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읽고 또 읽고 4교에 5교까지 교정을 봐도 책이 출판되면 숨어 있던 오자들이 왜 그리 수두룩하게 튀어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잡지사에 근무하는 선배에게 들은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소설가 약력에 어처구니 없는 오자가 났다.
\'힘찬 필치를 날리는 ...\'이라고 쓴 원고가 어찌된 일인지 잡기엔 \'힘찬 펀치를 날리는...\'이라고 실린 것이다. 한순간 소설가는 권투선수가 되고 말았다. 교정의 다른 옛말 수교讐交다. 교정을 아무리 열심히 봐도 오자가 나오니 \'웬수\' 같다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그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쉽지 않은 일이 오자 잡아내는 작업인가 보다.
고려대장경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오자 하나 없는 가장 완벽한 내용임을 자랑한다. 국난을 불심으로 이겨 내려는 뜨거운 민족적 염원을 걸고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사경을 하고 정성스럽게 판각에 임했을 고려인들.
사람의 일인데 어찌 실수 하나 없이 완벽하게 해낼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조차 고려대장경 판본을 정본삼아 만들만큼 정확하고 완벽한 내용인 것은 수기스님을 비롯한 눈 푸른 스님들이 바로잡는 정밀한 교정작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누락된 것을 보충하고 엇갈린 것과 착오된 것을 바로 잡았다 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교정校訂은 교감校勘과 같은 의미다.
다만 오늘날 교정은 잘못된 글자를 바로잡는 정도로 그 의미가 축소됐을 뿐이다.
조선왕조 때 교정, 간행기관이었던 승문원에는 종4품에 해당하는 벼슬로 교감이란 직위가 있었다. 교감이란 \'바르게 고쳐 잡는 작업\'을 말한다. 바르게 고쳐 잡기 위해선 바른 것이 어떤 것인 줄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인물이 그 직위에 올랐을 것이다. 단순히 틀린 글자를 집어낼 뿐 아니라 전체를 조망해 \'원칙\' 속에서 바로 잡아 가는 작업을 담당하는 위치로서의 교감. 마치 수기스님의 푸르고도 매운 눈빛을 닮았을 직책이리라.
중국에서 교감학이란 학문이 체계를 지니게 된 것은 청나라 때이다.
그런 점에서 수기스님의 「고려국 신조대장 교정별록」은 우리의 교감학이 중국보다 얼마나 앞서있었는지를 한눈에 보여 주는 역작이다.
송나라의 대장경부터 거란, 초조대장경, 그리고 당대의 문서들을 꼼꼼히 대조하고 비교해서 가장 정확한 것을 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엄정하게 교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정별록」에서 증거 자료로 들고 있는 불교 목록의 예만도 스물 두 건이 된다.
편집 과정에서부터 완벽한 교감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설사 사경 하는 이가 잘못 옮겨 적었거나 판각하는 이가 잘못해 생겨난 오자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조차 완벽하게 교정했음을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경판의 광학 현미경 분석을 통해 드러난 증거를 보면 고려대장경 경판은 다른 경과 달리 보존을 위한 옻칠이 되어 있으며 그 옻칠 아래에는 먹이 칠해져 있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옻칠 작업 이전에 먹을 칠해 인경印經을 해보았다는 이야기다. 이 때 오자가 발견되면 그 경판은 폐기되고 새로이 새김을 했을 것이다.
경판의 말미에는 어느 시기에 만들었노라고 하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이를 판미제라고 하는데 고려대장경의 조성 시기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판미제는 정유세(1236년)로부터 시작해 무신세(1248년)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하나의 경전이 서로 다른 해에 만들어진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도 앞장이 뒷장보다 뒤늦게 간행된 경우가 많다.
사경될 원본이 미리 준비돼 있었는데 순서가 엇갈려 나온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오자나 잘못된 판각으로 인해 새롭게 다시 만들다 보니 그리 된 것이 아닐까.
고려대장경 다큐멘터리 준비하러 이태원의 장경 연구소를 들락거릴 때 의 일이다. 연구소의 스님 한 분이 두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물어오셨다. \"대장경 경판 중에 딱 한자, 뾰루지 난 글자가 있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 뾰루지 난 글자란 다름아닌 뾰루지 솟듯 거꾸로 새겨진 글자라는 이야기다. 정교한 교정 작업이 이루어진 고려대장경 불사에 거꾸로 새겨진 한글 자라니! 고려대장경 경판에 어떻게 거꾸로 글자가 새겨 질 수 있었을지, 스님의 말씀은 그 날부터 제작진에게 화두가 되어 버렸다.
\"뾰루지 난 글자! 그것은 판각하는 이의 \'가벼운 실수\' 였을까.
그 실수가 스님들의 엄정한 교정 작업의 시선을 과연 \'가볍게\' 지나칠 수 있었던 것일까.
오류가 발견되면 철저하게 파악해 한 글자의 오류까지도 교감했다는 스님들이 아니던가.
경문의 중간에 한 글자만을 거꾸로 새기는 것이 진정 실수일 수 있을까. 실수가 아니라면 왜 그 각수는 글자를 거꾸로 새겼던 것일까.
동원돼 판각하던 민중의 반항이 뾰루지처럼 솟아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뛰어난 장인의 기질로서 사경된 원본의 글자조차 그대로가 아닌 거꾸로 샛길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이었을까.
다큐멘터리 고려대장경을 준비하면서 자고 깨면 뾰루지 난 글자의 의미를 곱씹어야 했다. 수기스님을 비롯한 당대의 뛰어난 스님들이 참여했던 교감 작업. 그런데 어떻게 그 거꾸로 새겨진 글자를 집어 내지 않았던 것일까. 진실로 숨어 있는 오자여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송나라본, 거란본, 초조대장경의 잘못됨을 바로 잡았던 천하의 수기스님이 아니던가.
문득 \'삼가 이를 밝혀줄 명철名哲을 기다린다\' 고 했던 「고려국 신조대장 교정별록」의 한 대목이 생겨났다. \'잘 못됨을 알면서도 바로잡지 않는다\' 고 했던 구절도 떠올랐다.
잘못됨조차도 후대의 눈으로 새롭게 해석되어지길 기대하며 교감에 임했던 스님들이었기에, 거꾸로 새긴 그 각수의 마음가짐까지 헤아렸던 스님들이었기에 무수한 교정 과정 속에서도 거꾸로 된 글자를 고스란히 놓아둘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엄정한 교정의 한 편에 각수의 뜻대로 뾰루지 난 글자조차 놓아둔 그 따사로움, 원칙을 고수하지만 원칙만을 고수하지 않는 그 넉넉함, 잘못됨조차 역사속에 맡겨버리는 그 지혜로움...우리시대에 수기스님이 그리운 것은 그 때문이다.
촬영을 위해 장경각을 참배하고 , 동국대 도서관에서 뿌연 먼지를 이고 있는 고려대장경 영인본을 무수히 매만졌건만 끝내 뾰루지 난 글자는 만날 수 없었다. 무명에 가린 탓이려니 여겨본다. 그러나 어쩌면 그 뾰루지 난 글자 얘기를 나즈막히 들려준 장경연구소의 그 스님도 아직 그 글자를 만나 보지 못했을 것 같다.
두 눈 부릅뜨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라는 , 그 같은 정신을 잊지 말고 살아가라는 의미였을까. 고려대장경은 결코 신비의 베일에 가린 박제화된 문화유산이 아니라 고려인의 숨결과 불심이 살아 숨쉬는 오늘의 유산임을 일깨워 주신 한 말씀이었는지도.