소금 등이 묻혀 있어 자동으로 습도 조절이 가능합니다. 또 창틀의 구조가 특이하게 설계되어 통풍이 원활합니다. 그리고 신비한 것은 장경각 안에는 어떤 벌레도 살지 않고 새들도 장경각 위를 피해서 날아다닌다는 것입니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가려는데 한 여학생이 소리쳤다. “스님! 저기 장경각 위로 새 한마리가 날아가는데요”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고 모든 학생들은 내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저 주책없는 새가 하필 이 순간에 나타나서 속을 썩인담 어휴!’
순간 번개같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 법보전 부처님께서 지혜를 주셨나 보다.
“에에, 저 새는 이사 온 지 얼마 안돼서 이 곳 규칙을 아직 잘 모르나 봅니다.”
와아하면서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지금도 가끔 장경각 뜨락에 서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새가 또 주책없이 장경각 위로 날아가고 있는지를 보게 되고, 십여 년 전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혼자 슬며시 웃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